천년의 고독, 페트라(2)
페트라로 들어가는 길. 시크siq 협곡
페트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시크협곡을 약 2,30분 걸어들어가야 한다.
아마도 인간이 살기 이전 이곳은 강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협곡의 붉은 사암에는 오랜 세월을 간직한 퇴적과 풍화의 흔적이 보였다.
페트라에는 선사 시대 이전의 유적들도 발견 되었다고 한다.
구석기와 신석기에 거쳐 아주 오랜동안 인간들이 이곳에 거주해 왔음을 말해준다.
잊혀졌던 지난 천년의 세월은 이곳에 인간들이 살았던 시간에 비하면 아주 짧은 기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이곳은 외부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한 천혜의 조건을 갖추었다.
사방은 험준한 벼랑과 산으로 둘러 쌓여있고 외부의 연결하는 단 하나의 길은
높이 50미터에 달하는 협곡 뿐 이다.
이를 거꾸로 읽으면 방어하기에도 좋지만 고립되기에도 좋다는 말이된다.
페트라 유적과 마주쳤을 때 처음 떠오른 단어는 '몰락'이었다.
제 아무리 막강한 권력을 가진 인간일지라도 결국 백년을 살지 못한다.
국가도 그렇고 사람이 만든 문명도 결국 같은 운명을 가진다.
사람이 고독한 근원적 이유는 시간 앞에 유한하기 때문이다.
그 어쩔 수 없는 고립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간은 죽음 이후의 세계를 만들어냈다.
아무도 돌아오지 못했기에 반박할 수 없는
삶의 대칭점 그곳에 죽음의 세계가 있다.
삶이 유한하기 때문에 그 반대편에 서있는 죽음이라란 당연히 무한하고 영속적인 것이다.
나바테안 그런 의미에서 매우 철학적인 태도를 견지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들은 유한한 인간의 역사 대신 사후의 세계에 대한 견결한 신심을 가졌다.
페트라에서 볼 수 있는 암굴과 유적들 대부분은 산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죽은 자를 위한 것이다.
이 고대 도시는 죽은 자를 위한 것이었다.
화려한 채색을 한 듯한 사암동굴
안타깝게도 나바테안은 후세에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
사실 남길 이유를 찾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기록이나 역사 따위는 인간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아무짝에 쓸모없는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로마인들이 AD 106년 로마인들이 이곳을 침입해 그들은 몰아낸 후 사방으로 흩어졌다.
물론 로마인들도 결국 7세기 경 이슬람 제국에 패배해 역사의 무대에서 물러난다.
로마인들이 건설한 것으로 보이는 원형극장
7세기 이후 왜 이 도시가 버려졌는지 명확한 이유는 알 수없다.
다만 추정하기에 동서로 통하는 무역 루트가 이슬람제국의 등장으로 가로막힌 후
자연스럽게 쇠퇴했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이란 말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시기에
페트라의 유적은 사람을 더욱 쓸쓸하게 만든다.
기껏해야 몇 년 버티지도 못할 것을 권력의 칼날은 두려움에 비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