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야기

다시 떠나야 하는 이유

하피즈 2009. 6. 1. 00:32

다시 떠나야 하는 이유

 

 

원래 사랑을 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홀로 행복하지 못한 이가 더불어 행복을 꿈꾼다는 건 어리석은 일이지요.

그래서 차라리 꿈꾸지 않았고

스스로 난 혼자도 괜찮다고 다독여 왔습니다.

 

 

 

 

 

지금도 너무나 가슴 아픈 한 가지는

그대에게 행복도 위안도 되줄 수 없는 자신에 대한 자책과 모멸 때문입니다.

당신을 만나지 않았다면 차라리 이렇게 쓸쓸하지 않았을테지요.

짧은 시간 동안의 기쁨 만큼 한없이 흔들립니다.

당신에게 지독한 상처를 입히던 그 날...

당신을 그리워 할 자격조차 사라졌던 그 검은 바다

그 밤 해변의 모래에 눈물을 쏟으며

  손톱 만큼의 미련도 없이 보내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길 만이 당신께 드릴 수 있는 마지막이자 가장 큰 보답일테니까요.

나같은 사람이 당신을 그리워한다는 것은

괴로운 기억이자 나쁜 상처일테니까요.

 

 

 

 

그런데 ...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습니다.

엉키고 찟긴 그물을 할퀴며

매듭을 찾으려 했지만 결코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당신의 말씀으로 깨닫게 되었지요.

약속 드린대로 당신에 대한 감정을 지우려 했습니다.

심장은 왜 그리 허둥대고

그대에게 진 마음의 빚은 왜 그리도 더욱 깊어만 가는지...

 

 

 

 

지울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하셨지요.

이제는 서로의 사이에 선을 분명히 그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지요.

말씀대로 할 것 입니다.

편히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단 한가지 약속은 결코 지키지 못하겠습니다.

그것은 제가 홀로 당신을 그리워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마음에 짐 지워드려 미안합니다.

하지만 그리움으로 내 자신을 위로할 수 없다면

도저히 내게 남은 시간을 견뎌 낼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 대신 아주 멀리 떠나겠습니다.

떠난다면 쓸쓸하긴 하겠지만

당신을 멀리두어 조금을 덜 슬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보고 싶어도 다가갈 수 없어 체념이 빠를 줄 알았습니다.

가슴 태울 일도 없겠지요.

당신의 번호를 지운 전화를 하루에 수백 차례 거듭 볼 일도 없겠지요.

길에서 예쁜 인형을 만나면 한참 동안 들여보며 망설일 일도 없겠지요.

 

 

 

겨울 옷을 박스에 넣고 세간을 하나 둘 정리 했습니다.

집을 보러오는 사람과 내일 모래 약속도 했지요.

  

 

 

 

 이 메일도 문자도 닿지않는 그런 곳으로...

나같은 사람을 아주 지워버릴 수 있는 그런 곳으로...

그리움을 말할 자격도 없는 그런 못난 사람이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

잘 지내고 있다는 

엽서 한 장만 보낼 수 있게 허락해 주십시요.

오로지 다시 떠나는 단 하나의 이유입니다.  

 

 

 

  시간은 또 그렇게 잔인하게 흘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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