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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일기3> 비잔틴의 정복자

하피즈 2009. 6. 20. 17:26

몽골의 기병대가 아나톨리아 평원을 휩쓸 무렵

코니아의 알래딘은 패주하는 셀주크 족을 이끌고 있었다.

그들은 몽골의 거듭된 추격에 이미

죽음 직전의 상태에까지 이른 상태였다.

그러나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444명의 기병대를 이끈 일군의 무리가

셀주크인들을 몽골군의 추격에서 도망칠 수 있는

퇴로를 터주었던 것이다.

그 기병대를 이끈 우두머리의 이름은

'에르투르굴' 바로 훗날 아나톨리아와 이스탄불을

800여년간 통치한 오스만 제국의 첫번째 왕,

오스만 가지의 아버지였다.

 

보스포러스 해협의 상류. 흑해의 입구이자 콘스탄티노플로 들어가는 입구다. (루멜리 히사르-성-에서 본 풍경)

 

여행자들이 주로 머무는 술탕아흐멧에서 트램을 타고

갈라타 다리를 건너 다시 버스로 갈아탄 후 

40분 쯤 보스포러스 해협을 지나 해안선을 끼고

상류로 올라가면 아주 비좁은 해협과 함께

보스포러스 다리와 같은 현수교가 나타난다.

현재 이곳 해안선은 고급 요트와 화려한 주택이 즐비한

이스탄불 최고의 부촌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이곳은 600년전 비잔틴 제국의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와 젊고 야심에 찬 술탄 메메드가

서로 칼 끝을 겨누고 있는 살벌한 전장이었다.

물론 싸움의 향배는 이미 오스만 제국에 기울었고

비잔틴 제국의 패색은 이미 짙어 어떻게 항복할 것인가?에 대한

마지막 선택만이 남아있었다.

콘스탄티누스 11세는 최후의 자존심을 지키기위해

옥쇄를 선택한다.

 

 

보스포러스를 마주보고 있는 루멜리히사르 성벽

 

1451년 술탄 무라즈 2세가 숨을 거두자

그의 아틀 메메드는 곧 그의 야심을 드러낸다.

허울 뿐이었던 평화를 깨고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직접 자신의 제국의 발아래 복종시키길 원했던 것이다.

물론 아버지 대의 오랜 대신들은 콘스탄티노플 점령을 반대했다.

전앵을 통한 이드이 없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젊고 야심찬 황제 메메드에게는

자신의 위대함과 힘을노회한 가신들에게 분명히 각인시키고 

오스남 제국의 단 한명의 통치자임을 분명하게

보여 줄 필요가 있는 한 판이었다.

   

 

 

젊은 술탄은 자신의 군대를 비잔틴 성벽이

마주보이는 곳까지 진군시켰다.

그리고 비잔틴 제국을 향한 마지막 공성전을 준비한다.

메메드는 이곳에 루멜리히사르 성채를 세우고

맞은편 아시아 대륙에도 마주보는 형상의

아나도루 히사를 성을 세워

흑해를 통해 콘스탄티노플로 들어가는

뱃길을 완전히 봉쇄한다.

2년만에 모든 준비는 끝이 났다.

이제 마지막 전투만이 그들에게 남아있었다.

 

 

마르마라해를 배경으로 누워있는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