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마케나街 22번지의 크리스마스
한국 대선 이틀전 이 곳 칠레 산티아고 마케나 가 22번지의 원룸 아파트로 이사를 왔지.
이사라고 해봐야 큰 배낭 하나에 카메라 가방, 작은 쌕이 전부니까 정주를 염둔에 둔 이사라기 보다는
임시 거처에 머뭄이라고 해야 정확하겠지.
어쨌든 정주와 유목의 어정쩡한 언저리에 머문 이주를 마친 후
대선 투표함 뚜껑이 열리고 한 시간 쯤 지나서 장을 보러 나왔어.
한국에 돌아가지 않아야할 핑계가 또 하나 생긴 것에 대한 축하라고 할까?
근처 한국 민박에 머물던 여행자들을 모두 끌고와 진탕 마셨지.
보드카 4병에 와인 2병 또 그외 여러가지...
뒤죽박죽 섞었더니 오랜만에 자다깨서 위장 내용물 확인까지 했네.
그렇게 48시간 쯤 꽐라로 지냈어.
그냥 아무 것도 하기 싫었고 무슨 희망, 계획 이따위 것들이
내 삶에서 백만광년 쯤 떠나버린 후 외로운 혹성에 남은 느낌이랄까?
뭐 비슷한 거...
한국에서는 거들 떠 보지도 않던 드라마 몇 편을 다운 받아 보았어.
<추적자>라는 드라마였는데 또 빌어먹을 대선이야기였지만
드라마에선 그래도 나쁜 놈들이 패배하더군...웃겨...
시간이 남아돌아 포털 사이트를 기웃댔더니 한국은 화이트 크리스마스라더군.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은 것도 아니고 참 복도 지지리 없지?
아니다! 한국에 있었으면 괜시리 처량한 기분이 들테니
남반구의 여름의 크리스마스가 잘된 것인지도 몰라.
16부작 <추적자>를 다보고 나니 크리스마스 하루가 다갔어.
다음날...쌀도 감자도 야채도 국수도 모두 떨어졌지.
<고독한 미식가>라는 드라마 다운을 걸어놓고
어쩔 수 없이 장바구니를 들고 밖으로 나갔어... 햇살이 참 좋더군
그런데 왜 거리에 사람이 하나도 없지?
슈퍼나 가게 문도 하나같이 다 닫았네? 오늘 임시 휴일인가?
분명 크리스마스는 어제였는데...
맞아...한국은 어제였지...하지만 산티아고의 크리스마스는 오늘...
제기랄... 그나마 문을 연 곳은 중국 상점과 맥도널드 햄버거 집
가장 값싼 싸구려 버거 1,100페소(2500원)짜리를 싸갖고 집 앞 길 노숙자들이
진을 친 거리를 일부러 피해-성탄절인데 뭔가 주고 싶지만 나 또한 처지가 엇비슷한 걸...-
집으로 돌아와 <고독한 미식가>를 보며 미적지근한 햄버거르 씹고 있지.
오늘 저녁은 한국 슈퍼에서 유통기간이 열흘쯤 남아 떨이로 판 신 라면을 끓이며
고요하고 거룩한 밤을 시한부 생명인 슬픈 신라면과 함께 보낼 예정이야.
펠리즈 나비다! Feliz Navi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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