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팔,라다크

지구에서 단 하나 뿐인 하루...

하피즈 2009. 2. 16. 05:34

 

2008년 8월 10일

 

 

영원히 멈춰서 가지 않는 시간이 있어

기억은 막힌 하수관에 고인 시간처럼 거기서 늘 맴돌고

문득 꿈에서 깨면

늘 나는 비 내리던 거리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어

앞으로도 뒤로도 물러설 수 없는 시간을 서랍에 넣고

마리아 앤더슨의 노래를 들으며

내 인생 마지막 연애편지를 너에게 썼어.

 

 

 

섭씨 15도 정도의 쌀쌀함

강수량 10밀리리터 정도의 슬픔

중심기압 980헥토파스칼 내외로 우울했던 하늘

2008년 8월 10일

빛나던 은빛 자전거에

무거운 자물쇠를 채우고 돌아설 때

쉼라 행 버스시간은 골드 플레이크 열다섯 개비와 함께

발밑에 뒹굴고 있었지.

   

 

 

중국산 싸구려 포스터가 미래를 도매금으로 넘기던 그날

팥죽색 승복을 걸친 라마승들이

부활절의 유령처럼 거리를 돌 때

어깨 위로 눈물처럼 비가 흘렀고

그들의 행진은 마임이스트의 짧은 소매처럼

서글펐던 거야...

거리는 침묵이 말과 같은 뿌리를 가졌음을 가르쳐 주었어

말이 채워주지 못했던 거대한 공백을

침묵이 채워주고 있었지

 

 

 

 

성 존스 성공회 교회 뒤편 묘지

1863년 11월 20일

생을 멈춘 제임스 부루스의 묘비 앞에 섰지

‘그는 이곳에 묻혔지만 그의 말은 살아있다’

나는 무릎 꿇고 꺼이꺼이 울었어

돌아갈 수도 앞으로도 나아갈 수 없는 시간 앞에서

세상에 마지막 남은 망명정부 앞에서

내 영혼의 일부를 버리고 온 날

지구상에 단 하나 뿐 이었던 하루

 

 

 

 

 

 

 

 

2008년 8월 10일

 

베이징에서는 올림픽 전야제가 전 세계로 방송되고 있던 그 날,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맥그로드 간즈에는 비가 내렸다.

몇 일째 거리에는 촛불을 든 시위의 행렬이 맥그로드 간즈를 도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몇몇 여행자들도 티베트 유민들과 함께 거리를 돌았지만 나는 차마 그럴 마음의 형편이 되지 못했다.

대신 숙소에서 2km남짓 떨어진 영국 성 존스 성공회 교회로 매일 산책을 나갔다.

교회는 아주 오래 전 잊혀진 것처럼 마을에서 한참 떨어진 외딴 곳에 위치했다.

힌두와 무슬림의 나라 인도, 그리고 달라이 라마가 망명한 맥그로드 간즈와 오랜 세월을 버틴 성공회 교회는 묘한 울림이 있다.

 

 

James Bruce의 묘비

 

 

높은 첨탑과 화강암으로 쌓아올린 외벽, 길고 높은 스테인글래스 창문, 전형적인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교회였다.

교회 뒤편에는 기독교인의 무덤으로 보이는 10여 기의 묘가 보인다. 성 존스 교회라는 이름 외에는 교회의 내력을 알만한 어떤 정보도 찾기 힘들다.

인도와 티벳인들은 죽음 이후에 육신을 대지에 남기는 것은 이해하지 못했다.

특히 티베트와 라다크 인들은 죽음 이후 땅 속에 묻히는 것에 거의 공포를 느꼈다.

그들에게 육신은 영혼의 집으로 죽으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이치였다.

땅 속에 묻힌 육신속의 영혼은 빛도 보지 못한 채 어둠속에 갇히는 것이다. 영원한 생명의 길인 윤회가 원천 봉쇄당한 것과 같다.

티베트 고원과 라다크 처럼 메마른 땅에 육신을 묻는다면 썩지도 못하고 비닐봉지처럼 그 자리에 몇 년씩이나 머물러야 하기에...

그렇기 때문에 티베트인들은 시신을 하늘과 마주보게 눕히고 새들을 통해 육신을 자연으로 돌려보낸다.

인도인들에게도 주검은 한 줌의 재로 강물에 돌려보내야 하는 무의미한 단백질과 지방의 덩어리 일뿐이다.

이들의 관점에서 보면 묘지는 땅속에 주검을 가둔 빛도 공기도 없는 암흑의 공간이다.

묘비에는 무덤에 잠든 이의 이름과 태어나고 죽은 연대만 간략히 기록되어 있었다.

 

대부분 19세기 중반에서 후반 사이에 죽어 이곳에 묻힌 자들이었다.

19세기면 영국이 인도를 지배하던 시기이니 영국 성공회 교회라 추정하는 것이다.

물론 이곳에 묻힌 이들도 영국인일 가능성이 크다. 조금 더 교회 안쪽으로 들어가면 비교적 규모가 큰 묘비가 보인다.

인도와 자메이카의 총독이자 중국 대사를 지냈던 브루스 제임스라는 자의 묘비였다.

그는 1863년 11월 20일 이곳 다람살라에 묻혔고 그 때 그의 나이 52세 4개월이라고 묘비는 기록했다.

그의 미망인이 세운 묘비였다. ‘그는 이곳에 묻혔지만 그의 말은 아직 들을 수 있다.’ 묘비의 마지막 문구였다.

브루스 제임스가 이곳에 묻힌 뒤 100년 후 달라이 라마는 다람살라로 왔다. 비가 다시 거세게 뿌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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