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팔,라다크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자를 위하여...

하피즈 2009. 2. 17. 05:01

모 노마드Nomad* 유목하는 자를 위하여...

 

유목이 발명한 것들

불, 바퀴, 언어, 사냥, 문자, 목축, 도구, 예술, 항해, 문학, 시장, 민주주의...

그리고

 

정착이 발명한 것들

국가, 감옥, 세금, 저축, 총, 대포, 화약...

그리고 울타리

 

 

 

 

누군가 담벼락에 죽 긋고 달아난 사금파리 흔적인 줄 알았다.

왜 여기 있는지 또 어디로 가는지 따위는 묻지 말라는 투의

좁은 양미간, 그 얕은 주름인줄 알았다

 

 

 

 

가야한다는 건 너의 사정이고

만약 그렇다면 기꺼이 나의 육신을 내어 주겠다는 결기

빈 집에 홀로 자란 화분같은 무심함...길은 그러했다.

 

 

 

 

길은

꿈들이 마구 이어진 낡은 구둣발의 흔적이고

유랑의 역사를 기록한 오래된 도서관이다.

 

 

 

 

나는 지구의 삼분의 일을 돌아 기꺼이,

그들은 양들을 먹일 초지를 찾아 늘 그랬던 것처럼

길에서 만났다

 

 

 

 

나는 이 점에서 저 점을 잇는 최단거리인 직선을 달리고 있지만

그들은 아주 큰 원의 일부분을 오래 걷고 있다

 

 

 

 

나는 타국에서 왔지만

그들은 지구라는 행성의 원주민이다.

 

 

 

 

 

내가 차가운 울타리 안에서 페허처럼 병들 때

그들은 외로운 변방에서 견고한 내면을 쌓았다

 

 

 

 

 

나는 정착의 유혹에 흔들리는 불임의 유랑이지만

그들은 삶의 관성에서 자유로운 다산多産의 유랑이다.

 

 

 초 카르 호수

 

내가 푸른빛의 호수를 만날 때 세상에서 가장 황홀한 순간이었지만

그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황홀한 푸른빛의 일부였다.

 

 

 

 

 초모리리 호수

 

나는 떠나온 것 같은데

그들은 돌아온 것 같다.

 

 

 

 

바다와의 불화로 짠물을 담은 호수가 되었다

푸른 달빛이 허연 종아리를 담근 그 호수에서

 

  

 

 

아침이면 푸른 물에 흠뻑 젖어있을 것 같았던

그 밤의 별빛을 27.3217일 동안 생리불순의 여인과

뭉툭하게 턱을 괴고 바라보았다.

 

 

 

 

그러나

끝내는 도달할 수 없었던 달의 뒤편

아주 캄캄한 유목의 밤

그들이 그곳으로 사라질까 두렵다.

 

 

 

* 초 모리리 Tso moriri / 라다크 동남쪽에 위치한 염호. 해발 4,500미터에 위치

 

마날리로 향하던 지프가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동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흔적들이 조금씩 소멸되었다. 아니 한 번도 분필이 긋고지난 흔적이 없는 칠판과 같다고 해야 할 것이다. 수천만년 전부터 같은 모습이었고 미래에도 그럴 산과 강, 황무지들이 끝도 없이 달려왔다간 뒤로 멀어져 갔다.

점심 무렵 거짓말처럼 숲이 우거진 마을이 나타났다. 나무들 사이로 전형적인 라다크 가옥이 언뜻언뜻 모습을 드러냈다. 회칠을 한 벽은 하얗게 빛났고 지붕에는 겨우내 집안을 덥힐 과동시가 여름 햇살을 받으며 나른한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키 큰 미루나무 잎들이 반짝였다. 마을을 끼고 흐르는 강 주변에는 잘 익은 곡식들이 살랑살랑 파도를 쳤다. 짜이 한 잔과 마른 비스킷 한 조각으로 점심을 떼운 후 다시 차에 올랐다.

메마른 바위산 위로 햇빛이 질펀하게 흘러내렸다.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푸르렀다. 쥐어짜면 금세 라도 푸른 물이 주르륵 쏟아질 것 같은 하늘이었다. 산 정상에 쌓였던 눈들이 녹아 사나운 물줄기를 만들었다. 도로는 텅 비어 있었다. 여행자를 실은 또 한 대의 지프가 그들과 앞서거나 뒤서며 외로운 도로를 질주했다. 가끔 길 주변에 토끼눈을 한 마모트가 나타났다. 마모트는 외지인을 실은 지프를 놀란 눈으로 쳐다보다 곳곳에 파놓은 구멍 속으로 몸을 숨겼다. 간혹 호기심 많은 녀석들이 굴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이방인들을 쳐다보았지만 사람들의 눈과 마주치면 어김없이 구멍 속으로 줄행랑을 쳤다. 이 황량하고 심심한 대지에 마모트들마저 보이지 않았다면 초모리리로 가는 길은 더욱 쓸쓸했을 것이다.

도로 오른편에 유목민이 사는 천막 몇 동이 다가왔다. 함께 여행에 동행한 캐나다 여행자 리사가 차를 세워달라고 부탁했다. 일행은 차에서 내려 천막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유목민들이 어디선가 하나 둘 씩 나타났다. 수많은 마모트의 구멍이 그들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 아닌지 의심할 정도였다. 그들은 멀찌감치 서서 이방인들을 바라볼 뿐 낯선 이에 대한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 주뼛대며 이방인에게로 먼저 다가왔다. 타인과의 거리가 허물어지자 유목민들도 하나 둘씩 접근했다. 젊은 아낙들은 어린 아이를 안고 혼자 걸을 수 있는 꼬맹이들은 수줍은 듯 아낙네의 치마말기를 붙잡고 뒤를 따랐다. 그들의 얼굴은 햇볕에 검게 그을려 있었지만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밝은 빛이 났다. 웃을 때 드러난 하얀 이가 햇살에 반짝였고 깊게 패인 얼굴의 주름에는 척박한 땅에 겸손한 그러나 굴하지 않는 굳은 의지가 보였다. 어느 누구도 이웃을 미워하거나 질투와 시기로 가슴을 태우는 일은 없었다. 그들에겐 이 메마른 라다크 땅에서 염소와 야크를 먹이고 젖을 짜 그들의 아이들을 키우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벅차고 힘겨운 축복이다.

 

유목민 천막을 떠난 지프는 초 카르에 도착했다. 초 카르 역시 초 모리리 가는 길 중간에 위치한 호수다. 규모는 초 모리리나 판공초 보다는 작았지만 물빛은 신비 그 자체였다. 초록이 짙은 취록옥 빛이 호수를 은은히 물들였다. 에메랄드의 눈빛을 가진 여인의 눈동자가 그 안에 있었다. 나는 그 신비한 호수의 빛에 빨려들었다. 눈 덮인 산봉우리가 푸른빛이 감도는 초록 눈동자에 맺혔다. 시간도 헤어짐도 그리움의 고통도 없는 영원의 세계다. 햇살은 따가웠지만 바람은 제법 찼다. 호수 주변에 말라붙은 소금들이 한 낮의 태양과 만나 무수한 빛 알갱이를 만들어 냈다. 낯선 세상, 이질감... 이런 단어들이 존재하는 이유를 초 카르가 대신 말해준다. 경이로운 풍경에 취한 여행자들은 겨끔내기로 서로의 사진을 담았다. 시간은 이곳에서 잠시 머물렀다 이내 다른 곳으로 떠났다.

아주 먼 옛날 공룡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포유류가 새롭게 등장할 무렵 히말라야 산맥은 테티스 해라는 바다였다. 테티스 해를 사이에 두고 남과 북에는 두 개의 대륙이 마주하고 있었다. 현재의 인도 대륙과 유라시아 대륙이다. 두 개의 대륙은 아주 천천히 접근했고 결국은 거대한 충돌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바로 그 충돌의 접경지대가 히말라야 산맥이다.

두 개의 대륙이 하나로 합쳐지며 그 사이에 있던 바다는 꼼짝없이 육지에 포위가 되었다. 지표는 점점 더 상승하며 덩달아 고립된 바다도 산과 함께 융기했다. 바다의 물이 마르며 여러 개의 호수가 생겨나게 되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초모리리다. 그래서 초모리리의 물맛은 짜다. 바다의 기억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라다크에는 레의 북쪽 중국과 국경을 마주한 판공초와 남동쪽 초모리리, 이 두 개의 소금호수가 그 무렵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 후 지구에는 6,000 만년이라는 아주 긴 세월이 지난 후 호모 사피엔스라는 영장류가 등장했다. 지구의 나이를 하루로 친다면 인간은 고작 23시 59분 58초가 조금 넘어 태어난 존재다. 오늘도 호수는 하늘을 향해 조금씩 올라가고 있었다.

 

 

* <호모 노마드-유목하는 인간>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

 

노마드Nomade는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는 사전적으로 ‘유목민’,‘유랑자’를 뜻하지만 “공간적인 이동 뿐 아니라 특정한 삶의 방식에 매달리지 않고,끊임없이 자신을 바꾸어가며 창조적인 행위에 바탕을 둔 삶을 사는 현대인의 새로운 생존전략”이란 의미로 사용한다.

아탈리는 진정한 노마드란 “자신의 온 재산을 다 갖고 다니면서 늘 여행하는”사람을 가리킨다고 밝히며 현재 60억의 인구 중에 약 10억 이상의 현대적인 노마드들(이민자, 출장자,여행자 등)과 원시민족이라는 의미의 노마드 수 천명이 있다고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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