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이 신는 신발
오늘은 여행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사람의 신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발레리나의 토슈즈를 보신적이 있습니까?
헝겊으로 만든 몸체와 밑창과 앞코에 덧댄 가죽 두장,
신발 앞 부분에만 깔린 딱딱한 플래스틱 재질의 밑창...
차라리 짚신이 편해보일 정도로 부실해 보였습니다.
21세기에 인간이 이런 신발을 신는다는 게 도저히 믿겨지지 않았지요.
축구나 마라토너, 운동선수들에게 지급되는 최첨단 인체공학 기술이 담긴
신발에 비교한다면 발레리나의 토슈즈는 인간의 발에 고통을 주기 위한 형틀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보통 사람은 단 10분도 저런 신발을 신고 걸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하루에 10시간이 넘게 토슈즈를 신은 채 하늘로 비상합니다.
2006년 내한시 강수진이 발레<오네긴>의 티티아나을 연기할 때 신었던 토 슈즈
바로 위에 보이는 그림이 발레리나의 토슈즈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저 토우 슈즈의 본래 주인은 강수진씨입니다.
3년 전 그녀에게 공연이 끝난 후 받은 선물입니다...사실 간직하고 싶다고 부탁했습니다.
(토슈즈는 공연이 끝나면 버리는 1회용 신발입니다 ^^)
몇 년전 인터넷 포털 싸이트에 강수진의 투박한 발사진이 공개되면서
수많은 이들이 감동을 받은 사실을 기억하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저도 물론 그 중 한 사람이었지요.
다락에 뽀얀 먼지를 뒤집어 쓰고있던
강수진씨의 토우 슈즈를 보니 그 당시에 느꼈던 충격과 감동이 다시 생각나는군요.
강수진씨와의 인연은 1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슈튜트가르트 발레단에 입단한 후 처음으로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첫 주역을 맡은 직후라고
기억됩니다.
그때 잠시 한국에 귀국했었지요...
조금 과장을 보태면 20초반의 그녀는 정말 찬란하리 만큼 빛나고 아름다웠습니다.
세계 5대 발레단 동양인 최초이자 최연소 입단....
동양인 최초의 프리마 발레리나...
그녀에게 따라 붙는 수식어는 최고, 최정상, 최연소...
그야말로 최고의 1인에게만 붙을 수 있는 찬사들이 쏟아졌습니다.
강수진씨는 물론 그 후 말 그대로 세계 최고의 발레리나가 되었지요...
솔리스트를 거쳐 수석무용수, 발레리나 최고의 영예인 "브누아 드 라당스"상을 수상하며
그녀는 최고의 전성기를 누립니다.
그러나....
발레리나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그녀에게도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99년 찾아 온 부상이지요....
평생 중력과의 힘든 사투를 벌려야 하는 그들에게 부상은 운명처럼 따라다니는 굴레이지만
어떤 경우는 일상 생활 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치명적이기도 합니다.
2006년 강수진씨를 다시 만났을 때 그 당시를 회상하며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시는 무대에 설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가장 고통스러웠다고....
이미 그녀의 나이 30대 후반...
어느 누구도 그녀가 재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속된 말로 부상이 아니더라도 30대의 발레리나는 보통 사람으로 치면
환갑도 넘었다고 말들 하니까요...
끝도 보이지 않는 재할운동, 악몽과 같았던 3년간의 공백...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고통에도 그녀는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무대에서 춤출 수 있을 때 가장 행복하고 발레가 그녀의 삶 자체였기 때문에
걸을 수 있는 한 발레를 할 수 있다고 자신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녀의 곁에는 말없이 고통의 세월을 지켜 준 지금의 남편 툰치 소크멘씨가 있었습니다.
터키 출신의 발레리노이자 동료인 툰치씨는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연인이자 동반자입니다.
다시 무대에 서기 힘들 것이라는 주변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강수진씨는 묵묵히 자신이 할 수 있는 길을 걸었습니다.
마치 처음 무용을 배울 때처럼 차근차근, 그러나 쉬지않고...
그리고 기적처럼 그녀는 부활했습니다.
어떤 고난 속에서도 꺽이지 않는 의지로 결국 다시 무대엔 선 그녀를
사람들은 새로운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강철 나비'...
이제와서 곰곰히 떠올려보면 그녀에게 그토록 찬란한 빛이 날 수 있었던 것은 세계 최고의 발레리나여서가 아니라 누구보다 꿈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가졌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며 내가 살아오는 동안 저토록 뜨거웠던 적이 단 하루라도 있었는지... 떠올려보곤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나이 마흔의 프리마 발레리나 누구도 믿지 않았던 기적을 강수진씨는 보여 주었습니다.
타인의 눈에는 기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녀에겐 하루 10시간의 연습이 만들어낸
땀과 눈물의 결정입니다.
꿈에 대한 열정이 그녀를 지켜 주었고 불가능이라고 보이는 일을 만들어 냅니다.
절망하십니까?
희망이 보이지 않나요?
꿈꾸기엔 너무 늦었을까요?
강수진씨의 발이 아름다운 건
자신의 꿈을 향해 전력질주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꼭 일등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남들이 인정해주는 성공이 아니라고 해도 좋습니다.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 하나...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쏟을수 있는 열정만 가져도 사는 건 충분히 행복하다고
강수진씨의 아름다운 발은 말없이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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