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올리브를 곁들인 절인 대구와 감자 요리- 포르투갈 리스본
절인 대구와 타파스
- 스페인 요리에 대한 몇 가지 추억
가난한 여행자에게 욕망은 격리된 불꽃이다. 그 중 식욕은 거칠고 다루기 까다롭다. 그러나 냉정하게 다스린다면 작은 산소만으로도 뜨겁고 화려하게 타오를 수 있는 불꽃이다. 인도와 같은 더운 지방을 여행할 때는 이 불꽃에 많은 자양분을 제공해야 한다. 자칫 불씨를 꺼뜨린다면 건강을 잃고 병을 얻는다. 반면 추운 지방이나 온화한 곳을 여행할 때는 식욕의 힘은 놀라울 정도로 세다. 낯선 곳에 대한 긴장과 오랜 시간 걷기, 불편한 잠자리... 여행은 생각보다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일 중 하나다. 특히 스페인이나 프랑스, 이탈리아와 같은 지중해 연변의 나라들은 음식에 대한 탐미를 더욱 깊게 만든다. 말라붙은 바게트에 싸구려 치즈와 햄... 매일 반복되는 일관된 식단은 궁핍이라는 식탁보에 차려진 결핍의 이력들이다.
바르셀로나에 머무르며 해변에 인접한 식당에서 밥을 먹는 호사를 누린 것은 단 두 번이다. 이후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여행하는 두 달 반 동안 식당에서 제대로 된 끼니를 맛본 것은 열 손가락을 간신히 꼽을 지경이다. 부엌이 딸린 숙소에서 밥과 파스타로 아니면 바게트와 초리조, 과일을 사들고 공원을 찾는 것은 그다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그 와중에도 맥주와 와인은 꼭 챙겨 마시는 열정은 오로지 이들이 생수보다 싼 기묘한 물가 덕분이다.
스페인의 식탁에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다른 나라와 비교될 수 없다. 스페인 사람들의 뜨거운 열정의 반은 식탁에 그리고 나머지 반은 축구장과 투우장에 녹아있다. 스페인을 소개한 안내 책자에 따르면 스페인 사람들은 하루에 다섯 번 식사를 한다. 아침에는 보요bollo라는 패스트리와 카페 콘 레체cafe con leche(우유를 듬뿍 넣은 커피)로 가볍게 시작해 아침과 점심 사이에 가볍게 허기를 느낄 때 바르bar에서 가서 선채로 즐기는 비까bica(에스프레소)한 잔, 그리고 하루 중 가장 성대하고 진지하기 짝이 없는 점심만찬을 정오에서 4시까지 누린다. 이 시간에는 점심을 먹은 후 누리는 씨에스타가 포함되어 있다. 일반적인 직장인들의 점심시간도 무려 한 시간 반이다. 성대한 점심 이후 퇴근 후에는 타파스와 와인, 맥주가 곁들여진 술집순례가 기다린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기 전 마무리를 장식하는 간단한 저녁식사. 다섯 끼라고는 하지만 중간에 간식이라고 할 수 있는 티 타임을 제외하면 점심이 좀 과하다 싶을 정도지 다른 서구 국가와 큰 차이가 없다. 정말 다섯끼의 식사를 하는지 궁금해 스페인 여행자들의 식사를 줄곧 눈여겨 보았지만 결론은 간소하다 못해 담백했다. 단 제대로 된 성찬盛餐을 그들은 줄길 줄 안다라는 사실만 발견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스페인 인들은 밥 먹는 중간에 잠시 일한다’ 라는 다른 EU국가의 시기에 찬 빈정거림은 스페인 인들의 ‘음식에 대한 탐미적 열정’을 부럽게 바라보는 시선에 불과하다. 물론 다른 EU국가와 비교하면 스페인의 가계 지출 중 외식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월등히 높다. 그러나 수천의 미각을 자극하고 또 새로운 맛의 세계를 개척해가는 스페인 요리, 그 쾌락이 주는 향연 앞에서 그 정도의 지출 정도는 충분히 지불하고도 남음이 있다. 말을 덧붙인다면 스페인에서 단지 ‘살기 위해 먹는 것’만큼 불행한 인생은 없다. 말라빠진 바게트와 버터를 두른 느끼한 토스트로 일주일을 연명한다고 해도 새로 만난 친구와 식탁에 마주앉아 더없이 향기로운 와인과 감미롭고 열정적인 요리의 세계에 빠지는 것은 스페인 여행의 포기할 수 없는 미덕이다.
첫번째 추억, 가난한 여행자의 성찬盛饌, 타파스Tapas
밤 10시. 보통 유럽이라면 저녁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야 할 시간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식당들은 이때부터 활기를 찾는다. 쾌활한 웃음과 대화가 넘치고 재빠르게 주문을 받는 웨이터의 능숙한 서비스와 테이블 사이를 오가는 경쾌한 발걸음, 그들과 주고받는 가벼운 농담에도 조금은 과장된 웃음을 터뜨리는 손님들...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식당은 우울 따위가 범접할 수 없는 낙천주의의 천국이다. 깔끔한 정장 차림의 웨이터가 제공하는 세련된 서비스를 받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담배를 입에 문 늙은 주인이 무표정한 얼굴로 주문을 받는 후미진 골목의 오래된 식당에 이르기까지 수다와 익살, 그리고 맛이 베풀어주는 쾌락과 포만감으로 충만하다.
스페인 말로 세나Cena인 저녁 식사는 보통 10시 쯤 시작되어 자정 무렵이 돼서야 끝난다. 저녁 식사는 점심식사- 코미다Comida-에 비하면 간소한 편이다. 정찬인 점심은 엔쌀라다-ensalada 샐러드-에서 시작되어 수프와 전채요리, 메인요리, 그리고 디저트와 커피로 이어지며 물론 술도 한 두잔 곁들이기 마련이다. 무려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을 점심식사를 위해 할애한 후 씨에스타로 화려한 점심을 마무리한다. 낮잠을 마친 후 일터에서 하루의 일을 끝낸 후 술집 순례를 시작하는데 2,3곳 이상 들르는 곳은 보통이다. 이 술집 순례에서 와인이나 맥주, 씨드라-Sidra 사과술- 등과 함께 먹는 음식이 바로 타파스Tapas다. 스페인에서 다양한 종류의 타파스를 맛볼 수 있는 곳을 따스까tasca라고 한다. 타파스 전문점인 셈이다. 따스까 말고도 타파스를 맛볼 수 있는 곳은 흔하다. 맥주나 와인, 시드라, 쉐리주 등을 파는 작은 시골 술집 떼베르나teberna에서도 타파스는 쉽게 맛볼 수 있는 음식이다. 오믈렛에서 감자튀김에 곁들인 하몬, 마블이 선명한 살라미, 러시아 풍 살라다, 올리브 오일과 곁들인 생선조림, 가다랑어 꼬치, 오징어 볶음, 치킨과 새우구이 등 타파스는 지역과 각각의 음식점에 따라 음식의 종류와 조리법, 그리고 재료가 너무나 다량하기 때문에 쉽게 어떤 음식이라고 정의내리기 힘들다.
타파tapa-‘뚜껑’이라는 뜻 타파스Tapas는 타파tapa의 복수형이다-라는 단어에서 타파스의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오래전 스페인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마을과 마을 사이에 하루 또는 반나절의 길을 걸어야 했는데 이 길을 가며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맥주나 와인 같은 술이다. 여행자들은 술에 곁들여 요기를 할 간단한 음식도 필요했다. 더운 날씨에 쉽게 변질되지 않으면서도 영양과 열량도 풍부한 하몬이나 살라미는 아마 그들이 가장 즐겨먹었던 음식일 것이다. 실제 한달 동안 프랑스에서 스페인 서부의 대서양에 이르는 산티아고 길을 걸으며 바게트와 하몬, 초리조chorizo-매콤한 맛을 내는 돼지고기 소세지-언제나 빠지지 않는 식사 메뉴였다. 게다가 이것들을 적당하게 썰면 향기로운 와인에 벌레가 들어가거나 맥주가 넘치는 것을 막기 위한 뚜껑으로 함께 쓸 수 있으니 말 그대로 금상첨화였을 것이다. 타파스는 여행길에 간단하게 먹는 음식에서 유래된 타파스는 이후 다양한 종류의 재료와 조리법으로 현재 스페인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음식으로 변화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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