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깊은 휴식에 들어간 휴게소
검은비가 후둑후둑 떨어지며 밤을 요란하게 흔들어댔다.
새재 너머 폐허가 된 휴게소 앞 온 철 지난 목련이 밤 새 눈에 밟힌다.
푸른 페인트 칠이 허옇게 바랜 둥근 건물은 파출소나 검문소 처럼 보인다.
어쩌면 파출소를 개조해 휴게소로 썼는지도 모른다.
사람이 살다 버려진 집에는 연민이 든다.
곰팡이가 슬고 칠이 벗겨진 버려진 건물 앞에는
진한 그늘을 만드는 깊은 눈처럼 목련 그렇게 검게 시들고 있었다.
그 날 밤 검은 빗방울은 밤 새 허연 목련 꽃잎을 두들기고 있을 게다.
목련은 밤 새 시들었을까?
# 새재
조령鳥嶺이라고도 불리는 고개다.
새도 날아 넘기 힘들어서 혹은 억새가 우거진 고개 마루라고 해서 새재다.
남쪽 문경의 조령산에서 괴산 방향 마패봉이 이곳에서 만난다.
백두대간의 가운데 줄기다.
1관문인 주흘관
2관문인 조곡관
3관문인 조령관까지
문경 새재길은 이 세 개의 문을 관통하는 옛길이다.
조령관
# 책바위
새재를 오르기 바로 전 '책바위'라는 묘한 분위기의 돌무더기를 만났다.
문경에 사는 부자집 외동 아들이 너무나 몸이 허약해 도사에게 물었더니
도사는 집 앞의 돌담이 아들의 기氣를 눌러 그러니 아들이 직접 돌담을 헐어
책바위에 앞에 탑을 쌓고 지극 정성을 들이라고 일렀다.
부잣집 아들은 3년간 집 담을 헐어 이 곳에 돌탑을 쌓은 후 건강해진 몸으로
공부해 장원 급제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길을 '장원급제길'이라고도 한다. 예로부터 영남의 선비들이 한양까지
과거를 보러 이 길을 걸었다. 책바위는 영남 선비들의 열망이 현실로 표현된 상징물이다.
지금도 입시철이면 수험생을 둔 부모들이 이 탑에와 치성을 들인다.
3년 간 이 같은 돌탑을 만들면 공부는 몰라도 몸은 분명 단단해질 것이다.
책바위
# 주유소
촌에는 버려진 집들이 제법 많다. 식당이나 주유소도 '버림'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대개 큰 길이 주변에 나면 옛 길의 상권은 죽게 마련이다.
새재 길에 그런 집들이 무수히 많다.
# 벚꽃은 지고...
새재를 넘어 30분 정도 내려오면 고사리라는 작은 마을이 보인다.
신선봉의 기암 절벽 아래 풍치가 좋은 이화여대 수련관 별관이 있고
좀 더 아래로 내려오면 수련관이 나온다.
도로에 고인 물웅덩이에 벚꽃잎이 잠겨있다.
여름으로 가는 길목인 것이다.
# 배꽃
5월은 배꽃이 절정이다.
# 수안보로 접어드는 길
새재 아래 고사리 마을에서 수안보까지 약 9km 남짓.
천천히 걸어도 3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다.
새벽에 벼락과 함께 쏟아지던 빗줄기가 오전 나절 잠잠하더니
오후에 다시 빗줄기가 거세졌다. 수안보로 들어서자 몸이 흠뻑 젖었다.
하지만 언제 또 이 비를 맞는다는 말인가?
# 벚꽃이 돌아가는 길
봄 한 철 찬란하다 비와 함께 가는 꽃
벚꽃 지는 풍경
# 걷기 3일 째 ...
수안보에서 소조령을 넘어 충주로 향한다.
최종 목적지는 임경업 장군 사당인 충렬사...
거리로 따지면 19Km에 불과하지만
3번 국도를 따라가는 길이기에 매우 지치고 힘든 길이다.
비는 걷히고 대신 누런 모래바람이 불었다.
# 외가를 찾아나선 할머니, 길을 잃다...
개량 한복을 차려 입은 할머니 한 분이 길 위에 보퉁이를 하나 들고 서계셨다.
길의 갈피를 찾지 못한 표정이다.
'외가를 찾아왔는데 마을이 변해서...'
'전화는 해보셨어요?'
'전화 번호를 몰라서...'
'그럼 일가 친척 분들이 지금 살고 계신가요?'
'.......'
몇 년만에 외가를 찾아나선 길.
변해 버린 고향에서 길을 잃었다.
낯선이가 GPS로 예전 고향었던 이에게
길을 알려주었다.
그나저나 왜 할머니는 무작정 외가를 찾아 나섰을까?
가슴 한켠이 시리다.
외가를 찾아나선 할머니
설운천
# 달래내와 만나는 설운천
3번 국도
임경업 장군 사당 '충렬사'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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