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옛날의 충실한 외야수로서 미미한 긍지를 트렁크 밑바닥에 집어넣고, 항구의 돌계단에 걸터앉아,
아무 것도 없는 수평선에서 언젠가 모습을 나타낼지도 모르는 중국행 슬로 보트를 기다리리라.
그리고 중국 도시의 빛나는 지붕을 생각하며 그 초록으로 물든 초원을 생각하리라.
상실과 붕괴 뒤에 오는 것이 비록 무엇이든, 이젠 나는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마치 명타자가 내야의 수비를 두려워하지 않듯이, 신념에 찬 혁명가가 교수대를 두려워하지 않듯이.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러나 친구여, 중국은 너무나 멀다.
- <중국행 슬로보트> 무라카미 하루키
태국 국경 훼이싸이 인근 라오스 국경 선착장
태국 북부에서 라오스로 가기 위해서는 대략 3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1. 비행기 : 빠르지만 비싸고 대도시만 연결한다.
2. 차량 : 비교적 빠르고 저렴하지만 볼 것이 하나도 없다.
3. 배 : 가장 느리지만 저렴하다. 그러나 3일 동안 자고 먹어야 하기 때문에 차라리 육로를 이용하는 것이 싼 편이다.
슬로보트와 패스트 보트 두가지가 있으며 슬로보트는 배에서만 이틀, 패스트 보트는 꼬박 하루가 걸린다.
지도를 잠깐 참고하면 ... 퍼온 그림입니다...
태국과 라오스 인근 지도
보통 태국 북부 치앙마이에서 치앙콩,훼이싸이를 거쳐 라오스 루앙프라방까지 이동을 하는데
슬로보트를 타기 위해서는 태국 국경인 훼이싸이까지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합니다.
그곳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 날 아침 라오스 입국 절차를 밟은 후 슬로보트를 타고 루앙프라방까지 가게 되는거죠.
물론 저는 주저없이 가장 느리고 저렴하면서 고단한 슬로보트행을 택했습니다.
슬로보트는 대략 버스 엔진을 장착한 나룻배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배의 고물에 엔진이 있고 선원용 선실이 있으며 이물에서 기관실까지 승객용 나무의자가
2열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대략 많게는 100명까지 실어나를 수 있죠.
배를 타는 사람들 대부분은 메콩강 인근에 사는 라오스 주민들과 일부 여행자들입니다.
배를 탄 날도 약 80여명이 승선을 했고 10여명의 서구 여행자들 틈에 유일한 동양 여행자로
끼어 들었습니다.
대략 슬로보트는 저렇게 생겼다고 보시면 됩니다.
슬로보트 여행은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베트남 사이공에서 캄보디아 프놈펜까지 갈때도 이틀간 슬로보트를 이용했었죠.
솔직히 지루하고 덥기만 했습니다.
늦게 승선한 덕분에 자리를 못잡았습니다.
다행히 슬로보트 선원의 배려로 엔진룸 뒷편 선실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선실이라고 해봐야 나무갑판에 장판 한장 깐 것이 고작입니다.
그래도 피곤하면 누워서 잘 수도 있기에 승객용 의자보다는 한결 편합니다.
지난밤 태국 국경 마을에서 만났던 사비나와 율리아가 오렌지 색 해먹을 펼칩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대학을 다니는 사비나와 율리아
모험심도 가득하고 궁금한 것도 많은 23살 동갑나기 친구이자 연인입니다. 레즈비언이지요.
특히 사비나는 인도 고어인 샨스크리트어를 독학할 정도로 동양 문화에 풀 빠져있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여행 내내 말린 과육과 견과류를 권하며 이것저것 캐물었습니다.
역시 친하게된 독일 쾰른에서 온 처자입니다. 이름은 까먹어서 ^^
꽤 미인인데다 솔로로 여행한다는 사실이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럿이 있지만 주로 이야기를 나눈 것은 미국에서 교수를 한다가
정년 퇴직후 여행을 나온 노부부, 그들과 일행인 프랑스 남자와 라오스 여자 커플, 그리고 딸입니다.
프랑스남자와 라오스 여인의 딸입니다.
그들은 라오스 여인의 처가로 간다고 하더군요. 그곳에서 몇일간 머물다가
루앙프라방으로 온다고 합니다.
황포 승의를 입은 어린 승려들이 물놀이를 나온 모양입니다.
배는 느릿느릿 메콩강을 가로질러 하류쪽으로 내려갑니다.
끊없는 녹새의 정글과 누런 황톳물이 시야에 가득찹니다.
고기를 낚는 어부도 보이고 ...
메콩강 인근 마을에 사는 젊은이들도 은근히 호기심을 보이며 슬로보트로 접근합니다.
간혹 새들의 군무도 구경할 수 있습니다.
슬로보트는 말 그대로 대중 교통입니다.
승객이 원하며 어느 마을이든지 잠시 정박을 하고 짐을 싣거나 승객을 태웁니다.
라오스 여인가 살던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두 부부를 위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마중을 나왔더군요
역시 그들의 눈에는 이들은 아직 낯선 이방인입니다.
두 부부를 내려놓고 배는 다음 목적지를 향해 다시 출발합니다
슬로보트는 늦은 오후 무렵 마을 한곳에 정박해 그곳에서 하루밤을 쉬고 다음날 아침 다시 출발합니다.
나무에서 다이빙하는 아이
배가 강변 마을 어귀에 정박할 때면 마을에선 어김없이 열대과일과 탄산음료를 파는 소년들이 배안으로 들어옵니다.
그 때마다 일행은 맥주를 한 병씩 돌아가며 샀습니다.
쉼없이 재잘대던 사비나와 율리아가 바닥에 누워 잠들었습니다.
슬슬 졸음이 밀려오면 선실 바닥에 누워 자거나 카드놀이를 합니다.
그것도 지치면 론리 플래닛을 뒤적이며 루앙프라방에 도착하면 어디서 머물고,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하지요.
하노이에서 구입한 2001년판 인도차이나 중고 론리 플래닛을 보며 고민의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최소한 8년 전 정보가 유효할지 아무 쓸모가 없을지는 몰라도 그렇게 무의미한 일에 열정을 쏟는 것도
슬로보트 여행을 즐기는 한 가지 방법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것 하나는 확실합니다. 슬로보트를 타면 친구 사귀는 시간은 충분하다는 것이지요.
아마 연애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
멀리 루앙프라방 선착장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슬로보트의 목적지이지요.
루앙프라방 야시장 풍경
루아프라방 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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