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진실
누구나 아픈 곳은 있다.
마주치지 않고 돌아가고 싶은 길
나에게 베트남은 그런 불편한 곳이다.
이른 새벽 하노이역에 도착한 열차
이국에 대한 최초의 기억은 베트남에서 시작된다.
그저 내가 사는 곳과는 다른 나라,
머릿속에 존재하는 추상적 개념으로서의 외국이 아니라
구체적인 체취로 아주 생생한 얼굴로 내 삶에 등장했다
학교를 들어가기도 전
한글을 깨우치지도 못했을 무렵
월남이란 다낭이란 낯선 도시에서 엽서가 왔다.
기억도 가물한 아버지가 보낸 그림엽서다
분명 초록의 야자수가 무성한 밀림이었다고 기억한다
아주 오랜 후 <아비정전>이란 영화를 보았을 때
분명 아버지의 그림엽서를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엽서에서 후텁지근한 열대의 냄새가 확 풍겼다.
바나나처럼 화려한, 파인애플처럼 달콤한
앵무새 깃털같은 원색의 세상이 그곳에 있었다.
가슴이 뛰고 눈앞이 아릿했다.
베트남에 대한 최초의 기억은
이국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시작되었고
미군의 패주로 환상은 종말을 맞이했다
Cold War는 미지근한 콜라만도 보다 더욱 부도덕했다
방심하면 '월남 꼴난다'는 협박이 난무하는 세상이었다
철부지 아이의 초록빛 날개 같던 베트남은
수취인 불명의 소포처럼
유년의 기억 속에서 뿌연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잊혀져갔다
그러나 ...
동경이 환멸로, 추억이 죄책감으로 자리를 바꾸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한 건 아니다
하노이로 가는 야간열차는
열대의 밤을 질주해 푸른 새벽 하노이 역에 도착했다.
북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
통킹 만의 미 구축함 매독스도
어두컴컴한 방공호에서 보냈던 구정의 긴 밤도
첫 사랑의 아픈 추억처럼 정부기록 보존소에서
잠들어 있을 것
서로의 심장에 총을 겨눴던 사람들이
나란히 앉아 쌀국수를 먹고 펩시콜라 판다
편치 않은 기억 때문일까?
마주보는 눈길이 불편하다
논을 쓴 여인의 시선의 끝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매일 저녁 땀에 흠뻑 젖은 옷을 빨았다.
밤에 널은 빨래는 아침이면 말랐다.
아침에는 늘 새물내가 났다
하노이의 밤은 지난날의 악몽을 치유하는
힘을 갖고 있다.
하노이 시장
베트남 하노이 대학생 남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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