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차이나

몽족 이야기

하피즈 2009. 2. 21. 15:24

 

족Black Mong 이야기

 

 

 

할머니는 열 네살 때 어머니를 낳으셨고

어머니는 열 여섯에 나를 세상에 내보냈다

 

 

 

 

아마 나도 열 다섯 쯤이면 검은 옷을 입은 몽족의

사내와 결혼을 하고

그 이듬해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나를 닮은 예쁜 딸을 가질 것이다.

 

 

 

 

우리는 섬처럼 살았다.

매일 아침 짙은 안개가 속삭이는 대숲을 따라 걸었고

안개 가득한 바람을 숨 쉬었다

 

 

 

 

 

세상은 우리와 모두 같은 줄 알았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인가

다른 얼굴, 다른 눈, 다른 냄새를 가진 사람들이

안개 깊은 마을로 들어왔다

 

 

 

 

우리 옷과 모자, 목걸이를 사주는 그들이 고마웠다.

편하고 튼튼한 신발도 사고 살림도 늘었다.

시장은 당장 우리를 부자로 만들어 줄 것 같았다.

 

 

 

 

그런데 전 보다 많이 가졌어도 왜 우리는 가난한 걸까?

평생 실을 삼던 할머니의 검은 앞니가 왜 부끄러운 걸까?

 

 

 

처음에는 우리가 그들을 보며 웃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들이 우리를 보고 웃는다.

 

 

 

 

모래톱에 버려진 빈 소라껍질을 보았는가?

아무도 귀 기울여 듣지 않는 신음소리를 내며

시들어 가던....

 

 

 

 

버스가 들어오면서

안개의 속삭임도 대숲의 향기도 사라졌다.

나도 버스를 타고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다.

 

 

 

당신들이 왔던 먼 세상...

그곳엔 우리가 누리지 못했던 모든 것들이 있겠지?

그곳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이를 업고 달리는 소녀

 

 

파가는 길

 

인도차이나 반도로 들어가는 중국발 야간버스는 아열대의 기후에 꼼짝없이 나포되었다. 자정을 넘기자 도로 양편의 빽빽한 정글에서 뿜어져 나오는 습기가 버스를 완벽하게 점령했다. 버스 안은 퀴퀴한 패배의 냄새가 진동한다. 여행자들은 불쾌로 밀봉된 깡통 안에서 허덕댔다.  부패해 가는 정어리처럼...피부는 도마뱀의 살가죽처럼 끈적거렸고 온갖 정체를 알 수 없는 먼지와 오염물들이 엉겨 붙었다. 쿤밍에서 동행했던 한국 여행자들의 입에서 고통스런 신음이 흘러나왔다. 아무도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한 열대의 밤이다.

 

쿤밍에서 밤을 꼬박 새운 후 국경도시 허코우에 도착했을 때 이미 날은 밝아 있었다. 다리하나만 넘으면 베트남 국경도시 라오까이다. 라오까이에서 사파까지는 또 버스로 한 시간 남짓. 해발 1,600미터의 고산지대에 위치한 사파에 오르는 동안 차창 밖 풍경이 여러 번 바뀐다. 기온도 점차 내려가며 제법 선선해졌다. 견딜만해 진 것이다.

 

 

 

사파는 북부산악지대의 몽족과 자오족, 따이족, 눙족 등 소수부족이 사는 오지였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 아열대의 날씨에 지친 프랑스 인들이 이곳으로 몰려왔다. 그들은 이곳을 여름휴양지로 선택했다. 그 때부터 사파는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농밀한 안개가 산을 에워쌌다. 사파는 그 속에서 은밀한 속살을 드러냈다. 라오까이를 출발한 미니밴은 마을의 중심으로 보이는 광장 앞에 멈췄다. 역시 뿌연 안개가 마을을 느릿느릿 몰려다녔고 삼삼오오 무리를 이룬 블랙 몽족의 모습이 보였다. 어린 아이에서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처음에 그들은 그저 하릴없이 배회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관광객들에게 그들이 직접 만든 모자나 천, 의류 등 수공예품을 팔거나 아니면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팔 물건들은 직접 만들기도 했다. 거의 대부분 여자일 뿐 남자들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몽족의 사내 아이들

 

 

중국의 소수민족처럼 이곳도 모계사회의 전통이 강하다. 자녀의 양육과 생계는 여자의 몫이다. 그래서인지 몽족의 여자들은 아주 일찍 결혼을 해왔다. 예전에는 빠르면 13세에 혼례를 치뤘다. 다소 연령이 높아지긴 했지만 요즘도 사정은 비슷하다. 거리에선 유난히 아이를 업은 앳된 소녀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몽족 여자들의 결혼 여부는 귀고리로 구별한다. 기혼은 굵고 무거운 귀고리 여러개를 미혼은 가늘고 가벼운 귀고리를 귓볼에 꿴다.

 

 

 

 

시장과 점포, 숙박시설 등은 경제권은 외지에서 온 베트남인들이 독점하고 있었다. 관광객들이 아무리 몽족의 기념품을 팔아주어도 결국 그 돈은 베트남인들의 호주머니에 들어간다. 북미 인디안이나 남미의 인디오, 중국의 소수부족 등 마이너리티의 사정과 엇비슷하다. 집과 땅, 그리고 노동력까지 제공하지만 결국 그들에게 남는 건 빈곤과 차별의 대물림 뿐이다. 경제적 도구-자본, 시스템 그를 강제할 수 있는 물리력-를 소유하고 있는 집단과 없는 집단 간의 거래에 평등과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곳에 강요와 복종만 존재할 뿐이다.

 

 시장에서 흥정하고 있는 외국인을 바라보는 몽족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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