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풍경

여행에서 준비해야 할 것들

하피즈 2009. 2. 6. 13:41

행에서 준비해야 할 것들 

 

마르셀 뒤샹의 여행 가방과 전혀 관련없는... 빠이의 삼소나이트

 

 

나침반, 지도, 튼튼한 신발, 몇 장의 속옷과 양말, 우비, 주머니 칼, 여권, 사진기...

따져보면 별 것 아니다.

다 없어서도 떠나는데 문제없다.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건 무엇일까?

지갑, 옷장, 따뜻한 방, 고양이, 노트북, 일감, 사랑...

살펴보면 별 것인 것들도 꽤 있다.

그러나 역시 없어도 살 수 있다.

 

 

인도 여행에서 만난 친구 Monica Lopez

 

세상을 책이라고 한다.

여행을 하는 건 세상을 꼼꼼히 읽는 것이라 말한다.

내면이 빈약해서는 책을 꼼꼼히 읽을 수도 없고 읽어도 무슨 뜻인지 모른다.

한마디로 보아도 느끼지 못하고 돌아온 뒤에도 남는 게 없다는 말이다.

 

라다크의 수도 레

 

 

여행을 떠날 때 나의 내면은 달의 크레이터처럼 가난했다.

돌아왔을 때 채운 것도 없다. 우편함에 밀린 세금 체납 고지서만 수북했다.

 

칭따오 이름모를 골목, 열린 창문

 

 

책읽기도 싫어하거니와 여행을 통한 충만한 감성의 은총 따위는 바라지도 않는다.

나는 더 깊게 안으로 들어가는 늙은 광부다. 

재로 남은 석탄이나 몇 덩어리나 비운다면 그 뿐...     

내면에 대한 구심력이 바깥을 향한 원심력을 만들었다.

두 개의 힘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는 게 여행이다.

 

 칭따오 재개발 구역

 

버스는 종점終點에서 출발했다.

떠남과 회귀의 간격만 준비하면 된다. 여행의 준비는 그것으로 족하다.

 

자... 이제 떠날 시간이다... 항 터미널

 

 

11시 30분 인천공항 37번 게이트

탑승권의 게이트 넘버가 유난히 외워지지 않는다.

몇 번을 확인해도 불안하다.

원 웨이 티켓One Way Ticket

편도 차표라고 하면 촌스런 느낌도 있거니와

중학교 시절 동명의 노래에 맞추어 몸을 너저분하게 흔들어본 경험이 있기에

원 웨이 티켓하면 괜히 멋있어 보인다.

왕복티켓은 목젖까지 단추를 채운 드레스 셔츠처럼 숨막힌다.

 

 

돌아올 시간을 맞출 자신도 없거니와

정확히 어디를 여행할지 모르기도 했다.

목적지는 그냥 가장 먼 곳...

동쪽으로 걸어갈 수는 없기에 서쪽으로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혹은 걸어서 갈 것이다.

 

칭따오 서쪽으로 가는 멋쟁이 형님... 

 

서쪽으로 가면 좋은 이유는

해지는 모습을 신물나게 볼 수 있어서다.

시간을 조금씩 벌 수 있다.

동쪽으로 걸어 간다면...

해 뜨는 모습을 볼 수 없다.

난 늘 그 시간 쯤이면 자고 있기 때문에...

시간을 조금씩 까먹는다.

달마가 동쪽으로 갔다기에 그냥 가기 싫다.

그리고 한국의 동쪽은 바다다.

그러다...

어느날 먼 서쪽마을에서

노을이 참 아름다워

이제 그만 가야지 생각이 들면

다음날 동쪽으로 가는 새벽 첫차를 타면 그만이다.

 

 

비행기를 탈시간이다.

괜찮은 빈 의자인데 남기고 가는 게 아쉽다.

대합실에 언제나 멋진 빈 의자가 기다리길

나는 간절히 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