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준비해야 할 것들
마르셀 뒤샹의 여행 가방과 전혀 관련없는... 빠이의 삼소나이트
나침반, 지도, 튼튼한 신발, 몇 장의 속옷과 양말, 우비, 주머니 칼, 여권, 사진기...
따져보면 별 것 아니다.
다 없어서도 떠나는데 문제없다.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건 무엇일까?
지갑, 옷장, 따뜻한 방, 고양이, 노트북, 일감, 사랑...
살펴보면 별 것인 것들도 꽤 있다.
그러나 역시 없어도 살 수 있다.
인도 여행에서 만난 친구 Monica Lopez
세상을 책이라고 한다.
여행을 하는 건 세상을 꼼꼼히 읽는 것이라 말한다.
내면이 빈약해서는 책을 꼼꼼히 읽을 수도 없고 읽어도 무슨 뜻인지 모른다.
한마디로 보아도 느끼지 못하고 돌아온 뒤에도 남는 게 없다는 말이다.
라다크의 수도 레
여행을 떠날 때 나의 내면은 달의 크레이터처럼 가난했다.
돌아왔을 때 채운 것도 없다. 우편함에 밀린 세금 체납 고지서만 수북했다.
칭따오 이름모를 골목, 열린 창문
책읽기도 싫어하거니와 여행을 통한 충만한 감성의 은총 따위는 바라지도 않는다.
나는 더 깊게 안으로 들어가는 늙은 광부다.
재로 남은 석탄이나 몇 덩어리나 비운다면 그 뿐...
내면에 대한 구심력이 바깥을 향한 원심력을 만들었다.
두 개의 힘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는 게 여행이다.
칭따오 재개발 구역
버스는 종점終點에서 출발했다.
떠남과 회귀의 간격만 준비하면 된다. 여행의 준비는 그것으로 족하다.
자... 이제 떠날 시간이다... 공항 터미널
11시 30분 인천공항 37번 게이트
탑승권의 게이트 넘버가 유난히 외워지지 않는다.
몇 번을 확인해도 불안하다.
원 웨이 티켓One Way Ticket
편도 차표라고 하면 촌스런 느낌도 있거니와
중학교 시절 동명의 노래에 맞추어 몸을 너저분하게 흔들어본 경험이 있기에
원 웨이 티켓하면 괜히 멋있어 보인다.
왕복티켓은 목젖까지 단추를 채운 드레스 셔츠처럼 숨막힌다.
돌아올 시간을 맞출 자신도 없거니와
정확히 어디를 여행할지 모르기도 했다.
목적지는 그냥 가장 먼 곳...
동쪽으로 걸어갈 수는 없기에 서쪽으로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혹은 걸어서 갈 것이다.
칭따오 서쪽으로 가는 멋쟁이 형님...
서쪽으로 가면 좋은 이유는
해지는 모습을 신물나게 볼 수 있어서다.
시간을 조금씩 벌 수 있다.
동쪽으로 걸어 간다면...
해 뜨는 모습을 볼 수 없다.
난 늘 그 시간 쯤이면 자고 있기 때문에...
시간을 조금씩 까먹는다.
달마가 동쪽으로 갔다기에 그냥 가기 싫다.
그리고 한국의 동쪽은 바다다.
그러다...
어느날 먼 서쪽마을에서
노을이 참 아름다워
이제 그만 가야지 생각이 들면
다음날 동쪽으로 가는 새벽 첫차를 타면 그만이다.
비행기를 탈시간이다.
괜찮은 빈 의자인데 남기고 가는 게 아쉽다.
대합실에 언제나 멋진 빈 의자가 기다리길
나는 간절히 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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