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 시인이 마지막으로 근무하셨던 덕치초등학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했는데?~~~~"
모처럼 주어진 추석연휴 농번기휴가를 일만 하고 지내기에는 뭔가 아쉬워하는
이쁜(?) 아내가 밑자락을 깐다.
"오늘같은 날은 움직이는 것이 아니여"
길이 복잡해서 엉키기 쉬워 안되겠다고 나는 발뺌했지만
아내의 간절한 눈길을 피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복잡하지도 않고 의미도 있는 김용택 선생님의 문학산실인
섬진강변의 진메마을과 덕치초등학교를 답사길을 나서니
아내가 무척이나 좋아한다.
김용택시인의 생가가 있는 진메마을을 가기 위해서는
서울방면에서 오실 때에는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태인I.C로 나와
태인을 거쳐 내려오면 된다.
기왕 태인을 들르실 바에는 태인 읍내에 있는 피향정을 답사하시고 오시면 좋겠다.
광주에서 진메마을을 오실 때에는
남해고속도로와 88고속도로를 타고 순창 I.C로 나와
순창읍내 초입에서 전주방면 27번도로를 가기 위해 우회전한다.
계속 전주방면 27번 도로를 따라가시면 된다.
가다가 보면 회문산 자연휴양림으로 들어가는 사거리가 나온다.
직진하면 전주방면이고
좌회전하면 회문산자연휴양림으로 들어가고
우회전하면 신촌, 장산(진메마을)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이 사거리가 일중마을인데
이 사거리에서 바로 우회전하지 마시고 직진하여 1km 정도 가시면
좌측에 김용택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근무하신 덕치초등학교(위 사진)가 나온다.
덕치초등학교를 들러보시고 다시 사거리로 되돌아와
바로 이 사거리에서 좌회전하여 조금만 들어가면 강을 만나고
바로 그 곳에 큰 느티나무 두 그루가 서있고 이 마을이
김용택 시인의 생가가 있는 진메마을이다.
태인 I.C로 들어오실 경우
태인의 피향정 답사를 마치고 30번 도로를 따라 강진방면으로 내려가다 보면
산외면 한우마을과 산내면 옥정호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서 산외면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한우마을과 운암대교를 거쳐 강진면으로 내려오고
한우마을을 들르지 않고 산내면 방향으로 내려오면
옥정호를 따라 바로 내려오기 때문에 더 빨리 덕치에 도착할 수 있다.
우리가 이지역을 지나갈 때에는 점심식사시간이 아니어서 한우마을을 들르지 않았지만
혹시 점심시간에 이 지역을 지나치실 때에는 산외면 한우마을에 들르셔서
식사하고 가시는 것도 좋겠다.
우리는 산내면 옥정호를 따라 바로 덕치로 향한다.
회문산자연휴양림 입구 조금 못미쳐 오른쪽에 덕치초등학교가 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어떻게 오셨어요?"
"김용택 선생님 좀 뵈러 왔는데요"
"아이고, 어찌까.... 김선생님은 지난 달말에 명예퇴직하셨는디요."
"그래요? 그럼 안계신가요?"
"네. 8월 말까지만 근무하셨어요."
관리가 잘된 잔디밭을 따라 왕벗나무그늘 사이로
선생님의 책에서 읽었던 5학년 은미가 튀어나올 것만 같다.
은미는 할아버지와 볼일보러 나갔다가 도장을 가지고 오지 않아
도장가지러 집에 오다 토요일날 마침 학교에 잠깐 들른 선생님과 마주쳤다.
은미가 할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집은 학교 바로 뒤에 있는 것이다.
은미는 그렇게 20분을 지루해하지도 않고 걸어온 것이다.
선생님은 은미를 차에 싣고 할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달려갔었다.
그 은미가 지금은 수업중이라 교실안에 있을까.....
선생님은 퇴임하시고
바램이 있다면 이 학교 교실 한칸에서 할아버지가 되도록
학생들과 시를 쓰며 함께 생활하고 싶으시단다.
부디 그 소원이 이루어지시기를.....
회문산자연휴양림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사거리가 있다.
여기서 좌회전하여 장산리로 들어간다.
들어가는 입구부근이 위 사진이다.
조금만 진입하면 이내 섬진강과 만나게 된다.
구례와 하동에서 보듯 백사장이 넓고 유장하게 흐르는 섬진강이 아니라
보성강처럼 폭이 좁고 물흐르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은 아기자기한 강이다.
오늘의 답사코스.
진메마을과 천담마을, 구담마을을 거처 장구목에 이르는 여정이다.
가다가 마을 하나를 만난다.
안내판이 없어 물어볼 요량으로 마을로 들어가니 장산회관이 있고
그 회관 앞에 정자가 있어 마을 주민들이 옹기종기 모여 담소를 나누고 계신다.
"안녕하세요. 김용택 선생님 사시는 곳이 어디쯤일까요?"
이방인을 맞는 굳은 얼굴들에 어느새 미소가 번져간다.
또 왔구나 하는 말이 얼굴에 써져있다.
"여그가 용택이 엄마여......"
남자분들은 정자의 왼쪽에 모여계시고
여자분들은 오른쪽에서 뭘 깍아먹고 계신다.
옛날에 우리집 식구들 밖에 나가면
아버지는 저만큼 앞에 가시고
나는 엄마손을 잡고 가다가
아버지하고 같이 가고싶어
앞서가는 아버지와 뒤에 오시는 엄마
중간쯤에 어쩡정하게 있던 때가 생각난다. ㅎㅎㅎ
김용택님의 어머니.
올해 여든 둘이시란다.
곧 일어서시더니 앞장서신다.
이제 물들기 시작한 담쟁이넝쿨이 예쁜 집이 어머니댁이시다.
어머니는 빛좋은 날을 잡아 창호지를 바르신다.
문짝을 떼어 마당에 내려놓고 얼룩지고 찢긴 문종이를 깨끗이 떼어낸다.
그리고 문종이를 바른다.
하얗게 발라진 문종이는 가을햇볕과 가을바람에 금방 마른다.
문이 마르면 어머니는 얼른 시멘트담에 단풍 곱게 든 담쟁이 이파리를 따다가
문고리옆에 무늬를 놓는다.
문고리옆은 사람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다른 곳 보다 빨리 찢어지는 것을
예방하려는 어머니의 실용적인 마음과
기왕이면 그 빈 공간에 예쁜 무늬를 수놓으려는 예술적인 센스가 딱 맞아 떨어진다.
어머니는 얼른 그렇게 담쟁이 이파리를 붙이고 나에게 말씀하신다.
"야, 이쁘쟈?"
"네, 어머니. 예쁘고 말고요."
"여기가 용택이 방이여....."
3평도 안되보이는 작은 방에는
선풍기 한대와 에프킬라 하나 그리고 이불 외에는 모두 책이다.
참으로 소박하다.
이곳에서 선생님은 새벽 4시에 일어나 6시까지
집중적으로 글을 쓰셨단다.
그랬다기에 나도 흉내내느라 이 글을 새벽 세시반에 일어나서 쓰고 있다.
대체나 술술 잘써진다.
어떤 책들인가... 궁금해서 들어가봤다.
창작과 비평, 전집류... 등등
담쟁이넝쿨이 곱게 물들어가는 마당
"내가 째깐해서 우리 아들도 째깐혀
즈그 아부지는 크고 훤칠했는디......"
4남 2녀를 두시고 그중에 선생님이 장남이시란다.
"선생님 연세가 올해 57이시지요?"
"아니여, 호적이 세살 늦게 되갖꼬 올해로 예순이그만"
"내가 스물둘에 낳았어"
"그럼 어머니 연세가 여든 둘이시겠네요"
"응, 그러제"
2주전 명예퇴직하셔서 외국나가셨다가
어제 전주에 도착했다는 전화가 왔단다.
지금까지는 진메마을에서 어머니와 지냈으나
이제는 퇴임하셔서 선생님보다 14년 연하이신 사모님, 자녀와 전주에서 지낸단다.
지금의 사모님은 선생님의 세째동생의 대학동창이시란다.
우연히 선생님 댁에 놀러오셔서 선생님과 눈이 맞아 결혼까지 하셨단다.
그 때 선생님은 38
사모님은 대학 졸업반이었으니 24
며느리와 아들 얘기를 재미있게 해주신다.
몇년 전에 문학강연회에서 김용택 선생님을 만난 아내가
어머니와 인터뷰를 매끄럽게 이끌어나간다.
시골 어른들이 많은 지식은 없어도
살아 있는 언어를 사용한다는 이야기....
어머니나 마을 어르신들이 하신 말씀을
선생님께서 주의깊게 듣고 시어로 쓰셔서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용택이가 다 번다"는 이야기를 하자
팔순 노모의 얼굴이 웃음꽃이 피어난다.
자녀들 이야기며
선생님의 시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니 시간가는 줄 모르겠다.
관란헌이란 ‘물결을 바라보는 집’이라는 뜻으로
섬진강 물줄기가 바라보이는 시인의 집 풍광에 썩 어울리는 이름이다.
원래 이 말은 퇴계(退溪)선생의 시제목에서 따온 것인데,
이 시는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세상 이치를 깨닫고
이에 부합하는 도덕적 삶을 영위하겠노라 뜻을 세우신 공자님을 본받아
더욱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마음다짐을 그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흐르는 강물마저 무심히 바라볼 일만은 아니라는 뜻이리라.
김용택 선생님.
선생님을 뵐 수 없어서 내가 원래 가지고 있는 자료사진으로 소개해드린다.
섬진강.
참 아름다운 강이다.
산과 산들이 만들어낸 계곡을 구비구비 돌다가
또 이렇게 마을들을 만나면 마을들을 곳곳에 거느리고 ....
순창농림고를 졸업하고 집에서 이 징검다리 숫자만 세면서
무료하게 지내던 선생님에게 친구가 찾아왔다.
교사강습소 시험보자는 것이다.
그렇게 교사강습소를 4개월 다녔던 때가 스물 하나
그리고 다음해에 천담분교로 발령나면서 교사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징검다리 한가운데에서 바라다 보이는 선생님 생가.
한가운데 하얗게 보이는 기와집이다.
오른쪽에 느티나무도 보인다.
수령이 130년된 이 느티나무는 서춘 할아버지가 심으시고 가꾸셨단다.
평생 홀로사신 서할아버지는
한겨울에도 얼음을 깨고 강에서 목욕했다고 하는데
나무아미타불이라는 말을 시도 때도 없이 외우는 바람에
사랑방에서 크게 대접을 못받으셨단다.
서춘 할어버지는 가시고 나무는 엄청나게 자라서
이 마을 사람들이 이 느티나무 아래로 다 들어도
느티나무 그늘은 겁나게 많이 남을 정도이다.
점심먹고 쉬는 시간.
이 느티나무 그늘은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아침나절 들일을 한 사람들이 점심먹고
하나 둘 이 느티나무 그늘로 모여들기 때문이다.
느티나무 밑에서 바라본 생가.
이 느티나무 아래서 아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놀이는
고누를 두거나 들독들기, 풀잎찾기였다.
고누는 장기와 바둑과 비슷하나 더 쉬운 놀이였고
들독들기는 말 그대로 두손으로 바위를 안고 드는 놀이였다.
큰들독과 작은 들독이 있는데
큰들독은 어른들이 들었고 작은 들독은 아이들이 들었다.
아이들은 시간있을 때 마다 들독드는 연습을 했다.
그것은 힘자랑이었으므로
자기 또래들에게 자기를 과시하는 아주 중요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것으로 은연중에 서열이 정해지는 것이다.
큰들독은 어느 돌수집가에 의해 사라져 버리고
작은들독은 지금은 선생님댁 마당에 있다.
풀잎찾기 놀이방법은 간단하다.
풀잎을 느티나무 껍질 사이에 몰래 숨기고 누가 많이 먼저 찾는가... 하는 놀이였다.
아!
그렇게 저렇게 놀다보면 어느덧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느티나무를 찾는 사람들의 숫자도 하나 둘 줄어들었던 것이다.
그러면 강가에는 구절초꽃이 피고
느티나무 어느 잎새는 벌써 단풍물이 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여름이,
무덥고 지루한 여름이,
그러나 온갖 이야깃거리를 남긴
느티나무 밑에서의 여름이 그렇게 갔다.
느티나무 아래 있다보니
언제 왔는지 어떤 아버지와 아들이 그물을 가지고
강가에 뛰어들어 고기를 잡고 있다.
"아빠.... 여기 여기...."
하는 소리를 뒤로 하고 우리는 섬진강을 따라 천담마을로 향했다.
진메마을에서 천담마을까지 4km
선생님은 이 길을 매일 걸어서 출퇴근했다.
이 길,
이 길에는 산과 나무와 풀과 새들과 강물과 강가나 강물에 앉아 있는 바위들만 있다.
산을 세로로 자르고 막는 전봇대,
우리들의 시야를 이리저리 얼기설기 어지럽히는 전깃줄도 여긴 없다.
이 길은 차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지금 초가을은 온통 싸리꽃이다.
탄성과 탄복밖에 나오지 않는 이 꽃길에서 나도 너도 꽃이다.
그곳에 가면 모든 것들을 잊는다.
삶의 슬픔과 고통과 괴로움이 사라진다.
그곳에 가서 꽃을 보라!
산을 보라!
나는 새를 보라!
아!
달이라도 떠보라지.
이 길은 천상으로 가는 길이 된다.
달빛에 빛나는 저녁 이슬들을 그대들은 보았는지?
달빛으로 흐르는 강물을 따라 걸어라.
흐르는 물을 따라 꽃길을 걸어라.
그대들이 휘어감고 있는 두 손아귀의 모든 것들을 놓고,
홀로 걸어라.
그 강 길을
흐르는 강물을 곁에다 두고
강물과 함께 걷는 삶의 행복함을 맛볼 것이다.
천담 가는 길
세월이 가면
길가에 피어나는 꽃 따라
나도 피어나고
바람이 불면
나도 흔들릴라요
세월이 가면
길가에 지는 꽃 따라
나도 질라요
강물은 흐르고
물처럼 가버린
그 흔한 세월
내 지나 온 자리
뒤돌아보면
고운 바람결에
꽃피고 지는
아름다운 강길에서
많이도 살았다 많이도 살았어
바람에 흔들리며
강물이 모르게 가만히
강물에 떨어져
나는 갈라요.
진메마을에서부터 천담마을과 구담마을, 회룡마을을 거쳐
장구목으로 흘러드는 물줄기는
김용택 선생님의 표현을 빌리면
섬진강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물줄기이다.
물론 구례 하동쪽의 유장한 섬진강.
그중에서도 해질 무렵 보랏빛으로 물든 섬진강은 환상적이다.
이에 비해 상류의 진메마을에서 장구목까지의 섬진강은
하류에 비해 향토적인 느낌과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자연스러움이 물씬 풍긴다.
선생님이 초임발령받아
날마다 진메마을에서 걸어다녔던 천담분교.
지금은 폐교되고 청소년수련원으로 바꾸어졌다.
천담분교.
스물한 살이 되던 해 나는 한 산골의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있었다.
태어나 한 번도 상상해보지 않았던 일이 내게 벌어진 것이다.
이 느닷없는 삶의 전환은 나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싱그러운 스물한 살의 팽팽한 젊음은 그러나 산골 아이들 앞에서 너무나 심심했다.
까만 머리통의 아이들과 작은 들과 산은 내게 무료했고, 너무나 적막했다.
그렇게 몇 개월을 심심하게 보내고 있는데, 그 먼 산골까지 책을 월부로 파는 사람이 나타났다.
내가 처음으로 내 돈을 주고 산 책은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이었다.
겨울방학이 시작되고 나는 낮에는 동무들과 산에 나무 가고,
밤에는 도스토예프스키에 매달려 밤을 하얗게 지새우곤 했다.
그 해는 눈도 많이 왔다.
세상 가득 눈이 온 날 아침
나는 아직 아무도 가지 않은 징검다리 위의 눈을 밟으며 강을 건너갔다 왔다.
겨울방학이 그렇게 끝나자 나는 전집 여섯 권을 거의 다 읽고 있었다.
학교로 가기 위해 차를 타러 마을 밖으로 나가는 길은 그러나 내게 전혀 새로운 길이었다.
산과 들과 나무와 길과 사람들이 사는 마을과 내 걸음걸이가 방학 전의 것들이 아니었다.
뒷산에 있는 느티나무가 그렇게 큰 줄 나는 그때야 알았다.
앞산 산등성이를 비껴오는 아침 햇살은 눈부셨고,
산굽이를 돌아가는 아침 강물 소리는 새로웠다.
세상은 내게 그렇게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신비롭던 그때를 떠올리면 나는 지금도 눈부시다.
그리고 나는 그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다.
‘박목월 전집’,이어령전집,니체 전집 그리고 한국문학 50권짜리 전집도 그때 읽었다.
아무도 그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은 전혀 낯선,
그러나 그 어디에선가 보았던 것 같은 그 샛길에서 나는 비로소 나를 만났다.
나는 날마다 나를 응시하고, 나를 신기해했다.
늘 버리고, 무엇인가 설레는 그 무엇을 새로 얻었다.
달빛이 수시로 나를 불러내면 나는 징검다리 돌들을 세며 강물을 건너갔다.
달빛에 빛나는 검은 바위들과 밤이슬에 반짝이는 풀잎들. 달은 나를 두고 그렇게 갔다.
그 긴장된 푸른 어둠 속 풀꽃들의 서늘한 아름다움을 견딜 수 있고,
빈방을 찾아온 달빛을 견딜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글을 쓰는 일이었다.
힘이 들었다.
절망은 예고도 없이 수시로 나를 찾아왔고,
나는 어두운 저 절망의 나락 속에서 한 줄기 불빛을 살려내곤 했는데, 그것이 시였다.
밤이 되면 일어서는 막막한 산. 산을 감고 돌아가는, 달빛 받은 강물.
그렇게 내가 산과 강에 내 몸을 모두 기대고 살기를 13년,
어느날 시가 내게로 왔다.
어두운 산에서였는지 아니면 흐르는 강물 그 어느 굽이에서였는지,
내게로 시가 왔던 것이다.
그때 내 나이 서른 다섯 살이었다.
선생님은 책을 읽으므로 새로운 세계를 접하기 시작했다.
누구에게 문학을 배운 것도 아니었다.
책을 읽으므로
시를 많이도 읽으므로
그의 나이 서른 다섯에 자기도 시를 쓸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처음으로 쓴 시가 섬진강이다.
섬진강
가문 섬진강 따라가며 보라 퍼가도 퍼가도 마르지 않고
개울물들이 끊이지 않고 흐른다 해 저물면 저문 대로 강을 보라
쌀밥 같은 토끼풀꽃 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식물도감에도 없는 풀들에 어둠을 밝히며
그을린 이마 훤하게 꽃등도 곱게 달아준다
이하 생략.
선생님은 이 시를 창작과 비평사에 보낸다.
곧 창비사에서 연락이 온다.
시인으로 등단이 되었으니 사진과 약력을 보내라고....
그는 그렇게 시인이 되었다.
책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크게 변화시키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이다.
김용택 선생님의 설레임, 절망, 희망의 빛이 뒤섞여있는
창작의 고뇌속에 걸었던 오솔길, 징검다리, 느티나무......
생가와 마을을 돌아보며 많은 감동이 느껴진다.
사람이 바뀌기가 참 힘들지만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서 답답했던 문학의 길을
15년의 긴 기간 동안 책을 읽고 시를 써보고
몸부림쳤던 김용택 선생님의 청춘이 절절히 느껴졌다.
"인생의 분기점은 독서를 통해서 올 수 있구나,
나도 새롭게 되는 계기를 이 순간 체험할 수 있겠구나,
새로운 삶을 만들 수 있겠구나, 변신할 수 있겠구나" 작은 설레임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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