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세상에서 자신의 책을 소개하는 것 만큼 멋쩍고 쑥스러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글쓴이들은 표지 앞 뒤로 추천사도 넣고 서평도 싣는 것이겠지요.
작가 자신이 그의 책에 이러쿵 저러쿵 낯 부끄러운 찬사를 늘어놓는 것보다 훨씬 모양새도 좋아보이고
객관적일 테니까요. 저도 유명인의 이름을 빌어 책을 좀 돋보이게 하고 싶었지만 결국은
그 흔한 추천사 하나없이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역시나 낯 부끄럽고 속보이는 짓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글쓴이가 온전히 감당하는 편이 차라리 당당하고 솔직한 태도란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저는 좀 뻔뻔하지만 처음으로 제 이름을 걸고 나온 책에 대해 이런저런 말들을 늘어 놓고자 합니다.
(책의 표지입니다. 풀럼북스라는 작은 출판사에서 만들었지요. 개인적으로 출판사의 이름이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지구에서 단 하나뿐인 하루들>이란 다소 간지럽고 추상적인 제목을 달아 보았습니다. 책의 본문에서 인용된 문구지요.
전 개인적으로 <길The Route> 또는 <시간의 박물지> 이런 제목들을 선호합니다만 제목의 최종 결정은 전적으로 출판사에 맡겼습니다.
책도 어차피 시장에 나오는 상품의 하나이고 소비자인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은 저보다는 아무래도 출판사 쪽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솔직히 지금도 어떤 제목이 더 좋다라는 판단을 내리기 힘듭니다.
책은 인천공항에서 시작되어 인도의 맥그로드 간즈(다람살라)라는 곳에서 끝을 맺습니다. 여행기에서는 흔한 시간에 흐름에 따라
순차적으로 써내려가는 방법을 쓴 것이지요. 작년, 그러니까 2008년 3월 한국을 출발해 중국과 인도차이나 반도를 거쳐 인도, 라다크
지방을 8개월 동안 여행하며 남긴 기록들입니다. 3년 전 겁없이 직장에 사직서를 던진 후 무작정 떠났던 여행의 첫번째 결실인 셈 입니다.
솔직히 여행을 떠나기 전 비교적 고가의 DSRL 사진기를 사며 다녀온 뒤 여행기를 써보겠다는 얄팍한 속셈도 있었지요.
그렇게 떠난 길에서 한국 여행자 한 분을 만났습니다. 중국의 어느 시장에서 열심히 사진기 셔터를 눌러대던 저에게 대뜸 그 분이 말씀하시더군요.
요새 여행 좀 다녀오면 속된 말로 '개'나 '소'나 다 책을 쓴다. 그런데 그 책의 대부분은 모두 속 보이는 책들이다.
결국 여행 경비를 책에서 좀 뽑자는 것 아니냐? 책의 내용들도 거짓으로 가득차 있지만 그런 얄팍한 속셈으로 떠난 여행이 오죽하겠는냐는
말씀이셨죠. 저는 순간 얼굴이 화끈대고 뭔가 항변하고 싶었지만 한 마디도 대꾸하지 못했습니다. 그 분이 말씀하신 '얄팍한 셈'을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졸지에 '개' 또는 '소'와 같은 얕은 셈으로 여행하는 비루한 여행자가 되어버렸습니다. 그 당시에는 울컥했지만
이후 길을 가며 두고두고 그 분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 두었습니다. 책은 마음에 버리고 여행 그 자체에 충실하기로 했습니다.
제게는 쓰지만 좋은 약이 되었던 것이지요. 이 자리를 빌어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지나온 길을 대충 연결한 것 입니다. 사실 여행 경로에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막연히 서쪽으로 길을 떠났었지요...)
책 머릿말에도 잠깐 인용을 했지만 신영복 선생은 길‘道’자를 착辵과 수首가 합쳐진 회의문자會意文字로 풀이했습니다.
'착辵은 머리카락을 날리며 사람이 걸어가는 모양을 말하고 수首는 사람의 머리, 생각을 의미한다. 즉 道란 길에서 걸어가며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라는 뜻이라는 겁니다. (신영복 선생 著 <강의>중에서...)
'길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보다는 ‘길’이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서 갈피를 찾고자 했습니다.
길에는 사람이 있고 생각이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은 항상 물처럼 유연하고 항상 흘러야 썩지 않습니다.
한 곳에 고인 생각들 집착과 욕망 같은 것들에서 나쁜 냄새가 나는 이치입니다. 길 위의 생각은 무엇을 주는가?
저는 행복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홀로 있기 때문에 자유로울 수 있는 행복, 외롭기 때문에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행복...
<지구에서 단 하나 뿐인 하루들>은 모두 마흔 한개의 크고 작은 장면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여행 산문집이 그러하듯 실질적인
정보보다는 사진과 짧은 생각들이 주를 이룹니다. 쓸쓸하게 여행을 떠나는 사람의 작은 위로가 되길 바라며 책을 마무리 했습니다.
지금도 세상 어딘가에서 길을 떠나는 모든 분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 2009년 5월의 첫째날 박정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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