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이 말해주는 것
나가르 마을 전경
탄소C14가 자연계에서 반으로 소멸하는 시간은 5,730년이다
우리는 소멸을 통해 시간을 헤아리기도 한다
- 방사선 탄소연대측정법
햇살이 잘게 부서지던 그 곳
봄에는 살구꽃 향기가 여름에는 풋사과의 냄새를 따라 걸어갔어요.
아주 먼 옛날 불었던 것 같은 수줍은 봄바람도 날리고
소꼴 먹이고 돌아가는 할머니의 앞치마에도 봄이 한창입니다.
이방인에 손에도 한웅큼 살구를 쥐어줍니다.
살구를 베어 뭅니다.
입안 가득한 신맛은 아득한 옛날 같습니다.
빨갛고 시큼한 홍옥사과 같던 그 곳
그리로 걸어갑니다.
동무들과 걸었던 길이 여기 있어요. 할머니...
종이 울리고 낡은 교실로 들어갔지요.
못이 삐져나온 책상, 배가 터진 흑판 지우개
창에 쏟아지던 황금빛 햇살...그리운 먼지들
그 날 오후의 갈채는 다 어디로 가버린 건가요?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예전에 분명히 있었던
증발한 기억만큼 시간은 가버린 걸까요?
참 많은 것이 사라졌어요.
오래된 사진 앨범
친구들의 편지와 주소, 일기장, 사발시계, 우표 수집책 들...
시간은 벌써 저만치 걸어가고 있어요.
잃어버린 꿈의 부피가 나이로 돌아왔어요.
다시 잃어버릴 기억이 생긴다는 게 두려워요.
그 기억들이 반으로 줄고
다시 반으로 줄고...
또 반...
끝내는 저 방에 흔들리는 19세기의 불빛처럼
아득할 거예요.
사라지는 것들에 귀 기울여야 할 때죠.
<방사성 탄소연대측정법>
나무, 숯, 뼈, 조개, 화석 같은 비교적 최근의 생물 유해의 연대를 측정할 때 쓰는 방법.
마날리에서 버스로 한 시간, 비아스 강을 따라 한 시간 쯤 남쪽으로 내려가면 산허리에 오밀조밀 집들이 늘어선 나가르 마을의 모습이 보인다. 살구가 한창이던 6월 말 처음 들렀다 사과가 익던 8월 다시 찾았다. 마을 아낙네 몇이 길에 좌판을 깔고 사과를 팔았다. 사과 서너 알을 골랐다. 색깔도 곱고 껍질에 윤기가 흐르긴 했지만 재래종이어서 그런지 씨알도 잘고 당도와 씹히는 맛은 다소 떨어지는 편이다.
나가르 마을이 보이는 언덕까지 올라왔다. 거기서 잠시 숨을 고른 후 언덕아래 집들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바람이 마을 아래에서 언덕으로 불었다. 잘 익은 과일 향내를 품은 기분 좋은 바람이었다.
마을이 보이는 언덕은 러시아 화가인 로에리히 갤러리를 지척에 두고 있었다. 갤러리 입구엔 관광객을 대상으로 커피와 잡다한 탄산음료를 파는 커피하우스가 보인다. 입장권을 끊고 갤러리 안으로 들어가면 작은 정원이 나오고 로에리히가 생전 살았던 이층 목조건물이 보였다. 정원에서 왼쪽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 끝에는 작은 창고처럼 보이는 별채가 자리했다. 목조건물 1층은 로에리히의 작품이 전시된 갤러리였고 2층은 그가 가족들과 살았던 침실과 거실, 집무실이 생전 모습대로 전시되어 있었다. 아래쪽 별채의 작은 방안에 로에리히의 친필 서신과 사진들 그가 저술한 책들, 각종 문방구들이 방안을 장식했다.
1층 전시실에 전시된 작품이 30여점 남짓했기 때문에 아무리 천천히 보아도 30분이면 충분했다. 주로 인도와 히말라야 등지를 여행하며 로에리히가 그린 그림들이었다. 인상파 화가의 영향을 많이 받은 류의 작품이다. 단순한 선과 형체, 과감한 원색, 힘 있는 붓터치, 작가의 주관적 시선에 비친 사물의 다양한 이면들...로에리히는 유럽의 변방인 러시아를 떠나 먼 인도에 정착했지만 19세기말 당대를 풍미했던 인상주의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로에리히의 그림보다 그가 살았던 2층 생활공간에 더 인상적이다. 비록 문이 잠겨 창문을 통해서 안을 들여다 볼 수밖에 없었지만 차라리 그 점이 더욱 매력적이었다. 뿌연 창문을 통해 바라본 19세기의 집안 풍경...창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지만 창문 안쪽에는 19세기에 밀봉된 공기와 시간들이 고여 있었다. 어두침침한 전등 아래로 수염이 덥수룩이 기른 로에리히가 고뇌에 찬 모습으로 거실로 뚜벅뚜벅 걸어 나올 것만 같았다. 창가에 놓인 타자기는 바로 전 그가 러시아의 친구에게 보내던 편지의 온기가 그대로 남아있고 응접실 찻잔에도 홍차의 향기가 은은하게 느껴졌다. 테라스에 놓인 의자에 앉아 넋을 잃고 로에리히의 방을 바라보았다. 오렌지 빛 조명에 비친 19세기 식 풍경 속에서 차를 마시는 나를 상상한다. 어둠 속 거실 풍경을 몇 컷 담았다.
“잘 봐...저 창 안에 어두운 그림자 보이지? 몇 장 찍었는데 계속 어른거렸어. 그림자가 계속 널 보고 있었다고...여기 잘 봐.”
물론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다. 그렇게 믿고 싶었을 뿐이다. 서울에 돌아가 19세기 로에리히가 보낸 편지가 받고 싶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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