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천년의 고독 ... 페트라(1)

하피즈 2009. 3. 24. 15:31

 

페트라 유적을 대표하는 사진

 

 

영국 요크의 뱃사람이었던 그는 방랑벽이 무척 심했다.

 

해적선장에게 잡혀 2년 간 노예생활도 했고  브라질에서 농장도 경영한다.

 

그러나 타고난 역마살을 못이겨 밀무역에 나서게 되었고

 

아프리카 기아나를 가던 중 서인도 제도의

(플로리다에서 남쪽 멕시코 만과 카리브를 해를 끼고 있는 일군의 섬들-

쿠바, 도미니카, 프에르토리코, 자메이카 등의 나라들이 이 제도에 속한다)

 

작은 무인도에 표류하게 된다.

 

그는 1681년 12월 19일,

 

이 섬에서 홀로 버려진지 28년 2개월 19일이란 시간을 보낸 후

 

살레의 무어인으로부터 커다란 배를 타고 도망쳤던

 

같은 달, 같은 날 '두번째 감금에서 해방' 되었다고 말했다. 

 

그의 이름은 요크의 로빈슨 크루소...

 

물론 실존 인물은 아니다.

 

영국의 작가 다니엘 디포 Daniel Defoe가 셀커크라는 사람의 무인도 체험담을

 

토대로 쓴 소설 <요크의 선원 로빈슨 크루소의 생애와 이상하고 놀라운 모험

 

The Life and Strange Surprising Adventures of Robinson Crusoe of York>의

 

주인공 로빈슨 크루소의 약사略史다.

 

 

 

1719년 초판본 로빈슨 크루소의 표지와 삽화

 

 

인간에게 고립은 형벌과 다름없다.

 

그래서 다니엘 디포도 크루소의 귀환을 '감금에서의 해방'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과연 고립이란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고난일까?

 

나는 가끔 깊은 우물에 숨어있는 고립된 시간들을 마주칠 때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먹먹함을 느낀다.

 

경이와 신비 그리고 비애와 혼돈이 겹쳐진...

 

요르단 붉은 사막을 횡단해 '모세의 샘'이라 불리는

 

와디무사를 거쳐 페트라 계곡 앞에 서자

 

천년이 넘는 시간은 모래처럼 스러지고 다시 나타났다.

 

 

 알 카즈네 신전 - 나바테아 왕 아레타스 3세의 무덤이라고 알려짐

 

 

1719년 로빈슨 크루소의 초반이 출판된 후 100년 남짓 흐른 1812년...

 

1,200년간 동안의 깊은 고독 속에 잠들어 있던 유적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 이름은 페트라Petra - 그리스어로 바위라는 뜻 -

 

아랍계 고대 유목민이었던 나바테아Nabatean이 건설했던

 

고대 도시가 천년이 넘는 침묵을 깬 것이다.

 

1812년 유럽의 젊은 탐험가인 요한 루트비히 부르크하르트는

 

시리아의 다마스커스에서 카이로로 여행을 가고 있었다.

 

그는 여행 중 요르단 와디무사 인근에 엄청난 유적들이 숨겨져 있다는

 

소문을 듣고 아랍인으로 변장해 황무지를 헤매다 결국

 

페트라의 존제를 발견한다.

 

아마 유럽인들에게 알려진 것은 동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 처음인지는 몰라도

 

이후 요르단 사막을 터전으로 살아갔던 베두윈들에게 잊혀진 도시 페트라는 

 

새로운 발견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떻게 되었든 

 

부르크하르트의 여행기가 유럽에 출간되면서

 

유럽 고고학계의 이목은 이곳으로 집중된다.

 

1896년 예루살렘 성서 고고학 연구소의 도미니칸 수도사가 발굴을 시작하며 

 

페트라는 조금씩 잊혀진

 

시간의 문을 연다.    

 

 

 페트라로 들어가는 좁은 협곡Siq 사진 하단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협곡의 규모를 알 수 있다.

 

 

 

*** 2부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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