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인에게는 로맨틱한 동쪽 대륙의 끝이겠지만
우리에겐 기껏해야 대륙으로 가는 길목이거나 집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항구 쯤...
딱히 그런 건 아니겠지만 집에서 떨어진 거리 만큼 조금 더 긴장되고 좀 더 빛나 보인다고 할까?
칭타오 여행은 미적지근한 권태에서 시작되었다.
아,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건 중국에서 제일 맛있는 맥주가 만들어지는 도시라는 사실...
독일에서 건너 온 맥주마저 없었더라면 칭타오는 조금 시시한 도시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길은 마치 한국의 지방 소도시를 지나는 것처럼 보인다.
붉은 불을 밝힌 요란한 술집과 사우나들이 줄줄이 서서 한국인들을 맞이했다.
문화의 은밀한 내통은 언제나 하수구에서 시작된다.
인간이 배설을 통해 연대를 확인하고 결과물이 남긴 냄새의 잔해로 서로의 영역을 표시한다.
집들이 허물어진 둘레에 높은 담이 들어섰다.
매일 저녁 근심과 불안이 그 담장을 기대고 서성였다.
중국의 집들이 허물어진 자리를 보면 가끔 낙관적인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전자 렌지에 5분만 돌리면 훌륭한 정찬이 나올 것 같은 기분
잠시 불행을 외면했다 눈을 뜨면 멀쩡한 행복이 기다릴 것 같은 그런 낙관론 말이다.
어느 누구도 의심하지 않고 설혹 과정이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과감히 무시하고 앞으로 걸어가는 그런 무모함과 대륙적 기질이라 포장하는 통 큰 배포...
그렇게 마구 달리다 함께 넘어지는 건 아닐까 두렵다.
천문대를 개조한 산꼭대기 유스호스텔....
낮에 시장을 보고 주방에서 저녁을 만들어 나누어 먹거나
비닐 봉지에 담은 칭타오 생맥주를 홀짝였다
그리고 밤이 깊으면 천체 망원경을 들여다 보았다.
밤마다 해안과 항구의 불빛이 아주 열심히 반짝였다.
아무도 지켜보는 이도 없건만....
한 오년 또는 십년 뒤...
칭타오에 농구팀이 생긴다면 그 팀을 응원하고 싶다.
그 농구팀의 후원 기업이 칭타오 맥주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에서 성장한 아이들이 칭타오 농구팀을 만들 것이다.
그들의 유년을 위하여...
깊히 잠든 시간을 위하여...
떠나기 전 날 밤 칭타오 맥주에 흠뻑 취해
실연당한 슬픈 중국 여인과 느린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푸른 밤처럼 쓸쓸한 칭타오 블루스...
'중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타클라마칸 일기-들어가는 글 (0) | 2010.08.13 |
---|---|
명치 끝에 느껴지는 아릿함...이런 맛에 여행은 떠나는 것... (0) | 2009.10.29 |
천년의 고독, 페트라(2) (0) | 2009.03.27 |
천년의 고독 ... 페트라(1) (0) | 2009.03.24 |
리지앙에서 온 편지 (0) | 2009.0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