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배의 땅, 남해 ]
섬은 섬일 때 가장 아름답다..
단절과 고립은 섬이 모멸을 이겨내는 방식입니다.
고립이라는 존재 방식을 벗겨낼 때
섬은 욕망에 발가 벗기우고 자유의 영토에 추방 당합니다.
그것은 참담과 능멸입니다.
기묘사화로 남해로 유배된 자암 김구 선생은
섬의 고독한 존재 방식을 一點仙島라는
한 마디 말로 남겼습니다.
섬은 점으로 선이나 면에 속하지 않습니다.
점이 선으로 연결되면 더 이상 점일 수 없고
선이나 면의 일부가 됩니다.
선생은 <화전별곡花田別曲>(화전은 남해의 옛 이름입니다)에서
녹파주와 소국주, 맥주와 촉주 등 갖가지 술에
황금 빛나는 닭과 흰 문어 안주에
유자잔을 접시대 받쳐들고 음풍농월하는
삶을 노래했지만...
유배의 삶이 과연 그러 했을까요?
남해를 하늘에서 바라보면
반으로 쪼갠 호두 속살 같기도 하고
허파를 닮은 것 같기도 합니다.
뭍에서 남해로 가는 길은 세갈래 입니다.
경남 하동과 섬의 서북쪽 끝단인 설천면을 잇는 남해대교가
그 첫번째 길이고,
사천시 삼천포와 창선면을 이어주는 창선-삼천포 대교가
둘째 길 입니다.
다리로 연결된 이 두 개의 길로 남해는
더 이상 섬이라 말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여수 전경
세번재 길은 바닷길입니다.
전라남도 여수의 동쪽에서 남해 서면까지
뱃길로 연결됩니다.
기왕 남해를 온다면
뱃길로 오는 편이
섬을 섬답게 느끼실 수 있습니다.
여수 엑스포에서 약 4km남짓 떨어진
여수 연안여객선 터미널입니다.
여수항과는 별개의 시설이니 혼돈하기 쉽지요.
이 여객 터미널에서 하루 세번 온바다 호가 남해를 오갑니다.
첫 배는 8시 30분에 출발합니다.
요금은 어른은 10,000원 소형차도 10,000원에 싣을 수 있습니다.
터미널 길 건너편에 아침을 때울 만한 식당도 있는데...
진미식당이 걔중 난 편입니다.
자 슬슬 승선해 볼까요?
온바다호는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습니다.
정원은 50명 가량...
1층에 두 칸으로 나뉜 선실이 있고
2층 브릿지에는 조타실과 승객용 의자 몇 개가 있습니다.
온바다호 브릿지
여수 여객터미널을 출발하면
왼쪽 해안을 따라 여수 엑스포 조성 단지가 보입니다.
엑스포의 랜드마크 건물은 거의 완성된 것으로 보이네요.
여수 엑스포는 내년 2012년 6월에 열립니다.
남해군은 엑스포 관람은 여수에서 그리고 여행은 남해에서 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관람객 유치에 힘을 모으고 있습니다.
여수-남해 간 페리 운항도 여수 엑스포 관람객 유치를 위한
방안이라고 할 수 있지요...
여수 엑스포 조성지구
온바다호를 타고 50분 쯤 동쪽으로 달리면
남해군 서면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선착장 공사가 마무리 되지는 않았지만
여객선 터미널은 일단 깔끔한 모습으로 여행자를 맞이합니다.
남해 서면 서상 여객터미널
등대 모형의 화장실도 제법 ~ 남해대교 조형물도 보이지요?
서면 여객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남해읍으로 가다보면
공용터미널 못미쳐 '남해 유배문학관'이 보입니다.
남해는 고려 때부터 유배지 중 한 곳 이었습니다.
'일점선도'라는 말을 남긴 자암 김구 선생도
기묘사화로 남해에서 유배생활을 했으며
조선 후기의 문신 서포 김만중은 이 섬에서 유배 와
우리 문학사에 길이 남을
<사씨남정기>와 <구운몽>을 지었습니다.
남해 유배문학관은 바로 서포 김만중과 같은
유배인들의 삶과 학문, 그들이 남긴 자취를 만날 수 있는 곳 입니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유베 문학관 바로 앞에는
바깥과 안의 경계를 가르는 물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 물은 남해와 육지를 가로막은 바다를
그리고 정상적 삶에서 추방당한 유배의 단절감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문학관 내부로 들어가면 또 다른 상징물을 만날 수 있습니다.
수직을 경계로 좌우로 갈라 선 흑백의 면이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어 냅니다.
유배라는 정신적 물리적 극단을 흑백의 대비로 표현합니다.
유배는 치열한 삶과 죽음의 경계가 부딪히는 접점입니다.
아니 그 사이에 오로지 단 하나의 선택 뿐인 썩은 동아줄인지도 모릅니다.
죽음의 직전인 유배는 삶도 죽음도 아닌 위태로운 틈 입니다.
조선과 같은 가족 혈연 중심적 사회에서
집단으로부틔 추방은 곧 인격적 죽음을 의미합니다.
사대부에게 인격적 죽음은 생물학적 죽음보다
오히려 고통스러울 수 있습니다.
자암의 시처럼 음풍농월은 꿈조차 꿀 수 없습니다.
장형으로 찢겨나간 살과 으스러진 뼈를 수습해
유배길에 오른 이들의
절반은 길에서 생명을 다합니다.
위리안치圍籬安置
요행이 목숨을 부지해 유배지에 도착한다 해도
그 것으로 형벌이 끝나는 게 아닙니다.
정치범에게 마을 사람들의 눈길이
따뜻할 리 없습니다.
먹을 것을 스스로 거두어야 하고
마을 아이들을 가르쳐 호구의 방편으로 삼아야 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탱자가시에 둘러싸인 울타리 밖을
한발짝도 나갈 수 없었습니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죽은 것도 아닌 경계...
유배가 사형보다 오히려 더 가혹한 형벌인 까닭입니다.
유배 문학관 내무
더 많은 정보는 여기서...
http://tour.namhae.go.kr/main/
(이 여행은 남해군에서 협찬해 주셨습니다)
'여행풍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해여행]고사리밭 길 (0) | 2011.11.16 |
---|---|
어부림과 죽방렴 (0) | 2011.11.15 |
남해여행 - 무술목, 미친 달빛 (0) | 2011.11.14 |
숲...산책 (0) | 2011.11.10 |
2011 서울 등축제 (0) | 2011.1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