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타루 창고 앞에서 ]
오타루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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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오타루는 일본에서 고베에 이은 3대 국제 무역항 중 하나였다.
19세기 후반 사할린과 유럽 항로가 개설되었고
운하를 오가는 거룻배들은 쉴새 없이 창고에서
물자를 하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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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지금 운하를 오가던 거룻배들도
거룻배들이 오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도
모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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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그런 변화를 쇠락이라고 한다.
나는 가끔 그런 쇠락한 도시에 매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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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기억들이...
때로는 쓰라린 상처들이
내게 말을 걸어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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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루는 그런 도시다.
조용하고 수줍고 잔잔하고 낮은
목소리를 가진,
지금은 쓸모를 잃은 운하와
그 운하를 지켜보며 늙어가는 창고들이
기억은 물드는 것이라고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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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내가 사람 구실을 한 적이 있었던 것처럼
그들도 한 때 창고 구실을 한 시절이 있다.
창고가 창고였을 때 보다
지금 내게 더 창고스럽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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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들이 고이고 시간들이 잠시 멈추고
사람들은 이 곳에서 자신의 시간의 조금씩
떼어다 쓸모없는 창고에 묻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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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다시 돌아와 찾을 생각을 하지 않고
거기 그렇게 오래 고여 있기를 바라거나
간혹 바랜 시간들은 꺼내
녹을 닦아내고 다시 묻어두는 그 곳...
오타루의 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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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한 차례씩 눈발이 날렸다.
나는 창고의 이 쪽에서 저 쪽까지 걸었다.
운하 건너 편에서 창고를 바라보며
저쪽으로부터는 창고 뒤편에서
운하를 상상하며...
그리고 밤이 오면 다시 이 곳에 찾아올 것을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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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릴 것도 없고
다시 찾아야 할 것도 없으며
한 때는 쓸모 있어 충만했던 삶 보다
비어서 더욱 아름다운 오타루의 창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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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빈 창고 앞을 걸었다.
그리고
많은 것들이 그렇게 고이고 흘렀다.
조각난 기억들을 이어 붙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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