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겨울보다 더 깊은 겨울

하피즈 2011. 12. 20.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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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보다 더 깊은 겨울속으로]

- 홋카이도 비에이美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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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겨울은 유난히 깊고 가팔렀다.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때 북해도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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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은

내가 상상했던

완벽한 겨울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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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증한 제설차

끝도 없는 철길 위로

끝도 없이 쌓이고 또 쌓이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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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설주의보 따위는 이곳에선

무력하다.

쌓이고 얼어붙고

그 위로 또 쌓이고

겨울은 그런 시간을 무한하게

반복하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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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에서 북쪽으로

기차로 달려 두 시간...

눈을 잔뜩 뒤집어 쓴,

물매가 유난히도 빠른

지붕을 가진 집들이

자꾸만 뒤로 쏜살같이 달아나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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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들이 달아난 자리엔

숲이 빈 자리를 메우고,

그러나 대개는 눈으로

채워진 벌판들이 나른하게

누워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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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추워보이는 기차가

아사히카와旭川역에 사람들을

잔뜩 토해놓고

삿포로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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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행은

마즈다 1500cc 차를 빌려

비에이美映로 향했다.

내비에선 알 수 없는

일본말이 계속 재잘댔고

왼손으로 숟가락질을 하듯

어색하고 불편하게

눈길을 꾸역꾸역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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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스런 계집애 이름같은 도시

美映...

그러니까 비에이로 떠난 이유는

그냥 눈이 원없이 보고 싶어서...

대만 관광객들이 대관령에서

깔깔대듯

천오백 씨시 마쯔다 자동차 안은

조금은 유치한 감탄사로

금새 가득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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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도 이만하고 좋았고

일본산 스노우 타이어도 믿을만 했다.

왼손으로 숟가락질하는 것도

생각보다 빠르게

적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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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눈구경을

하기 위해 나섰다고 오해하면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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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뷰포인트...

어느 담배회사의 광고에 나왔다고 해서

유명해진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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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광고 플래너는

아주 영악한 놈일게 뻔하다.

저렇게 쿨한 나무에

더럽고 지저분한 담배의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매치시켰으니...

나무를 보면서 든 생각 하나...

그 엿같은 담배를 한 모금 쭉 빨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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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같은 담배 회사의 이름을 가진

숲이다.

젠장...

차라리 도루코나

질레트 면도기 숲이라면

한결 잘 어울릴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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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차를 타고 달린다.

어떻게 된 일인지

사람도 없고

차들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숲과 나무

그리고 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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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여행자를 위한

팬션들이 보이긴 했지만

겨울은 비철이라

'Closed'

우리는 기가 막히게 막다른

계절을 찾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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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기가 막히게

들떴고 조금은 흥분했으며

(왜냐구? 세상에 나 밖에 없다고 상상해봐!)

...그리고

콧날이 쌔하고

어깨가 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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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션이건

관광안내소건

라벤더 아이스크림 가게던

다코야끼 점빵이던

모두 다 닫았다.

우리만 빼고 어디론가

모두 숨어버려서

무척 상쾌한데...

배가 고팠다.

결국

美映읍내까지

돌아와

750엔짜리 뜨거운 소바

한 그릇 말아먹고 

거리로 나오니 거짓말처럼

또 눈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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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도 없는 눈 속에서 

갇힐 것처럼

두려워 하면서

다른 한쪽으로

그 끝조차 불투명한

이 눈속에 갇히길

간절히 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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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시간 3시 55분

폭설로 겁을 먹은 우리는

인간의 세상으로 

서둘러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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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해가지면

그 곳에서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할것 같은

무섬증이 더럭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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