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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보다 더 깊은 겨울속으로]
- 홋카이도 비에이美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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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겨울은 유난히 깊고 가팔렀다.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때 북해도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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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은
내가 상상했던
완벽한 겨울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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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증한 제설차
끝도 없는 철길 위로
끝도 없이 쌓이고 또 쌓이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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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설주의보 따위는 이곳에선
무력하다.
쌓이고 얼어붙고
그 위로 또 쌓이고
겨울은 그런 시간을 무한하게
반복하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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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에서 북쪽으로
기차로 달려 두 시간...
눈을 잔뜩 뒤집어 쓴,
물매가 유난히도 빠른
지붕을 가진 집들이
자꾸만 뒤로 쏜살같이 달아나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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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들이 달아난 자리엔
숲이 빈 자리를 메우고,
그러나 대개는 눈으로
채워진 벌판들이 나른하게
누워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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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추워보이는 기차가
아사히카와旭川역에 사람들을
잔뜩 토해놓고
삿포로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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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행은
마즈다 1500cc 차를 빌려
비에이美映로 향했다.
내비에선 알 수 없는
일본말이 계속 재잘댔고
왼손으로 숟가락질을 하듯
어색하고 불편하게
눈길을 꾸역꾸역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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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스런 계집애 이름같은 도시
美映...
그러니까 비에이로 떠난 이유는
그냥 눈이 원없이 보고 싶어서...
대만 관광객들이 대관령에서
깔깔대듯
천오백 씨시 마쯔다 자동차 안은
조금은 유치한 감탄사로
금새 가득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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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도 이만하고 좋았고
일본산 스노우 타이어도 믿을만 했다.
왼손으로 숟가락질하는 것도
생각보다 빠르게
적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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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눈구경을
하기 위해 나섰다고 오해하면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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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뷰포인트...
어느 담배회사의 광고에 나왔다고 해서
유명해진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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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광고 플래너는
아주 영악한 놈일게 뻔하다.
저렇게 쿨한 나무에
더럽고 지저분한 담배의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매치시켰으니...
나무를 보면서 든 생각 하나...
그 엿같은 담배를 한 모금 쭉 빨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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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같은 담배 회사의 이름을 가진
숲이다.
젠장...
차라리 도루코나
질레트 면도기 숲이라면
한결 잘 어울릴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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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차를 타고 달린다.
어떻게 된 일인지
사람도 없고
차들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숲과 나무
그리고 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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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여행자를 위한
팬션들이 보이긴 했지만
겨울은 비철이라
'Closed'
우리는 기가 막히게 막다른
계절을 찾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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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기가 막히게
들떴고 조금은 흥분했으며
(왜냐구? 세상에 나 밖에 없다고 상상해봐!)
...그리고
좀
콧날이 쌔하고
어깨가 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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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션이건
관광안내소건
라벤더 아이스크림 가게던
다코야끼 점빵이던
모두 다 닫았다.
우리만 빼고 어디론가
모두 숨어버려서
무척 상쾌한데...
배가 고팠다.
결국
美映읍내까지
돌아와
750엔짜리 뜨거운 소바
한 그릇 말아먹고
거리로 나오니 거짓말처럼
또 눈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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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도 없는 눈 속에서
갇힐 것처럼
두려워 하면서
다른 한쪽으로
그 끝조차 불투명한
이 눈속에 갇히길
간절히 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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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시간 3시 55분
폭설로 겁을 먹은 우리는
인간의 세상으로
서둘러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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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해가지면
그 곳에서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할것 같은
무섬증이 더럭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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