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팔,라다크

슬픈 미래...라다크 첫번째 이야기

하피즈 2009. 1. 20. 10:22

 

산티스투파에서 본 레 시내의 저녁 풍경 

 

멀리 레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고단했던 이틀간 여행의 모서리에 도착한 것이다. 린드버그가 세인트루이스의 불빛을 본 심정이 아마 이렇지 않았을까? 여행이 무사히 끝난 거에 대한 감사와 안도의 웃음이 여행자들의 얼굴에 묻어났다. 그러나 버스에 함께 탔던 일행들은 보험외판원의 낡은 가방처럼 모두 후줄근한 몰골이다. 해발 5,000미터가 넘는 산 고갯길을 이틀내 달려왔으니 정상이라면 오히려 이상할 터... 인적이 보이기 시작한 후로도 버스는 한 시간을 가량을 더 달려 완연히 어두워진 다음에야 레의 버스터미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레에는 그저 막막한 어둠과 호객꾼만이 여행자들을 마중나와 있었다. 합승 택시에 실린 그들은 영낙없이 바닷물에 젖은 초라한 짐짝이었다. 버스 스탠드에서 창스파 거리까지는 레 시내를 거쳐 조금 더 북쪽으로 올라가야 했다. 늦은 밤까지 손님을 기다리는 식당과 호텔의 불빛이 보였다. 차들이 지날 때마다 날리던 뿌연 흙먼지와 매캐한 매연들... 라다크의 첫날 밤은 그저 구겨진 육신을 의탁할 만한 침대 하나로 만족해야 했다.

 

 레 주변의 언덕을 따라 난 길

 

라다크는 ‘고갯길이 있는 땅’이란 뜻의 티베트어 ‘라다그스’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인도와 길기트에서 온 아리안들이 먼저 자리를 잡았고 그 후 기원전 500년 경 몽고의 유목민이 합류하면서 현재에 이른다. 1000년간 티베트 왕국의 지배를 받았던 라다크는 10세기 무렵 독립된 왕조를 건설했다. 그러나 여전히 티베트의 문화권 안에 속해 있었던 라다크는 19세기 중반 힌두 도그라스의 침략을 받아 잠무 카시미르 왕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인도가 영국에서 독립한 후 인도 령 잠무 카시미르의 한 주가 되었다.

 

 

 황량한 산 중턱에 자리잡은 마을의 모습

 

인도에서 라다크는 버려진 땅이나 다름없었다. 땅은 척박했고 종교도 달랐다. 라다크은 예전 티베트 왕국의 영토였고 티베트로부터 독립한 후 지금까지도 티베트 불교의 유산이 고스란히 나아있는 땅이다. 그러나 1950년 중국이 티베트를 강점하자 사정은 달라졌다. 라다크는 인도의 전략적 요충지가 되었다. 1962년 파키스탄과 중국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인도 군대가 라다크에 주둔했고 1974년에는 외국 관광객에게 개방했다. 그리고 그곳에 도로를 만들고 학교와 병원을 세웠고 라다크 개발관을 파견하여 그들 식의 개발을 일방적으로 추진해왔다.

 

 

여행사 광고판 앞에서 야채를 파는 라다크 여인 

 

그 후로 30년, 이제는 매년 길이 열리는 여름이면 한해에도 수천 명이 넘는 여행자들이 라다크를 찾는다. 라다크는 빠르게 변화했다. 돈 냄새를 맡은 장사꾼들이 인도와 카시미르에서 몰려와 숙박시설과 식당을 세우고 여름 한 철 돈을 쓸어간 후 길이 닫히면 사라졌다. 그리고 여름이면 다시 나타났다. 이제 라다크도 세계 경제의 가장 밑바닥에 당당히 한 자리 차지했다.

 

라다크를 말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책은 헬레나 노르베지 호지의 "오래된 미래-라다크에서 배운다"라는 서적이다. 1970년대인도 정부에 의해 라다크가 개방 된 이후 가장 먼저 이곳에 발을 밟은 이가 '오래된 미래'의 저자 호지다. 그녀는 라다크 말을 배우기 위해 이곳에 왔지만 곧 라다크 문화에 흠뻑 매료된다. 세상에서 가장 오지로 외부의 영향을 안받고 그들만의 독자적 문화와 경제를 꾸려갔던 라다크는 그녀에게 경이의 대상이었다.

 

 

 

척박하고 메마른 땅에 살면서도 질박하고 순수한 사람들, 풀 한포기 제대로 나지 않는 땅에서도 항상 자연에 감사하며 행복하고 만족한 모습으로 사는 라다크 인들은 서구 문명에 익숙한 그녀에게 일종의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왔다. 노르베지 호지는 "티베트 고원 위의 오래된 문화의 지방 라다크에서 얻은 6년 이상의 경

험이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을 극적으로 바꾸어놓았다 나는 우리의 산업문화를 전혀 다른 관점에서 보게 되었다"라고 말한다. 그녀는 이곳에서 인류의 새로운 진보의 방향을 발견한 것이다.

 

창스파 거리의 곰파(티베트 사원) 

 

그녀는 서구 산업사회의 삶을 통해 인간은 본질적으로 경쟁하고 살아남기 위해 싸우는 이기적인 존재라고 생각했고 좀더 협동적인 사회는 유토피아적인 꿈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대부분의 서구인들은 무지와 질병과 끊임없는 노역이 산업화 이전 사회의 운명이었다고 믿었다. 그리고 개발도상국들에서 우리가 보는 빈곤과 질병과 굶주림은 얼른 보아 그러한 가정을 입증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금의 제3세계의 문제는 바로 서구 중심적인 식민주의와 오도된 개발의 결과라는 것을 그녀는 깨닫게 된다.

 

 

그녀가 라다크 땅을 밟은 후 라다크는 다른 저개발국가와 같은 운명의 길을 걷는다. 거의 화폐가 쓰이지 않았던 이곳에서 돈이란 문명의 이기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고 도로가 깔리고 학교와 관공서가 들어서며 사람들은 양가죽으로 만든 옷을 벗고 점차 청바지로 갈아입었다.

 

 

 

대대로 척박한 땅을 일구던 라다크 농민들은 돈을 남들기 위해 집과 고향을 떠나 도시 외곽의 빈민으로 전락했고 예전에 그들이 직접 심고 가꾸었던 작물들을 이제는 시장에서 돈을 주고 사먹어야 한다. 농민들도 돈이 되는 작물을 심지 않고는 버틸 수가 없었다.

 

 

여름 한철이면 관광객이 몰려들었고 라다크 전통가옥들은 게스트하우스와 호텔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물론 남부 인도와 스리나가르에선 온 장사꾼들이 여름에 몰려와 한철 장사를 한 후 길이 막히는 겨울이면 그들이 왔던 곳으로 돌아갔다. 여름 한철 라다크의 수도 레는 관광객들로 흥청였지만 라다크 주민들에게 돌아간 것은 그들이 남기고 간 쓰레기와 서구 문명의 잔재들 뿐이다. 지금도 레의 한쪽에서 전통가옥이 무너지고 새로운 여행자 숙소가 들어서고 있다.

 

 

 라다크 옛 왕궁에서 본 레 시가지

 

개발의 중심에 밀려난 사람들을 집을 잃고 도시외곽으로 쫓겨났다. 그들은 예전 가족들과 살던 집들보다 비좁고 어두운 곳에서 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도로도 들어오고 학교와 병원도 세워졌다. 이전에 쓰지 못했던 돈들도 흥청망청 돌아간다. 그러나 그들은 행복하지 않다. 가족과도 떨어져 살아야 하고 부모와 자식간의 대화도 단절되었다. 그들은 그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외로움과 소외라는 낯선 감정들과 마주해야 했다.

 

 

 라다크 전통 가옥

 

 

무엇이 그들에게서 아들과 딸들을 빼앗고 가족을 뿔뿔히 흩어져 살게 만들었을까? 대답은 그리 멀지 않다. 한국에서도 바로 2,30년전 벌어졌던 일들이 라다크에서도 개발과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고 있을 뿐이다.

 

 레 시가지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