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예술 가운데서 우주 질서를 체현하는 데 가장 큰 힘을 기울여야 하는 예술이 바로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장식행위의 산물인 건축물은, 자기가 속한 종種의 완성미와 균형미를 대표하는 한 마리의 동물과 같다.
-<장미의 이름> 中에서 움베르토 에코/ 열린책들 이윤기 옮김
대낮이지만 구름의 그림자가 남걀 체모 곰파를 덮었다.
1. 남걀 체모 곰파
레의 동쪽 황량한 산허리 왕궁의 머리맡에 남걀 체모곰파가 있다. 레에서 해가 가장 일찍 뜨고 늦게 지는 곳이다. 600년전 라다크 왕국이 가장 번성했던 시절, 셍게 남걀Sengge Namgyal 왕이 건축했다는 이 사원은 레 시내 어느 곳에도 볼 수 있을 만큼 높고 험한 바위산 위에 우뚝 서있다.
시내에서 바라 본 남걀 곰파 지그재그로 보이는 선이 곰파로 올라가는 길이다.
해발 3,500미터인 레 시내에서는 그냥 숨쉬기도 힘겹다. 하물며 가파른 바위산을 걸어 올라가는 건 정말 보통 일이 아니다. 중력을 힘겹게 이겨내며 한 계단 한 계단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다섯 걸음 쯤 가다 쉬고 또 다섯 걸음을 이어간다. 오체투지 처럼 걸음은 더디고 길은 가파르다. 레 시내를 출발한지 한 시간이 넘어서야 겨우 사원 입구에 도착했다. 오색 초룽바를 휘날리던 바람이 귓가에 불경을 속삭였다.
파드마 삼바바가 티베트에 불교를 전한 7세기 무렵 티베트는 중원을 위협하는 강자로 떠올랐다. 당나라에서는 티베트 왕에게 문성공주를 보내 화친을 도모했고 티베트는 빠르게 불교 국가로 변모한다. 티베트이 가장 강성했을 때 현재 티베트 땅은 물론 라다크와 현재 중국 쓰촨성과 윈난성 일대는 거의 티베트의 땅이었다.
남걀 곰파에서 보이는 마을의 모습
혹자는 이렇게도 말한다. 티베트가 예전의 힘을 잃고 가난하고 힘없는 나라로 변한 것은 불교의 영향이 크다고...그러나 티베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다. 풍요로운 정신 세계가 그것이다. 죽음을 알기에 삶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이들이 자신이라고 그들은 믿는다. 1,400년전 지구상에서 가장 힘이 강했던 나라가 스스로의 결단에 의해 그 힘을 포기한 것은 인류 역사상 티베트가 유일하다.
산의 남쪽 사면인 왕궁 쪽에서 올라오는 길
천으로 얼굴을 가린 파드마 삼바바 불상
차에 야크 버터를 녹인 수유차가 담긴 찻잔과 주전자
사원은 화려함 또는 웅장함 보다는 수많은 전쟁터에서 적을 베고 또 베인 상흔을 가진 노장군의 깊은 주름을 닮았다. 600년의 세월의 풍상을 이겨내고 지금도 레의 하늘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해지기 전 남걀 곰파
레에서 처음 아침을 맞이하던 날 남걀 곰파에 올랐고 한달 반이 지난 뒤 다시 곰파에 올라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레에서 맞이했던 마지막 석양이었다. 알 수 없는 뜨거움이 눈가를 적셨지만 마른 바람에 슬픔 따위는 이내 날아갔다. 그리고 해가 진 뒤 숙소에 들어와 배낭을 꾸렸다. 그날 밤 레의 하늘에는 어느 때보다 많은 별이 떴다. 오래 머물면 떠나기 힘들다는 것을 알 때 유목은 슬퍼진다.
남걀 곰파가 보이는 밤하늘
2. 샹카르 곰파
레의 시내에 있는 티베트 곰파다. 시내에 비교적 가깝기 때문에 들르기도 편하다. 저녁 예불 시간을 외국인에게 공개하지만 참석해 본적은 없다. 티베트 불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 쯤 들려 볼만하다.
샹카르 곰파 법당 문장식
3. 대청보사
라다크 유일의 한국 사찰이다. 주지인 대암 스님이 오토바이를 타고 인도를 돌아다닌 일화로 유명하다. 90년대 초 스님이 라다크에 들렀을 때 바로 여기다 싶어 무작정 주춧돌을 심고 기둥을 세운 절이 지금의 대청보사다. 대암 스님은 겨울 한철만 절에 머물기에 주로 독딴 스님 등 라마 승려가 절을 지킨다. 마침 여름을 맞아 절 공사가 한창이라 대암 스님을 만날 수 있었다. 여행자들에 김치며 된장이며 한국 음식을 아낌없이 퍼주고 점심 때를 맞추면 한끼 공양은 문제가 없다. 라마승인 독딴 스님의 김치와 한국 요리 솜씨는 그야말로 일품이다.
독딴 스님과 대암 스님, 김치 만드는 데 참견을 하고 있다.
독딴 스님이 만든 김치를 맛보는 대암 스님 독딴 스님이 만든 라다크 식 김치
4. 산티 스투파
남걀 곰파와 마주 한 서쪽 하늘, 높은 불탑이 서있는 사원이다. 20여 년전 일본 일연 정종에서 건축한 것으로 좀 오만한 표정을 가진 듯 하다. 모두 567 계단을 올라야 사원에 오를 수 있다.
사원을 올라가는 라마승려 이같은 계단이 모두 567개
불탑 저녁에 불을 밝힌다
사원에서 보는 푸른 하늘과 광장에서 보이는 레 시내의 모습은 너무나 놓치기 싫을 만큼 아름답다.
대청보사에 텃밭에서 배추를 따가는 처자. 스님이 주신 된장으로 찌개를 끓였으나 된장 냄새가 그렇게 오래 갈수 있는지 그 때 처음 알았다.
산티 스투파 가는길에 만났던 소년들. 그냥 걷기도 힘든 판에 축구라니...
정말 나는 산소가 부족하단다. 얘들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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