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팔,라다크

오래된 도서관

하피즈 2009. 2. 24. 01:52

 

래된 도서관

 

틱세 곰파 전경

 

"산토리니를 닮은 것 같아요."

 

느닷없는 말이었지만 당신의 말은 옳았어

그래. 맞아 산토리니였어...

 

 

 

 

어떤 수사로도 설명이 불가능한 사파이어 빛 하늘과

태양의 세례가 쏟아지던 하얀색 건물들...

 

 

 

단지 지중해와 황무지가 슬쩍 자리를 맞바꾸었을 뿐이지

 

 

 

 

줄긋기 문제의 마지막에

코끼리와 바다코끼리만 남았다면?

 

나는 느리게 그리고 희미하게

점선으로 남은 것들을 연결하겠어

분명히 짝짓지 않아도 조금은 덜 외롭게...

 

 

 

지붕에 걸린 푸른 하늘이 아니었다면

감히 곰파로 오를 엄두도 내지 못했을 거야

 

 

 

 

 

그래도 곰파는 무섭도록 쓸쓸한 적막

지독하게 환한 오후의 한가운데를

아무런 말없이 버텨냈을 테지

 

 

 

창문 안에는

언제부터 그곳을 기다렸는지 모를

침묵이 고여 있었어

 

 

 

마을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진 걸까?

어디에 내 눈에만 보이지 않는 커다란 구멍이 있어

그 구멍 속에 모두 숨어버린 건 아니겠지.

 

 

 

 

오래된 도서관은 곰파의 제일 높은 곳에 있었지

도서관으로 가는 안내판은

누군가 엿보지도 않건만

그늘 속에 엉성하게 숨어 있었어.

 

 

 

 

억지로 용기를 내 겨우 얼굴을 내민

그런 숫기 없음에 마음이 더 끌렸던 거야

 

 

 

 

 

1분 쯤 지났을까?

어둠의 테두리가 드러났지

작은 불상과 붉은 비단에 싸인 불경, 오래된 먼지의 냄새...

 

 

 

 

 

 

 

"도서관이라기보다는

책이 살고 있는 다락방 같아요"

 

당신의 얼굴에도 다락방의 옆모습 같던 쓸쓸함이 묻어있더군

 

 

 

 

 

삼배三拜를 올릴 때 뭔지 모를 서늘함이 등 쪽에서 느껴졌어

마루에 아무렇게나 누워 자던 젊은 라마승이 보였지

 

 

 

 

아주 먼 곳을 여행하는 얼굴 이었어

그가 가는 길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지

결국 그의 단잠을 깨우고 말았지만...

서로 다른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작고 어두운

다락방에서 만난거야

 

 

 

 

 

 

한 사람은 마음이 가는 길을 따라

다른 한 사람은 걸음이 이끄는 길을 따라

서로 다른 곳을 가고 있다고 생각했던 우리는

어쩌면 같은 길을 걷고 있었는지도 몰라

 

 

 

 

당신이 꿈꾸는 그곳과 내가 꿈꾸던 그곳이 다르지 않기에...

잊혀진 사원을 맴도는 늙은 순례자와 같은 길을 가기에...

 

 

 

 

 

 

틱세 곰파 아래는 레고 블럭 같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얼핏 보면 대충 지은 연립 주택같은 느낌도 든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보면 창문도 제각각이고 집 안으로 들어가는 문들도 여간해선 찾기 힘들다. 계단을 오르다 보면 건물과 건물을 연결하는 통로나 방 아래를 지날 때도 있다. 막다른 골목이라고 생각하면 또 다른 길이 있거나 바로 윗집에 가야하는데도 한참을 빙 돌아가야 하는 그런 무질서한 건물 속에서 길을 잃기도 한다. 처음부터 거창한 계획을 갖고 세운 집들도 아니고 공간이 허락되는 대로 하나하나 짓다보니 지금의 모습이 된 것이다. 처음 다락방 같은 작은 불당을 시작했던 틱세곰파는 600년 세월이 흘러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오랜 세월 짓고 허물고 그래서 더욱 어지러운 골목들...그럼에도 불구하고 틱세 언덕의 집들이 묘하게 매력적인 이유는 서로 다른 만화책을 잔뜩 가진 만화가게 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아귀도 잘 맞지 않는 창문 안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숨어있다. 뜨거운 벽난로 앞에서 삐걱대는 의자에서 찬바람이 새나오는 창문 안에서 사람들은 꿈을 꾼다. 똑같은 문, 똑같은 구조, 똑 같은 평수에 사는 사람들이 꿀 수 없는 다양한 빛깔의 꿈들...틱세로 오르는 길은 몽당 색연필로 쓴 달콤한 꿈들이 밤마다 콩콩 쏟아지는 골목이다.

 

* 틱세 곰파

레에서 약 30~40분 남짓한 거리에 위치한 곰파. 레에서 비교적 가깝고 가는 길에 쉐이 곰파도 함께 볼 수 있어 여행자들에게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곰파에서 바라보는 주변 경관은 그야말로 일품이다. 라다크에서 제일 큰 규모의 불상이라는 미륵불로도 유명하다.

 

 

 틱세 곰파에서 본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