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드셀라 증후군 Mood Cela Syndrome
추억은 아름답다는 자기 확신에서 시작된다.
자신에게 나쁘거나 좋지 않았던 기억은 지워버리고 좋은 기억만을 떠올리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추억은 아름다운가?
나는 누추한 밤을 서성대며 혹은 손톱을 뜯으며 초조하게 물었다.
기름진 음식 냄새가 진동하던 중국인 거리, 목덜미를 쥐어짜는 것 같던 베트남의 태양, 지린내가 솟구치던 인도의 칙칙한 뒷골목...
그러나 뒤돌아서서 웃을 수 있는 이유는 나쁜 기억들이 가진 강한 휘발성 때문이다.
사진들은 지난 시간을 재생하는 기억의 대용품이다.
나는 간혹 오래 된 흑백 사진들은 볼 때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씨레이션(C-ration 전투식량)의 냄새를 맡는다.
뇌에는 수천 수억의 서랍들이 존재한다.
그것들은 대부분 한번 닫히면 다시는 열리지 않은 채 잊혀 지지만 때때로 사진이란 열쇠를 통해 봉인이 풀리기도 한다.
그렇게 재생된 기억들은 식물성 기름에 오래 저장되었던 참치 통조림 같다. 그런 기억은 개연의 근거일 뿐이다.
우리는 황새치가 들어간 참치 통조림 같은 기억들을 추억이라 부른다.
사진은 수많은 시간의 한 순간 그리고 하나의 장면을 기록한다.
셔터를 누르기 전 누구나 선택을 한다. 무엇을 찍을지, 어떤 장면을 담을지, 어떤 순간에 셔터를 누를지...
우리의 기억은 아주 짧은 순간만 선택되고 나머지는 매정하게 폐기된다.
더럽고 불쾌하고 괴로운 장면이 선택될 기회는 거의 없다.
그렇게 살아남은 사진 형태의 기억들은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불확실 했던 나머지 부분을 가공하며 전혀 엉뚱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기도 한다.
기억은 오래 될수록 불공정하고 엉뚱한 오류와 망상의 산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되는 경우도 많다.
기쁘고 행복한 것 그리고 불행, 고통도 같은 무게로 추억에 담긴다면....
아마 아무도 여행 따위는 떠나지 않을 것이다.
호이안 시내
베트남에서 비자 없이 지낼 수 있는 15일
베트남 북쪽 하노이를 출발한 여행자들은 베트남 남단 호치민(사이공)까지 갈 수 있는 내려가는 오픈 투어버스를 예약한다.
오픈 투어버스는 중간에 원하는 도시에 있다면 어디에서건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 북부에서 얼마나 머무는가에 따라 다음 일정이 결정된다. 보통 베트남 중부에서 며칠을 머문 후 남쪽으로 내려간다.
호이안 거리 풍경
베트남 중부에는 훼Heu, 호이안Hoian, 나짱nazang 이렇게 세 개의 휴양 도시가 있다.
여행자들은 이 세 개의 도시 중 하나를 선택한다.
나는 다낭에서 남쪽으로 30km 떨어진 호이안으로 향했다.
어린 시절 다낭에서 아버지의 그림엽서를 받은 기억이 그곳으로 이끌었다.
투본강의 어부
호이안은 작은 강을 끼고 있는 소박하고 조용한 도시였다.
시의 외곽을 따라 투본Thu Bon강이 흘렀고 다리의 양 편에는 치자색 외벽에 잘 익은 감빛 기와를 올린 집들이 동화 속 마을처럼 늘어서 있다.
열대의 꽃들 사이로 중국식 고택과 잘 정돈된 테라스를 보며 걷다보면 이곳이 과연 베트남인지 의심이 될 정도로 이국적이다.
호이안은 500년 전부터 중국과 일본, 인도, 네덜란드 등 서구상인들이 드나들던 국제 무역항이었다.
호이안을 중심으로 장사를 했던 화상華商들은 아예 이곳에 터를 잡았고
여기에 인도와 서구 문화의 영향까지 더해져 그들만의 독특한 도시 분위기를 만들어갔다.
그러나 근대로 접어들며 다낭과 호인안의 운명은 서로 엇갈린다.
바다를 지척에 끼고 있던 다낭은 19세기 중반 프랑스에 점령되며 베트남 중부의 대표적인 항구도시로
강 안쪽으로 깊숙한 곳에 자리했던 호이안은 점차 쇠락해 한가로운 어촌 마을로 전락한다.
베트남 전쟁은 또 다시 한번 호이안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군사적 요충이었던 다낭에는 대규모 공장과 항구 등의 시설이 들어섰지만 호이안은 전쟁에서 한발 비켜설 수 있었다.
호이안이 만약 18세기 이전처럼 번성한 국제무역도시였더라면 지금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중국 화교들이 지은 사원
에도 시대 이전 일본인이 거주할 때 지은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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