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지면에 실리지 못한 글과 사진을 묶어 연재합니다... 즐겁게 봐주세요...)
바람은 모래언덕을 만들고 모래는 바람에 실려 바위를 부수고 산을 깎는다.
하루 종일 무릎 아래를 스치며 사각대는 모래와 바람이 울어대는 소리가 텅 빈 공간을 채운다. 사막은 시작부터 불멸을 향해,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죽음을 향해 성장하기 때문에 사막에서 느껴야 하는 두려움은 다른 어떤 공포보다 추상적이면서 동시에 포괄적이다. 무한해 보이는 공간 안을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시각적 낯설음은 사막에 대한 기이한 환영과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도시와 그 주변에 사는 사람들에게 사막은 상상의 공간이며 이미지다. 그럴 듯한 모험과 환상으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채울 수도 있고 극한에 대한 도전과 극복으로 인간 정신을 찬양할 수도 있다. 많은 여행가들과 탐험가들이 그런 시각으로 사막을 묘사하고 정의 내렸다. 보통 사람들은 이를 확인을 할 방법도 없고 감히 사막에 도전할 엄두도 내지 못했기에 그런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 때로는 진실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헤로도토스나 이븐 바투타, 마르코 폴로와 같은 위대한 여행자의 기록에도 사막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거대한 증기 솥 안에 들어간 듯한 지독한 더위, 잔인한 갈증, 단 1미터 앞도 보이지 않는 카라부란-검은 모래폭풍-과 수만 개의 바늘이 뼈 속을 파고드는 새벽추위... 극한의 고통을 극복해가는 인간 혹은 비장한 최후의 모습을 그린다.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에 이르는 동안 중앙아시아는 탐험과 약탈의 시대를 맞이한다. 학술조사와 탐사라는 목적으로 수집한 엄청난 유물들은 자국으로 공수되었다. 독일의 그륀베델 탐험대, 영국의 오렐 스타인, 프랑스의 폴 펠리오, 스웨덴의 스벤 헤딘과 일본의 오오타니까지....
마자흐타구(장군총)과 관리인
특히 일본의 미심쩍은 승려 오오타니는 엉뚱하게 우리나라에 엉뚱한 선물을 안겨준다. 정식 학술탐험대도 정부의 지원을 받지도 않은-그러나 이점은 약간 미심쩍다. 발굴단 중 일부는 일본군 장교로 밝혀졌다-일개 절의 주지인 오오타니가 돈황의 벽화와 조각품, 공예품을 쓸어 모았다. 그것을 임시로 서울의 중앙박물관에 보관하였는데 일본이 패망하는 바람에 유물의 소유권 여부가 허공에 붕 뜬 셈이다. 사정은 어찌되었든 한국 입장에서는 생각지도 않았던 호박이 넝쿨 채 굴러들어온 셈이다. 물론 지금도 실크로드의 유물들은 아주 가끔 특별전을 통해 얼굴을 가끔 내보일 뿐 국립박물관 지하 소장고 안에 귀하게 모셔져 있다. 지금껏 그 유물의 전모는 공식적으로 밝혀진 바 없다.
구운 오리알을 먹는 위구르인들-허텐(호탄)
탐험가들은 학문적 열정과 고대 문화에 대한 학술연구를 목적으로 조사를 한다지만 결국 목적은 유물 수집,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명백한 약탈이다.-역사적으로 따지면 티벳과 위구르 등 비한족권 민족에게 한족이 지배하는 중국은 침략자다- 인간이 접근하기에 너무나 가혹한 환경을 가진 타클라마칸 일대 탐험은 고대 유물이라는 달콤한 대가가 없었다면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중국 정부가 정신을 차렸을 때 돈황의 석굴은 모두 털린 상태였다.
한동안 외국인들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었던 이 지역은 중국의 개혁 개방 이후 다시 외국인들에게 문을 연다. 그러나 새로운 지역의 탐사 또는 혹시라도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유물에 대한 접근은 엄격히 금지되거나 통제된다. 그래도 소수의 여행자들은 척박한 자연을 향한 도전 정신 혹은 문명의 교차로였던 실크로드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품고 서역으로 몰려들었다.
타클라마칸에 온 여행자 혹은 모험가들은 이제 목숨을 걸지도 않으며 죽을 정도로 위험한 곳에 들어갈 만큼 어리석지도 않다. 20세기의 마지막 탐험의 시대를 장식한 전설적인 모험담은 동경할 수는 있겠지만 현실은 물론 정반대다. 사막으로 떠나는 이들은 고독한 죽음과 마주할 기회도 또 그렇게 해야 할 동기도 거의 없다. 고립이 거의 불가능한 수준의 장비들과 도로망이 뻗어있다. 사막 공로를 따라 거의 10km간격으로 무선전화 중계 탑들이 높이 서있으며 만약 무선 전화가 없더라도 맑은 날 도로 반경 10km에서는 어디서나 이 탑을 볼 수 있다. 견딜만한 수준의 고통과 불편이 모험을 즐기는 이들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극한에 대한 도전, 목숨을 사투, 천국 같은 오아시스...모두가 기대하고 또 그래야 할 것 같은 21세기 사막 탐험은 24시간 통화가 가능한 휴대전화와 아무리 외진 곳이라도 5시간이면 완벽한 문명 세계로 인도해 줄 수 있는 사막 고속도로변에서 시작된다.
나 또한 그런 멋진 모험담 하나를 건지고(?) 싶었고 어쩌면 목격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고 타클라마칸으로 떠난다. 순진하지만 그다지 순수하지는 않다. 너저분한 핑계지만 여행을 오래 하다보면 오로지 여행 그 자체에서 느낄 수 있는 ‘즐거운 자극'은 조금씩 떨어진다. 일종의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같은 것이다. 처음의 달콤함도 자주 그리고 많이 반복되면 물리고 맛도 그저 그렇다. 세상에 미식은 없다. 구별하는 혀의 감각만 존재할 뿐...
색다른 여행을 통해 다른 무언가를 얻고 싶어진다. 남들이 가는 곳들은 시들해지고 남들에게 여행 이야기를 할 때 눈을 반짝 떠지게 만드는 그런 신선한 곳으로 눈길이 간다. 그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것 또한 허접할 뿐더러 너접스럽기 짝이 없다. 여행 전문가 따위의 거짓된 명성이나 거기서 건진 몇 푼 안 되는 금전적 이득...처음에는 비우기 위해 비우는 것이 좋았던 여행이 더 채우고 건져야 하는 일상을 닮아간다.
세상에서 가장 비어있다는 사막...아니 비어있다고 상상하는 그곳으로 엉뚱한 것들을 채우기 위해 떠난다. 욕망, 과시, 거짓 혹은 기만 같은 것들이 아니었다고 외치고 싶지만 아니라는 증명할 물증이 없다. 타클라마칸 여행기는 부끄러운 욕망에 대한 반성 혹은 고백이 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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