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레네 산맥
피레네의 사잇길을 따라 몇 개의 능선을 넘으면 스페인과 프랑스의 국경을 만난다. 유럽이 EU로 통합된 이후 국경선의 의미는 많이 퇴색되었지만 그래도 걸어서 국경을 넘는다는 것은 차를 타거나 비행기를 이용해 다른 나라로 가는 것과는 여러가지로 느낌이 다르다. 국경이라고 해봐야 간단한 표지석 하나 뿐이지만 사뭇 프랑스와 스페인의 공기가 무언가 달라야 할 것 같은 억측도 스스로 꾸며낸다. 사람들을 만날 때 '봉쥬르'에서 '올라(안녕이란 의미의 스페인 인삿말)'로 바뀐 인삿말이 가장 먼저 와닿는 변화의 조짐이다. 이후로 지겹도록 '올라'를 입에 달고 다녀야 했다. '올라'말고 까미노에서 가장 많이 듣고 하는 말이 또 하나 있다. '부엔 까미노'라는 말이다. 이 말의 뜻은 곧이 곧대로 해석한나면 '좋은 길'정도 이겠지만 보통 산티아고로 가는 길의 행운과 안녕, 그리고 축복을 기원하는 의미로 쓰인다.
새벽 길을 떠나는 순례자들. 론세스바예즈에서 산티아고까지 790km가 남았다는 표지판이 보인다.
프렌치 까미노에서 스페인 첫 마을인 론세스바예즈는 피레네의 산중턱 해발 950m에 위치한다. 오래된 성당과 순례자를 맞이하는 레스토랑 그리고 집들이 겨우 몇 채 보일정도로 작은 마을이지만 풍광은 매우 아름다운 편이다. 피레네를 넘어섰다는 기쁨 때문일까? 내려오는 길에 무리를 해 속도를 냈더니 론세스바예즈에 도착한 후로 무릎에 조금씩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첫 날이기도 하거니와 27km의 산 길은 평소 걷는 거리와 비교할 바가 아니다. 결코 수월치 않은 통증과 피로가 몸 구석구석에 찾아왔다. 의례 겪어야하는 노정의 고단함 같은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아름다운 마을을 사진으로 남긴 것이 없어 매우 아쉽다.
론세스바예즈에는 한 하나의 알베르게가 있다. 성당에서 운영을 하고 그곳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도 거의 자원 봉사자들이다. 이후 많은 알베르게에서 머물렀지만 지방 정부와 성당에서 관리하는 알베르게에는 많은 수의 자원봉사자들이 일을 한다. 한국인도 몇 명이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만날 기회는 없었다. 론세스바예즈의 알베르게는 피레네를 넘은 순례자들을 모두 감당하기엔 다소 침대의 수가 모자란다. 그래서 늦게 도착한 이들은 다음 마을까지 약 3km를 더 걸어가거나 텐트가 있는 이들은 캠핑을 한다. 단 하나 부족한 점이 있다면 부엌이 마련되어 있지 않고 작은 가게마저 3km 떨어진 마을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허기를 메우기 위해서는 이곳에 위치한 레스토랑 신세를 져야한다. 비록 순례자를 위한 특별 메뉴라고는 하지만 9유로가 넘으니 가난한 여행자에겐 다소 부담이 되는 액수다.
바깥에서 노숙을 하는 순례자들. 여름에는 매트 한장을 깔고 노숙을 하는 순례자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땀에 젖은 옷과 양말을 빨고 샤워를 한 뒤에도 해가 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매일 저녁 8시에는 순례자들을 위한 특별 미사가 성당에서 열린다. 뒤늦게 도착한 벨기에 여인 마리벨과 그의 남자친구 빌리는 성당 인근에 텐트를 쳤다. 론세스바예즈에서 새 길동무 둘을 더 만난다. 일본에서 온 여대생 나카네 에리카(23세)와 독일에서 온 맨프레드(56세)가 그들이다. 두사람 모두 혼자 이 길을 걷고 초행길이다. 국적이 다른 네 사람이 함께 저녁을 먹고 와인과 맥주로 만남을 축하했다. 물론 그들외에도 수많은 이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었고 그들 중에는 한국에서 온 순례자들도 여럿이 있었다.
새로운 길동무 나카네 에리카와 맨프레드
성당 숙소의 불은 어김없이 6시에 켜졌다. 성마른 순례자들 몇은 이미 일어나 화장실을 선점했다. 이불속에서 빠져나오기 딱 싫을 만큼 쌀쌀한 날씨다. 두번째 순례길의 목적지는 론세스바예스에서는 21km 떨어진 Zubiri 또는 좀더 걸을 사람은 5km떨어진 Larrasoana에 머물던지 그것은 개인의 자유다. 자신이 감당할 만큼 걸어가고 그것도 힘들다면 버스를 타고 가던지 누가 탓을 하거나 관심갖는 사람들도 없다. 오로지 자신이 결정할 문제다.
아침을 주문하는 스티브...스페인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스페인 아내를 둔 그는 능숙하게 스페인어를 구사한다.
숙소에서 한 시간 쯤 걸어 도착한 첫번째 마을에서 갓 구운 크로와상과 커피에 따뜻한 우유를 듬뿍 넣은 카페 콘 레체로 아침을 대신한다. 해발 950미터인 론세스바예즈에서 작은 산 두 개를 넘어 차츰 내려오면 해발 500미터에 위치한 주브리스에 도착할 수 있다. 전날 길에 비해 완만하고 표고차도 심하지 않은 편이다. 전날 내리막 길을 급하게 내려왔기 때문일까? 오른쪽 무릎의 조짐이 심상치 않다. 평지와 오르막길을 걷는데 문제는 없어도 내리막 길을 걸을 때 무릎이 욱신욱신 쑤시기 시작했다. 안 좋은 징조다. 결국 편법을 사용해 비교적 평탄한 내리막은 뒤로 걸어 내려간다. 무릎에 더 이상 무리를 준다면 남은 도보 일정을 감당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좋지않는 상상마저 든다.
넷으로 불어난 일행. 배낭에 매단 하얀 조개껍질이 인상적이다.
선선한 아침 기운이 사라지자 오전 10시 무렵부터 태양이 강렬한 기세로 쏟아졌다. 전 날 피레네의 운무 때문에 태양의 기세를 경험하지 못했던 이들은 쏟아지는 햇살에 걸음걸이가 한결 힘겨워 보인다. 가장 나이가 많은 연장자인 매니-맨프레드-는 독일에서 해군에서 복무한 경험이 있는 퇴역 군인이다. 북유럽쪽의 사람들처럼 그도 키가 180센티가 넘고 덩치가 좋은 편이다. 미국 시애틀이 고향이지만 스페인 아내를 만나 마드리드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스티브, 일본 도쿄에서 학교를 다니는 대학생 에리코, 그리고 나, 이렇게 국적이 다른 네 사람의 본격적인 동행이 시작되었다. 스티브를 빼고는 나머지 셋은 모두 산티아고가 목적지다. 누가 먼저 떠날지 아니면 뒤쳐질지 모르지만 함께 걷는 동안은 서로를 배려하고 염려해야 한다. 아마 가장 나이가 어린 에리코가 동행의 덕을 보기 시작헸다. 모자를 잃어버려 내가 여분의 모자를 주었고 힘이 좋은 매니가 그녀의 배낭을 수시로 들어주었으며 스티브가 쉬운 영어로 영어가 서툰 그녀의 말벗이 되어 주었다.
차 위에 누워 순례자들을 구경하는 고양이
마치 그렇게 만들려고 해도 어려울 텐데 4사람 모두 국적이 다르고 사용하는 말이 달랐으며 연령대도 다르다. 태어난 환경과 관습, 생각, 좋아하는 음식 등 공통점을 찾기 힘들기 때문에 오히려 가장 좋은 동반자가 될 수도 있다. 스페인어를 잘하는 스티브가 길과 일행을 이끌어나갔다. 매니는 나이와 덩치만큼 포용력이 크고 타인을 따뜻하게 배려하는 마음을 가졌다. 막내인 에리카는 수줍은 듯하면서도 어떤 때는 매우 귀엽고 엉뚱한 짓을 해 일행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길가 한쪽에 마련된 일본인 순례자의 묘. 이곳에서 잠들었는지 아니면 고인의 유지인지는 모르지만 순례자들이 가는 길목에
묘가 마련되어 있다. 순례길에서 이런 묘를 종종 만날 수 있다. 순례자들이 그의 명복을 빌며 솔방울을 하나씩 얹어놓았다.
간혹 깊은 숲이 나타나고 나무에는 이끼류가 가득하다.
둘쨋날 목적지인 주브리스
토요일이었던 탓에 주브리스의 모든 상점은 문을 닫은 상태였다. 스티브와 매디, 에리코는 식장으로 저녁을 먹으러 간 사이 다행히 문을 연 가게를 찾아내 빵과 살치촌 소세지로 저녁을 대신했다. 매일 저녁을 레스토랑에서 먹을 순 없었다. 그런데 저녁을 먹고 온 그들의 손에 생각치도 않았던 빵이 들려있었다. 스페인 가게들은 대부분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에는 문을 닫기에 혹시 내가 음식을 사지못해 굶주리고? 있을까 염려한 때문이다. 고작 하루를 같이 걸었지만 일종의 동료애라고 할까 그런 감정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리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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