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우사 말고는 아무도 자기 인생을 철저하게 살지는 못해"
Nobody ever lives their life all the way up except bull fitghters
<태양은 또 다시 떠오른다 The sun also rises> 중
- 어네스트 헤밍웨이
론세스바예스에서 주비리로 가다보면 부르케트라는 작은 마을과 만난다. 스페인 여행의 가장 큰 즐거움은 동키호테의 여정을 따라 세르반테스를 만날 수 있는 것이 하나이고 또 다른 하나는 바로 헤밍웨이다. 스페인에서 헤밍웨이의 흔적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의 작품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가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쓰여진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고 헤밍웨이 자신이 종군 기자로 전쟁에 참여하며 혹은 스페인에서 머물며 남긴 일화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의 처녀작인 <태양은 또 다시 떠오른다> 역시 반 정도의 분량이 팜플로냐와 인근 지역으로 배경으로 쓰여졌다. 스페인 북부의 작은 마을 부르케트 또한 소설 중 주인공들이 이곳으로 송어낚시를 오는 장면의 배경이 되었다.
그의 작품 <노인과 바다>에서 보여지듯 낚시에 대한 광적인 열정에 버금갈 정도로 투우에 대한 집착 또한 대단하다. 어쩌면 그는 투우 때문에 스페인에 그토록 오래 머물렀을런지도 모른다. <태양은 또 다시 떠오른다>에서도 주인공의 입을 통해 그의 투우에 대한 생각을 잠시 엿볼 수 있다.
스페인 세비야
"투우사 말고는 아무도 자기 인생을 철저하게 살지는 못해"
Nobody ever lives their life all the way up except bull fitghters
투우를 만약 볼 기회가 있다면 이 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세비야에서 투우를 처음 보았을 때 엄청난 전율을 느꼈다. 하루 10마리의 소가 투우사의 칼에 의해 처참하게 피를 흘리며 쓰러져나가는 과정도 너무나 잔혹했지만 단 1초도 비틈도 없이 자신의 온 목숨을 내걸고 소와 대결하는 투우사의 처절함, 그리고 삶의 치열함에 그만 넋을 잃은 것이다. 그 어떤 삶이 저토록 온 생명을 내걸고 맞설 수 있을 것인가? 투우사에게 바늘귀 만큼의 방심과 오차는 바로 죽음으로 이어진다. 헤밍웨이는 아마 처절하고 어쩌면 집요할 정도로 죽음과 맞서는 투우사의 운명을 이렇게 표현했을 지도 모른다. 그건 어쩌면 삶의 진정한 모습일지도 모른다.
투우 중 부상을 입고 실려가는 투우사 / 세비야
스페인의 여름, 새벽 길은 처녀처럼 순수하지만 조금은 쌀쌀맞고 싸늘하기까지 하다. 한 낮은 4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에 시달리지만 동트기 전 새벽은 바람이 불때면 소름이 돋을 정도의 한기가 찾아온다. 바람막이 윗옷를 준비해가지 않은 탓에 추위를 이기는 길은 오로지 빨리 걷는 방법 밖에는 없다. 걷는다는 것은 어쩌면 치열한 자신과의 대결일지도 모른다. 나태와 편함의 유혹을 이겨내야 하고 고독과 무의미함과 맨몸으로 싸워야 한다.
(팜플로나 가는 길을 보고 있는 에리카, 스티브와 매니)
주비리에서 팜플로나까지는 약 20km 남짓한 거리다. 팜플로나 버스 터미널에서 스티브를 만나 프랑스 생장까지 차를 타고 왔으니 꼬박 사흘을 걸어 차로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는 셈이다.
길은 비교적 평탄한 편이다. 얕은 구릉을 쉼없이 넘어야 하지만 이틀전 피레네 산맥을 넘을 때를 비교한다며 무척 쉬운 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피레네 산맥 내리막을 걸을 때 너무 급하게 내려왔던 탓인지 오른쪽 무릎에 통증이 계속 찾아왔다. 물론 나만 느끼는 고통은 아니다. 까미노를 걷는 사람들 모두 발에 한 두개 정도의 물집은 누구나 잡힐 시기이다. 아마 걷기 시작한지 처음 일주일이 육체적으로 제일 견디기 힘든 시기일 것이다.
나를 포함한 네 명의 일행은 일단 이 날의 목적지인 팜플로나에 도착한 후 반나절 정도의 휴식을 갖기로 했다. 비록 사흘이었지만 익숙하지 않았던 도보 여행에 피로가 많이 쌓인 탓이다.
서로 격려해주고 위로했던 대화도 조금씩 줄어들었다. 매니도 에리카의 배낭을 더 이상 들어주지 않았다. 에리카 자신이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녀의 배낭은 온전히 자신이 짊어져야 할 무게였고 그 짐은 어느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이다.
마을 입구 어느 집 창가의 화분
너무나 게을러 이제야 까미노 네번째 이야기를 올립니다.
한국에 돌아온 후 해야할 일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러나 ....
여행은 오히려 돌아온 후의 시간이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리 오랜 시간은 아니었지만 깨닫게 됩니다.
여행 후 기록을 정리하고 글로 남기는 일은 지나온 여정을 더욱
가치있고 빛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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