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 산티아고

<까미노 두번째 이야기>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으로

하피즈 2009. 9. 1.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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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레네 산맥을 넘는 순레자

 

아침 6시 아직 푸름이 가시지 않은 새벽이다. 생장의 새벽은 고요하다. 푸른 천 같은 하늘아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고 순례자를 위한 빵집들이 생장의 아침을 깨운다. 생장은 마치 순례자를 위해 만들어진 작은 도시처럼 보인다. 좁은 골목과 적당히 나긋나긋한 프랑스어 그리고 도시를 둘러싼 숲들...순례를 출발하기에 생장은 타고난 조건을 갖추었다. 숲에 둘러쌓인 고요함, 새벽의 냉기, 피레네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 낮을 달구는 눈부신 태양, 스페인이나 프랑스의 평지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환경이다.

 

 

프랑스 생장 ST. Jacques의 아침. 카페 콘 레체와 크로와상으로  대개 아침밥을 떼운다.

야콥(야곱)과 프랑스 지명 Jacques는 동일한 어휘다. 아마 생장에서 야콥의 묘로 향하는 뜻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혹은 마을 지명의 유래가 야곱에 성인의 자취에서 시작되었으리라

짐작케 한다.

 

 

어둠이 채 물러가기 전 새벽 거리를 팜플로나에서 택시를 동승했던 동행했던 스티브와 함께 나왔다. 알베르게에서 아직 혼곤한 새벽잠에 빠진 벨기에에서 온 마리벨과 영국에서 온 빌리를 남겨둔 채...알베르게(순례자 숙소)는 밤 10시에 불이 꺼지고 늦어도 다음날 8시 이전에는 길을 떠나야 한다. 이는 모든 알베르게의 공통점이다. 늦잠을 자는 마리벨과 빌리도 2시간 내에는 우리 뒤를 따를 것이다.

 

 

 

 

 

페레그리노 크리덴셜-순례자 증명서-은 자신이 온 길을 기록하는 일종의 기록인 동시에 숙소에서는 그가 순례자임을 증명하는 표식이기도하다. 모든 순례자는 자신이 시작하는 순례의 길-어디서 시작하던 관계없다-순례자 증명서를 만든다. 그리고 하얀 조가비 껍질은 순례자를 상징하는  징표다.

 

 

피레네로 들어서는  길 초입

 

오늘 걸어야 할 길은 27km 남짓. 해발 1,400m의 피레네 산맥 중턱...

산티아고 가는 길 중 가장 해발이 높은 지역 중 한 곳을 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길 한가운데 웬만한 집 울타리보다 더 허술한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이 있다. 사실 울타리는 커녕 표지석 하나만 덜렁 두 나라의 경계를 구분한다. 피레네를 걸어서 넘는 길은 두 가지다. 하나는 산 둘레를 완만하게 에둘러가는 에움길이고 또 다른 하나는 나폴레옹 길이라 불리는 길이다. 비교적 길이 가파른 후자의 길은 풍광이 빼어나기에 대개 순례자들은 이 길을 통해 피레네를 넘어 목적지인 스페인 론세스바예즈까지 걸어간다.

 

 

 나폴레옹이 이 길을 통해 피레네를 넘어 스페인으로 진군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마을 벗어나자 곧 경사길이 시작된다. 산티아고 프랑스 길은 대부분 이곳에서 시작된다.

프랑스 파리를 거쳐 생장으로 온 이들, 스페인 팜플로나를 거쳐 이곳으로 온 이들...모두 다양한 국적과 이유를 가졌지만 목적은 단 하나...산티아고를 향해 걷는다는 것이다. 적절한 침묵이 스티브와 나와의 거리를 유지했다. 길을 걸을 때 만큼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홀로 인내해야 할 숙제이자 기쁨이다. 

 

 

 

 

순례는 누가 왜 무슨 목적으로 떠나는 것일까? 순례를 통해 얻는 것은 무엇일까? 그들은 순례를 통해 과연 그것을 얻을 수 있을까? 무엇인지 그것이 모르지만 순례를 통해서 무언가 얻을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감도 있을 수 있다. 어쩌면 육체적 피로에 매몰되어 그들이 진정 얻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 망각할 수 있다. 구태여 피상적이고 정신적인 것을 얻으려 한다면 오히려 목적을 잊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되리라... 육체적 고난은 가끔 자신이 왜 이같은 고난에 빠졌는지 필요 이상으로 고민하면 자기 연민에 빠질 수도 있다. 고통에 극한에 달하면 어쩌면 모든 잡념이 불타고 오롯이 남은 순수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운이 좋아 신의 음성을 들을 수도 있지 않을까?

 

 

 

 

피레네는 서툰 솜씨로 단장한 어린 신부의 얼굴처럼 아름다웠다. 이른 아침 땔감을 태우는 향긋한 냄새가 소들이 풀을 뜯고 있는 목장 사이로 부는 바람에 실려 왔다. 아마도 어느 집에선가 아침을 짓고 있을 것이다. 스티브와 나는 장각 타는 연기가 흐르는 길 사이를 걸어갔다. 스티브는 생장에서 출발해 약 300km 지점인 부르고스까지 걷는다. 그는 그곳에서 스페인에서 만난 아내와 세살박이 아들 그리고 세례를 기다리는 태어난 지 두 달된 딸을 만날 것이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2주 뿐... 이번에 산티아고까지 걷지 못하지만 아마 내년이나 늦어도 10년 내에 걷기에 익숙해진 아들과 함께 이 길을 걸어갈 것이다. 그 때는 아마 그의 곁에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어린 딸이 함께 걷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첫번째 쉼터에서 걸음을 멈춘 스티브

 

마을 벗어나면 목책이 길게 늘어선 초원이 나오고 양떼들과 소들이 풀밭에서 풀을 뜯는다. 아침이 되었지만 안개가 채 가시지 않았다. 포장도로와 비포장도로가 번갈아 나오며 대체적으로 숲보다는 초원과 대지가 주를 이룬다. 평균 6~7시간이면 주파할 수 있는 거리다. 오르막 경사도 비교적 완만하다. 히말라야처럼 코가 닿을 듯한 급경사는 피레네에서 찾기 힘들다.

 

 

 

멀리 나처럼 먼 동쪽에서 온 이들도 있고 가깝게는 스페인이나 프랑스에서 온 이들도 있다. 주로 휴가철을 맞은 유럽인들이 까미노를 찾는다. 급작스럽게 탄성이 터질 만큼 화려한 장관이 펼쳐지는 것도 울창한 산림이 맞이하는 것도 아니지만 길은 포근하고 완만한 언덕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왜 이곳을 왔는지 자신에게 묻는다. 불과 3일전에 나는 이곳을 걷기로 결심했고 역시 다른 여행처럼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다. 새로 만들어 온 현금카드가 빈 계좌로 연결되어 인출이 불가능했다. 모로코로 떠나기엔 여름이 너무 뜨거웠고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에 머물기에는 유럽의 물가를 견디기 힘들었다. 사실 한국에서 이곳을 오려면 많은 결심과 준비를 하고 오지만 나는 어쩌면 너무나 하잘 것 없는 이유와 즉흥적인 결정으로 까미노를 찾은 것이다. 남아있는 돈 범위내에서 그저 한 달간 무작정 걷고 싶어서... 아마 현금카드 때문에 까미노를 찾은 이는 내가 유일할 것이다. 

 

 

 

 

태양이 머리꼭지를 비출 즈음 안개와 구름인지 분간하기 힘든 농무가 걷혔다. 산들이 한결 선명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풀향기가 조금 더 짙어졌고 초목의 키는 좀 더 작아졌다. 줄곧 노란 화살표가 순례자들을 안내한다. 굳이 표지판이 없어도 앞서가는 사람만 따라가면 길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순례자들의 행렬은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단 한 가지만 생각하기로 한다. 오로지 걷는 것...언제 도착할지 또 얼마나 걸어야 할지, 무엇을 위해 걷는지 묻지 않기로 했다. 걷는 것은 최대한 단순하고 미련해야 즐거울 수 있다.

 

 

 

 

아니면 걷는 것 자체에 대한 관심을 지우던가...걷는 것에 진정한 자유는 걷는 순간은 바로 지금 현재를 자신을 둘러 싼 이름 모를 꽃과 나무, 그리고 길에 관심을 갖고 만끽하는 것이다.  

 

 

 

 

 말똥위에 핀 민들레

 

 

 말 가족

 

 드디어 피레네를 넘어 스페인으로 접어들었다.

목적지 론세스바예즈가 3.5Km 남았다는 표지판...

 

 

오르막 길이 수월해 너무 만만히 생각했던 것일까? 스페인으로 내려가는 길에 생각치도 못한 복병을 만나게 되는데...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