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 산티아고

<까미노 열네번째 이야기>만하린Manjarin의 기사 토마스

하피즈 2010. 4. 11. 15:52

 

 

“사람들이 신을 포기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들이 얼마나 약하고 모자란 존재인지 알기 때문이다.”
                                                                                     - <수도원의 역사> 최형걸 

 

 

브루고스 대성당

 

높고 곧은 아치들, 길고 움푹한 궁륭穹窿, 깊은 그 곳에서 사방으로 뻗어나간 돌기둥들, 돌이 만든 그늘에서 맴도는 짙고 푸른 어둠, 스테인글라스 창을 통해 흘러내리는 뿌연 햇살... 하늘을 향해 치솟은 선과 무수한 직선을 떠받고 있는 육중한 몸체가 고딕이다. 고딕은 신성과 권위에 대한 절대적 충성을 요구한다. 

 

 

 

 

스페인 인들에게 종교는 추상도 육체가 없는 교리도 아니다.  신을 향한 놀라운 열정, 그리고 무한한 복종과 이교도에 대한 철저한 배척과 잔인한 응징으로 그들은 자신의 신앙의 역사를 채워왔다. 성녀 테레사의 눈물,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다섯 군데 상처, 거기서 내뿜는 붉은 선혈을 스페인 인들은 사랑한다.

 

 

 

 

 

 

성 야고보, 즉 산티아고는 스페인인들에게 누구일까? 패배한 무어인을 짓밟고 있는 성화 속의 산티아고 이미지는 스페인인들이 천 년 가까이 그들의 종교적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 온 방식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천 년간 이 땅에서 교회는 정의이며 이교도와 싸워서 그들을 몰아내는 십자군이었다. 무어인과의 싸움에서 산티아고가 나타나 승리를 이끌었다는 이야기는 스페인 신화의 한 부분이 된지 오래다.

 

 

 

산티아고 성당 내부

 

 

9세기 무렵 신의 섭리로 산티아고의 유해가 콤포스텔라에서 발견되었다는 믿음은 많은 이들이 그렇게 믿고 있어 때로는 객관적인 사실보다 중요할 수도 있다. 무려 천 년 동안 그 믿음은 변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더욱 견고해 졌다. 산티아고로 가는 길을 기독교도가 아닌 자들도 걸으며 길의 외연을 넓힌다. 겉으로 보기에 산티아고 가는 길은 배타와 고립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

 

 

 

 

 

 

아스트로가Astroga에서 폰세바돈Foncebadon까지 줄곧 오르막이 이어진다. 키 작은 잡목들 사이로 폰세바돈이 보이기 시작한다. 까미노의 많은 마을들이 폰세바돈처럼 순례의 발길 덕분에 되살아 났다.  알베르게 세 곳과 몇 가구 안되는 민가가 몇 채가 어깨를 맞댄 작은 마을이다.

 

늑장을 부린 때문일까? 폰세바돈에 도착한 3시. 먼저 도착한 순례자들이 알베르게의 침대를 모두 차지한 후다. 레온 이후 순례자들의 수가 부쩍 늘어난 탓도 있다. 잘 곳을 마련하지 못한 순례자들이 아무 대책 없이 알베르게 앞에 눕거나 쓰러져있다. 다음 알베르게가 있는 만하린까지는 산길을 한 시간 더 걸어야한다. 그러나 불과 10여 개의 침대를 가진 만하린의 알베르게에 빈 침대가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만약 만하린에서도 잘 곳을 못 찾는다면 엘 아세보까지 8km를 더 걸어야 한다. 산길을 걷느라 모두 충분히 지쳐 있었기에 선뜻 새 걸음을 떼기 힘든 표정이다. 까미노를 걸은 이후 처음 겪는 상황이기에 당황스럽긴 하지만 더 걷는 방법 외에 도리가 없다. .

 

 

 

 

 

 

폰세바돈에서 만하린로 가는 길이 어려운 또 한 가지 이유는 막바지 고개를 넘어하기 때문이다. 그 중간에는 커다란 철 십자가Cruz de Ferro가 보인다. 고난의 길의 정점에서 십자가와 마주하라는 뜻일까? 이 철 십자가가 서있는 언덕은 산티아고로 가는 길 중 가장 유명한 풍경 중 하나다. 거대한 십자가와 그 아래 사람 키보다 높게 쌓여있는 돌무덤이 순례자의 눈길을 끈다. 언제부터인가 순례자들은 자신이 살던 마을에서 돌을 가져와 십자가 아래 쌓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국 시골 마을 입구의 당나무도 저런 모습이었다. 마을의 수호신이기도 하고 여행자의 안녕을 기원하기도 하며 때로는 복을 빌거나 속죄를 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철십자가에 아래 깔린 수많은 기복과 속죄의 돌 틈에서 나는 어쩔 수 없는 속됨을 본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빌며 무엇을 고백할 것인가? 결국 그것이 나를 향한 것이라면 굳이 돌조각을 남기지 않아도 되리라. 나는 티끌만한 돌 조각도 그 곳에 남기지 않기로 한다.

 

 

 

만하린 알베르게

 

 

철 십자가 고개를 넘자 사람 하나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오솔길이 이어진다. 어깨는 무겁고 다리는 후들댄다. 만하린에 잠자리가 없다면 처마 아래라도 신세를 져야할 것이다.   

 

돌로 얼기설기 울을 친 입구를 따라 들어가면 십자군 기사단의 깃발들이 순례자를 맞이한다. 마치 중세에서 방금 걸어 나온듯한 기사단 복장을 한 중년 사내가 순례자들을 맞이한다. 사내의 흰색 셔츠 가슴에는 커다란 붉은 십자가가 그려져 있다. 그 붉은 십자가는 성전聖戰, 즉 십자군 전쟁에 나선 산티아고 기사단의 상징이다. 


“오늘 이곳에서 묵을 수 있나요?”

“미안해서 어쩌지. 여기도 방이 찼는데...”

“폰세바돈에도 침대가 없어 여기까지 걸어왔는데...”


한번 일이 꼬이기 시작하면 꼬리를 물듯 다음 일들도 엉켜버리는 일이 수없이 많다. 평소보다 많이 걸었고 늦게 도착했기 때문에 알베르게에는 침대가 없었고 당연히 더 늦게 도착한 다음 알베르게에도 잠자리가 부족하리라는 예상을 충분히 할 수 있다. 문제는 그런 줄 알면서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만하린이 가득 찼다면 8km나 더 떨어진 엘 아세보라고 해서 상황이 더 좋으리란 법은 없다. 늙은 십자군은 낙담한 동양 순례자의 어깨를 툭툭 치며 사람좋게 웃는다.


“걱정 말게. 친구...자네가 묵을 곳쯤은 세상 어디에나 있으니까...”

 

 

토마스

 

 

 

십자군은 나를 오라고 손짓하며 알베르게 안으로 인도한다. 돌쩌귀가 느슨해 깊은 신음소리를 뱉어내는 문 안쪽에는 가파른 계단이 2층 어둠을 향해 뻗어있다. 계단을 밟을 때마다 낡고 묵은 먼지 냄새가 피어오른다. 계단 위쪽 어둠속에 묻혔던 공간은 다락이다. 마룻대에서 뻗은 서까래 아래로 어른 키 절반도 채 못 되는 1층과 지붕 사이의 공간이다. 창 하나를 통해 겨우 빛이 들어오고 있지만 겨우 어둠을 면할 정도다. 한낮에 달궈진 용마루의 열기로 숨조차 쉬기 힘든 다락방 안에는 벌써 예닐곱 순례자들이 전장에서 지친 몰골로 쓰러져 있었다. 십자군은 그 중 빈 매트리스를 하나 손짓한다. 세상이 오늘 밤 내 몫으로 준 공간이다. 십자군의 이름은 토마스. 만하린 알베르게의 주인이며 이 길의 수호자다.  

 

알베르게 안은 견실한 신앙과 검소한 생활을 보여주는 것들로 가득하다. 중세의 수도원처럼 안은 어둡고 좁았다. 전기는 물론 마실 물조차 변변치 않다. 땀에 젖은 얼굴을 씻는 호사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거실을 겸한 부엌에는 오늘 도착한 순례자를 위한 콩 스튜가 끓고 있다. 해가 지면 잠들어야 하고 해가 뜨면 또 걸어야 한다. 단순한 삶이지만 거기에는 힘이 있다. 그 힘은 오로지 바짝 마른 욕망의 우물에서만 건질 수 있다.

 

 

 

만하린 알베르게

 

나는 그 곳에서 입 속의 혀와 같이 생활을 꾸리는 의지와 세상과 맞서는 고집을 엿본다. 또 다른 돈키호테의 얼굴이다. 그 안에 심오하고 비극적인 신념이 끝없이 불타오른다. 스페인의 내면 깊숙한 영혼이 말하는 것... 가장 비천한 거지에서 세르반테스에 이르기까지...인생은 결국 아무 것도 아니며 꿈이란 사실이다.

 

 

 

“꿈을 꿉시다. 오 나의 영혼이여, 꿈을 꿉시다.”

 

 

 

지붕 아래 매트가 깔린 순례자 잠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