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 산티아고

<까미노 열두번째 이야기>모든 이들을 위한 축배!

하피즈 2010. 4. 7. 09:30

 

 

 

 

 

앞으로!  단 하나의 희망도 없이, 심지어 그토록
갈망하던 것을 어느 날 보게 되더라도
계속 싸워라, 멋지고 당당한 기사여.


            -<돈키호테에게 바치는 시> 니코스 카잔차키스

 

 

길은 프랑스 남부 생 장 피에드포르에서 시작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 나바라 령領 바스크 지방을 거쳐 부르고스에 이른다. 프랑스 파리나 브르타뉴에서 출발한 이들에게 순례는 길의 절반을 넘게 내주었고 나와 같은 이들에겐 이제야 조금 틈을 열어준 것이다.

 

 

 

 

서로의 길을 향해 떠나기 좋은 시간이다. 우리는 길에서 만나고 길에서 헤어진다. 답은 나에게 있다는 것을 알면서 나는 항상 너를 보고 묻는다. 어디로 가는 거니? 그곳에는 왜 가는 거니? 사람들은 그 길에서 신을 만났다고도 하고 믿음에 확신을 가졌다고도 하며 행복을 느꼈다고도 하고 건강을 되찾았다고도 말한다. 네가 본 것은 무엇인가? 나는 아무 것도 보지 않고 아무 것도 들으려 하지 않아. 그저 내 속에 고이고 잠기고 싶을 뿐이야.

 


홀로 푸른 여명을 맞이하거나 고요한 노을에 잠길 때 순례는 맨 얼굴을 드러낸다. 햇살이 여려 부드럽고 살은 그것들을 온순히 받아들여 몸은 투명하다. 몸은 길에서 부서지고 길에서 다시 만들어진다. 오래된 피와 살이 흩어지고 흙과 햇살이 만든 몸이 태어난다. 길은 순례자의 몸이며 집이고 마음이며 세상이다.


 

 

세상을 등지고 나의 뒤편으로 걸어간다. 타인에게 말하기보다 나를 향한 고백을 앞세워야 할 때다. 떠날 때 나는 빈손이며 빈 마음이었기에 깃털처럼 가볍고 바람처럼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오로지 내 안에 일어선 깃발들이 나부끼며 흔들릴 뿐이다. 순례는 바람의 편력遍歷이다. 

 

 

 

 


낯설고 두려웠던 이 길에서 힘과 위안이 되어 준 벗들과 부르고스에서 이별을 고한다. 헤어진다는 말은 어색하다. 우리는 길 위에서 만났고 또한 길에서 이별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부르고스에서 길 위의 모든 이들을 위해 축배를 든다. 벗들을 위하여 고단한 여정을 축복하기 위해서...

 

부엔 비아헤 아스타 산티아고! (산티아고까지 여행 잘하시오!)

 

 

 

버스를 타고 메세타를 가로 지른다. 프랑스 길에서 가장 황량하고 단조롭다는 메세타. 끝도 없는 밀밭과 수평선이 빠르게 차창 뒤로 물러난다. 버스로 달리면 세 시간 남짓한 거리를 일주일에 걸쳐 걷는다. 텅 빈 대지를 침묵이 채우고 순례자의 걸음은 그 침묵 속에 묻힌다.

 

 

부르고스에서 레온에 이르는 카스티야는 곧 스페인을 의미한다. 카스티야의 역사는 스페인의 역사이며 ‘카스티야적이다’ 라는 말은 곧 ‘스페인적이다’라는 말로 통한다. 16~7세기 스페인이 절대 강자로 군림하던 시절 카스티야는 그 중심에 서있었고 스페인의 몰락 또한 카스티야에서 비롯된다. 현재 쓰는 스페인 말 또한 카스티야어다. 카스티야의 전설적 영웅인 로드리고 디아스 데 비바르, 바로 ‘엘시드’가 카스티야에서 태어났고 이곳을 무대로 중세의 영웅담이 펼쳐진다. 무엇보다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스페인 문학의 정수 <돈키호테>가 카스티야 어로 쓰였으며 등장인물들의 활동무대 역시 카스티야였다. 나는 그 카스티야 벌판을 가로질러 레온으로 가고 있다. 

 

 

 

산 이시도루스 대성당 앞 광장은 순례자의 발길로 가득하다. 레온은 카스티야의 심장이다. 팜플로나, 부르고스, 아스트로가, 산티아고와 같이 큰 성당이 있으며 순례자들의 지팡이 소리가 도시 어디에서나 들려온다. 시간이 부족하거나 걷기에 자신이 없는 사람들은 레온에서 순례의 첫 걸음을 떼기도 한다.

 

 

 

레온산맥을 넘고 갈리시아 땅으로 지나면 산티아고다. 길의 아름다움과 순수함, 거기서 비롯되는 혹독한 시련 앞에 몸을 누이고 영혼을 바친다. 투명한 마음이 고인 남루한 육신의 우물에서 물을 긷는다. 새벽별은 그 위로 반짝이고 나는 길을 처음 나선 사람처럼 낯설게 아침을 맞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