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부즌 해변의 아침 풍경
숨부즌의 아침은 피로그-세네갈의 작은 고깃배-를 바다에 내리는 함성에서 시작된다. 동쪽 바다가 붉게 물들며 밝아오면 어부들은 배 밑창에 통나무를 끼우고 바다에 나갈 채비를 서두른다. 적으면 둘 많으면 너더댓이 짝을 이뤄 한 배에 오른다. 바다는 아직은 차가워 고기잡이에 좀 이른 철이다. 숨부즌의 어부 이브와 사촌형 이사는 바다가 어지간히 거칠지만 않다면 매일 피로그를 바다에 띄운다. 구름은 낮게 깔렸지만 바람은 순하다. 어구와 미끼를 배에 싣고 바다를 향해 힘차게 배를 민다. 뼈가 굵어질 무렵부터 배를 타기 시작했으니 벌써 이 일도 20년을 훌쩍 남겼다. 다섯 아이를 키우고 작지만 피로그도 한 척 마련했으니 어부로서 그다지 나쁜 편은 아니다.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냐는 물음에 이브는 하늘을 향해 손바닥을 펼쳐보인다.
「알라신의 뜻이지요.」
바다로 나가는 고깃배
물결은 신의 축복처럼 고요하다. 구름 사이로 쏟아진 햇살이 물살을 따라 잘게 부서지고 또 떠밀려 먼 바다로 흩어진다. 숨부즌에서 남서쪽으로 두 시간 떨어진 난바다. 이브가 늘 닻을 내리는 곳은 서너 군데다. 사촌형 이사가 배를 모는 동안 이브는 미끼로 쓸 정어리를 손가락 한마디 정도로 토막 낸다. 아가미와 내장은 따로 모아 밑밥으로 써야 한다.
미끼를 준비하는 이브의 사촌형 이사
아침 10시. 구름이 머물던 자리에 하늘의 퍼런 속살이 드러난다. 이사가 엔진을 멈추고 이브는 닻을 내린다. 손가락에 테이프를 두텁게 감고 낚시 줄을 푼다. 이브는 정어리의 내장과 머리를 절구에 넣고 빻은 후 바다에 뿌린다. 낚시 추가 바다 바닥에 닿으면 낚싯줄을 감았다 풀기를 반복한다. 손가락 끝에 느껴지는 미세한 힘의 변화를 느낄 때 줄을 채야한다. 생각보다 빠른 입질이 찾아왔다.
물뱀을 낚아올린 이브
제법 묵직한 저항이 이브의 손끝에 전달된다. 검고 주둥이가 뾰족한 물뱀이 낚시 끝에 매달려 나온다. 놈은 성격이 사납고 거칠기 때문에 몽둥이로 머리를 때려 기절시킨 후에 배로 들여야 한다. 자칫하면 손가락 한 마디쯤은 단번에 잘라먹는 험악한 녀석이다. 첫 수확이지만 그다지 달갑지 않은 손님이다. 이사도 곧이어 한 자 만한 돔을 한 마리를 낚아 올렸다. 그러나 이후 작은 파도가 간간히 뱃전을 두드릴 뿐 바다는 깊은 침묵 속에 빠져들었다. 아프리카의 태양이 사납게 달려들었지만 작은 고깃배 안에서 몸을 숨길 은신처는 없다. 이브에게 묻는다.
「고기가 안 잡히면 어쩌죠?」
「내일도 있고 그 다음 날도 있는데요. 지금은 많이 잡힐 철이 아니에요. 여름에 더운 물과 찬물이 뒤섞일 때 고기가 많이 나옵니다.」
이브는 오히려 태평스럽게 노래를 부른다. 고기가 안 잡힌다고 걱정해서 될 일이 아니다. 낚시를 거두고 다른 바다를 향해 배를 몬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다한 후 신의 뜻에 맡기는 것. 어부가 사는 방식은 지구의 반대편에서도 다를 리 없다.
숨부즌 어부들은 해지기 전 숨부즌으로 돌아온다. 장사치들은 바다에서 돌아오는 어부들을 해변에서 맞이한다. 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어물들은 바로 해변에서 거래되거나 어부와 가족들이 직접 팔기도 한다. 다금바리와 돔, 장어와 민어, 바라쿠다 등 한국에서 귀한 몸으로 대우받는 어종들도 수두룩하다.
숨부즌 해변
어시장 근처에는 생선 굽는 구수한 냄새도 풍긴다. 초록빛이 감도는 살집 두둑한 홍합과 새우, 그리고 따로 팔기에는 작은 잡어들을 숯불에 구워 그 자리에서 맛볼 수 있다. 억척스런 삶의 열정과 소란스런 활기가 가득한 난전이 바로 숨부즌이다.
홍합구이
어부 이브는 시장에서 잡아온 고기를 넘기고 팔고 남은 생선은 저녁거리로 삼아 집으로 가져간다. 그의 집은 숨부즌 시장에서 걸어서 5분 거리. 이브가 집 근처에 다다르자 어느 틈에 아이들이 몰려나와 아버지를 맞이한다. 이브의 아들은 열여섯 살 맏이부터 막내까지 모두 일곱. 하지만 끝도 없이 아이들이 계속 나온다. 이 집에 이브의 아이들만 사는 게 아니었다.
이브와 이사의 아이들
사촌 형인 이사와 다른 형제의 아이들까지 모두 열일곱 명의 아이들이 한 지붕 아래 산다. 집 안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울음소리가 끊일 줄 모른다. 게다가 오늘은 인근 어촌계 사람들까지 이브의 집에 모이는 날이다. 마당 한쪽에서는 숨부즌 어부들이 회의를 하고 그 반대편에서는 이브의 처와 형수는 그가 가져 온 생선을 재료로 세네갈의 전통 요리 쩨부젠을 만드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아이들 열일곱과 십여 명의 어른까지 도합 서른이 넘는 대식구의 저녁을 마련해야 한다.
이브의 집에 모인 어부들
쩨부젠에 들어가는 야채
세네갈 서민들이 즐겨먹는 쩨부젠 요리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생선 배를 갈라 마늘과 통후추, 파, 고추 등을 넣고 튀긴 다음 양파, 홍당무, 피망, 양배추 가지, 토마토소스, 부이용과 인도산 커리curry와 비슷한 쩨부젠 향신료를 함께 넣고 큰 솥에 졸인다. 생선과 야채가 고루 섞여 붉은 빛의 소스가 끓기 시작하면 그 솥 위에 쌀을 안쳐 십여 분간 찐다. 쌀이 완전히 익으면 그 위에 붉은 색 생선과 야채 소스를 덮으면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운 생선야채 덮밥이 완성된다.
이브의 집에서는 개인별 접시도 필요 없다. 커다란 양푼에 셋에 밥과 생선을 고르게 나누어 쓱쓱 비빈다. 양푼 하나에 열 명씩 매달려 숟가락으로 그 마저 없는 아이들은 오른손만 있으면 그만이다. 냉장고에 묵은 반찬을 모두 꺼내 고추장과 참기름에 비벼먹는 양푼 비빔밥과 어찌 보면 먹는 모습이 비슷하다. 한 수저라도 더 많이 먼저 먹어야 하기 때문에 아이들조차 말을 아낀다. 아이들 밥투정 같은 말은 적어도 이브의 집에서 이해되지 않는 단어다.
완성된 쩨부젠
이브는 낯선 고장에서 온 이방인의 입맛에 음식이 맞는지 궁금해 하는 눈치다. 사실 이런 때 별 말이 필요 없다. 맛있게 음식을 먹으면 주인과 손님 모두 행복한 저녁이 된다. 그리고 맛있는 척을 할 필요도 없이 쩨부젠은 한국 사람의 입맛과 궁합이 잘 맞는다. 화려한 색깔만큼이나 화끈한 맛과 향을 떠올리면 지금도 입안에 군침이 돈다.
둘러앉아 함께 밥을 먹는 이브의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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