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오타루와 게공선

하피즈 2011. 12. 28. 14:05

.

.

.

[ 오타루와 게공선 ]

.

.

.

사카이마찌

.

.

.

오타루 사카이마치에는

예쁘고 아기자기하면서

달콤하고 부드러운 것들이

참 많다.

.

.

.

.

.

.

15분마다 증기를 뿜어대는

증기 시계...

반짝이는 유리 공예품들로 가득한

가라스관...

기묘하고 앙증맞은 장식물의 세상

오르골관 등등...

.

.

.

.

.

.

관광객들은 대개

사카이마치를 걷고 오르골 당에 들러

앙증맞은 장난감이나 기념품을 사고

운하를 배경으로 사진 한 장을 찍은 다음

오타루를 훌쩍 떠난다.

.

.

.

.

.

.

오타루 여행의 정석이란 그런거다.

사람들 취향이야 가지각색이니

그닥 나쁘다고 볼 일은 아닌데...

.

.

.

.

.

.

쫌 더 궁금한게 있다고 동네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다니는 인간들이 있다.

바로 그게 나다.

.

.

.

.

.

.

사람들은 때로

보여주고 싶은 얼굴만 아니라

숨기고 싶은 얼굴도 있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

.

.

.

.

.

대략 도시의 뒷골목이 그런 숨기고 싶은 얼굴인데

바람직한 사고방식을 가진 관광객들은

도시의 뒷골목 같은 음습한 곳은

그다지 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

.

.

오타루 지도

.

.

.

그러나!

물론!

당연히!

나는 사람들이 가보지 않은 곳들을

쑤시고 다니는 악취미를 가진 여행자다.

.

위의 지도에서 보면

지도상에 푸른색 음영으로 표시된

부분이 관광객이 출몰하는 지역이고

붉은색 음역으로 처리된 지역은

관광객 기피 지역으로

그들이 원하는 풍경은

개뿔도 없다.

.

.

.

수이텐 구우 (신사)

.

.

.

붉은색 지역은 언덕...

이해하기 쉽게 말하면 산동네로

정상에 수이텐 구우라는 신사가

이 지역의 썬터에 떡 하니 버티고 있다.

이 곳에 올라서면 오타루 항구에서

시내까지 한 눈에 좌악~

한눈에 보인다.

.

.

.

.

.

.

기껏 오타루 전망이나 보자고

빙판이나 다름없는

언덕길을 땀 뻘뻘 흘리며

올라왔는가?

물론 아니다...

.

.

.

.

.

.

답은 <게공선>이란 소설 때문이다.

게공선? 그게 뭬야?

게공선이란

게를 잡고 가공하는 배를 말한다.

일찌기 신구 옹께서

일엽편주 쪽배에 몸을 싣고

'니들이 게맛을 알아?'

일갈하셨던 그 배의 공장형 버전이다.

위에 보이는 책은 바로

<게공선>이란 소설의 표지다.

.

.

.

.

.

.

소설 <게공선>을 쓴 작자가

고바야시 다키지小林多喜二라는 이로서...

그렇다.

바로 오타루 출신이다.

그리고 이 곳에서 공안 경찰의 혹독한 고문 끝에

29살의 젊은 나이로 이 소설을 남기고 죽었다.

.

.

.

.

.

.

프롤레타리아 문학 쫌 한다는 축들은

<게공선>이란 소설을 거의 안다.

그 만큼 유명하다는 이야기이다.

오타루에서 태어난

작가 고바야시 다키지는

일본이 조선을 강제 침탈하고

스스로 몰락의 길을 걷던 일본 군국주의 초기인

20세기 초에 태어났다.

.

일찌기 오타루 노동자들의 지옥같은 삶에 눈을 뜨고

그들의 생존권과 해방을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또 그렇게

현장에서 죽어간 인물이다.

.

.

.

.

.

.

당연히!

고바야시 다키지가

태어나고 일생을 바친

동네가 궁금했다.

그가 불꽃같은 삶을 살았던

1900년대 초 오타루는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

.

.

.

.

.

그러나 너무나 이상하게도

20세기초에 태어나고 살았던

작가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

대신 엉뚱한 유리공예관과 초콜렛 가게...

고작해야 장식용 근대 건축물 몇 채만

얄미운 얼굴을 내비춘며 관광객의 호주머니를 턴다.

고바야시 다키지는 있거나 말거나...

.

.

.

.

.

.

금새라도 고바야시 다키지가

튀어나올 것 같은

비좁은 골목들이 이어지고

낡고 오래된 목조주택들이

어깨를 맞대고 서있었지만

마치 거짓말처럼

작가의 흔적은 눈 씻고 찾을래야

찾을 수 없었다.

.

.

.

.

.

.

잊고 싶고 잊어야하는

추악한 시간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집단 망상 증후군인가?

.

.

.

.

.

.

얼음짱같은

겨울 바람이 오타루 거리를

한 차례 쑬고 지났다.

.

.

.

.

.

.

나는 오타루에서

달달한 <러브 레터>보다는

치열한 <게공선>을 만나고 싶었다.

.

.

.

.

.

.

그런 오타루의 맨얼굴이

보고 싶었다.

.

.

.

.

.

.

'일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타루 숨은 맛집 "하쓰가쿠"  (0) 2011.12.30
하코다테 야간여행  (0) 2011.12.21
겨울보다 더 깊은 겨울  (0) 2011.12.20
오타루 창고 앞에서...  (0) 2011.12.16
삿포로 4시 33분...  (0) 2011.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