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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타루와 게공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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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이마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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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루 사카이마치에는
예쁘고 아기자기하면서
달콤하고 부드러운 것들이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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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분마다 증기를 뿜어대는
증기 시계...
반짝이는 유리 공예품들로 가득한
가라스관...
기묘하고 앙증맞은 장식물의 세상
오르골관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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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관광객들은 대개 사카이마치를 걷고 오르골 당에 들러 앙증맞은 장난감이나 기념품을 사고 운하를 배경으로 사진 한 장을 찍은 다음 오타루를 훌쩍 떠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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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루 여행의 정석이란 그런거다.
사람들 취향이야 가지각색이니
그닥 나쁘다고 볼 일은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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쫌 더 궁금한게 있다고 동네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다니는 인간들이 있다.
바로 그게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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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때로
보여주고 싶은 얼굴만 아니라
숨기고 싶은 얼굴도 있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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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도시의 뒷골목이 그런 숨기고 싶은 얼굴인데
바람직한 사고방식을 가진 관광객들은
도시의 뒷골목 같은 음습한 곳은
그다지 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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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루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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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물론!
당연히!
나는 사람들이 가보지 않은 곳들을
쑤시고 다니는 악취미를 가진 여행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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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지도에서 보면
지도상에 푸른색 음영으로 표시된
부분이 관광객이 출몰하는 지역이고
붉은색 음역으로 처리된 지역은
관광객 기피 지역으로
그들이 원하는 풍경은
개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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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텐 구우 (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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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색 지역은 언덕... 이해하기 쉽게 말하면 산동네로 정상에 수이텐 구우라는 신사가 이 지역의 썬터에 떡 하니 버티고 있다. 이 곳에 올라서면 오타루 항구에서 시내까지 한 눈에 좌악~ 한눈에 보인다. . . . . . . 기껏 오타루 전망이나 보자고 빙판이나 다름없는 언덕길을 땀 뻘뻘 흘리며 올라왔는가? 물론 아니다... . . . . . . 답은 <게공선>이란 소설 때문이다. 게공선? 그게 뭬야? 게공선이란 게를 잡고 가공하는 배를 말한다. 일찌기 신구 옹께서 일엽편주 쪽배에 몸을 싣고 '니들이 게맛을 알아?' 일갈하셨던 그 배의 공장형 버전이다. 위에 보이는 책은 바로 <게공선>이란 소설의 표지다. . . . . . . 소설 <게공선>을 쓴 작자가 고바야시 다키지小林多喜二라는 이로서... 그렇다. 바로 오타루 출신이다. 그리고 이 곳에서 공안 경찰의 혹독한 고문 끝에 29살의 젊은 나이로 이 소설을 남기고 죽었다. . . . . . . 프롤레타리아 문학 쫌 한다는 축들은 <게공선>이란 소설을 거의 안다. 그 만큼 유명하다는 이야기이다. 오타루에서 태어난 작가 고바야시 다키지는 일본이 조선을 강제 침탈하고 스스로 몰락의 길을 걷던 일본 군국주의 초기인 20세기 초에 태어났다. . 일찌기 오타루 노동자들의 지옥같은 삶에 눈을 뜨고 그들의 생존권과 해방을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또 그렇게 현장에서 죽어간 인물이다. . . . . . . 당연히! 고바야시 다키지가 태어나고 일생을 바친 동네가 궁금했다. 그가 불꽃같은 삶을 살았던 1900년대 초 오타루는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 . . . . . 그러나 너무나 이상하게도 20세기초에 태어나고 살았던 작가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 대신 엉뚱한 유리공예관과 초콜렛 가게... 고작해야 장식용 근대 건축물 몇 채만 얄미운 얼굴을 내비춘며 관광객의 호주머니를 턴다. 고바야시 다키지는 있거나 말거나... . . . . . . 금새라도 고바야시 다키지가 튀어나올 것 같은 비좁은 골목들이 이어지고 낡고 오래된 목조주택들이 어깨를 맞대고 서있었지만 마치 거짓말처럼 작가의 흔적은 눈 씻고 찾을래야 찾을 수 없었다. . . . . . .
잊고 싶고 잊어야하는
추악한 시간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집단 망상 증후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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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짱같은
겨울 바람이 오타루 거리를
한 차례 쑬고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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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타루에서
달달한 <러브 레터>보다는
치열한 <게공선>을 만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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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오타루의 맨얼굴이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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