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오타루의 숨은 맛집 "하쓰카쿠" ]
.
.
.
주머니가 두둑하지 않은 여행자들의 고민 중 하나가
바로 먹을거리다.
기왕 여행을 떠난 것
그 동네가 자랑하는 음식 하나 쯤은
맛봐야 할테데 그게 그리 만만치 않다.
가이드 북에서 추천하는 맛집들은 대개
관광용 식당이기 쉽고
가격 또한 뭔가 어리숙하게 당한 게 아닌지
께름칙할 때가 많다.
모든 것을 떠나
정말 원조, 정통의 맛인가에 대한
진위가 아리송할 때 깊은 고민에 빠져든다.
.
보편적인 경험을 따르자면
무릇 맛집이란 뜨내기보다는
토박이들의 입맛에 사로잡은 집이다.
관광용 맛집이란
맛이 지나치게 글로벌, 세계화되어 있거나
화려한 외양으로 뜨내기 손님들을 현혹하는 집들이다.
이런 식당은 대개 맛이 얕고 자극적이며
음식보다는 외적인 서비스나 분위기에 치중한다.
간혹 그런 집들 중에 맛이 훌륭한 경우도 있지만
가격이 호되기 마련이고
그 정도 값에 그 값에 걸맞는 맛을 내지 못한다면
식당 간판을 내려야하는 게 마땅하다.
.
그래서 나는
차라리 동네 밥집을 뒤지고 다닌다.
동네 사람들이 주로 밥을 먹는 곳
허름하지만 단골이 있는 집
물론 음식 값이 무척 착하고
양이 절대 겸손(?)하지 않은 그런 집 말이다.
그런 기준에 100%맞아 떨어지는 집이 바로
오타루의 "하쓰가쿠"다.
.
.
.
.
.
.
밥집 하쓰가쿠는 여행자들이 좀 처럼 찾기 어려운
골목에 숨어있다.
위의 그림 오른편에 철길이 보인다.
JR 하코다테 선이다.
하쓰가쿠는 오타루 역과 미나미(南)오타루 역이
지나는 철길 아래 상가에 자리잡고 있다.
.
.
.
.
.
철길 아래 상가의 이름은 花園이다.
'꽃동산'이란 뜻치고는 좀 살벌한데
대충 봐도 알겠지만
손바닥 만한 술집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술집 순례 베테랑에겐 대충 이런 술집들의
분위기가 어떤지 감이 금새 온다.
.
.
.
.
.
.
이 거리 주변에는 작고 어찌보면
가난해 보이는 술집과 식당들이 오밀조밀
모여있다.
서울로 따지면
대략 무교동 뒷골목 생각하면 딱 맞아떨어진다.
낮에 는 좀 궁상맞아 보이지만
저녁에 알록달록 불이 켜지면
제법 그럴싸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
.
.
.
.
.
그런 거리 한 복판에서
밥집 하쓰가쿠를 발견했다!
.
.
.
.
.
.
철길 아래 자리한 식당 안으로 일단 들어가보면
가정집을 대충 성의없이 개조한 식당 분위기...
오래된 오디오와 선풍기, 각종 잡동사니들이
전혀 질서없이 인테리어의 기본 개념을 무시하고
진열되어 있다.
차암~ 정신머리 없다.
.
.
.
.
.
다음은 주방 분위기
역시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실내장식의
일관성을 보여준다.
주인이 아니면 도저히 소쿠리 하나도
찾을 수 없는 독창적 구조다.
.
.
.
.
.
.
주방 앞 라운드 테이블에
(일본 식당들은 거의 이런 구조 혼자 밥먹은 외톨이들이 많아서...)
월급쟁이 둘이 만화를 보며 따뜻한 소바와 밥을 먹고 있었다.
역시 내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하쓰가쿠는 이 동네 사람들이 찾는 동네 밥집이었던 것이다.
.
.
.
.
.
.
주방 위에 사진이 눈에 확 들어온다.
주인 아주머니 또는 아저씨가 오드리 헵번의 광팬이신듯...
아! <로마의 휴일>에서 짧게 머리를 치고 나타난 오드리 헵번...
얼마나 수많은 남성들의 가슴을 두근대게 했던가?
내 올드한 취향과 싱크율 100%다.
.
.
.
아마 저녁에는 술집으로 변신하는 듯...
.
.
.
메뉴판을 펼쳐보니
역시나...
큰 길가에서 최소 750엔 하는 메뉴들이
이 집에서는 500엔이다.
메뉴를 쭉 훑어본 후
인도 사람들보다 일본 사람들이
더 사랑하는 '커리'가 아닌
'카레'라이스 정식을 주문한다.
(진실을 말하자면 다른 메뉴들은 해석할 수 없었다 ㅠ.ㅠ)
카레라이스와 따뜻한 소바 한 그릇에
달랑 500엔...
착해도 너무 착하다.
.
.
.
.
.
.
주문한 카레 정식
한 눈에 보기에도 한 끼 식사로
전혀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일단 양에서 100% 만족!
.
.
.
.
.
.
짙은 갈색 소스에 후추가루를 조금 뿌리고
수저를 놓은 작은 접시에는 쯔게모노가...
밥과 소스를 잘 비벼서
한 수저...
아... <심야 식당>의 "어제의 카레라이스"가
부럽지 않은 순간이다.
고슬고슬한 밥과 풍미가 가득한 카레소스...
런치의 여왕에서 재현하려 했던 데미그라스 쏘스가
아마 이런 맛이 아닐까?
.
.
.
.
.
.
다음은 덤으로 나온 따뜻한 소바
약간 무성의 해보이는 튀김옷을 살짝
뿌렸지만
면의 기본은 면빨!...
직접 뽑은 면빨은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메밀 특유의 향과 약간은 거친
메밀의 식감을 느낄 수 있다.
.
순식간에 카레와 소바를 비운 후
일본어 어휘 실력을 총 동원해
주인 부부에게 한 마디!
오이시!!!!
그 말을 들은 주인 부부의 얼굴에
가득차는 환한 웃음이란~~~
달랑 오백엔 동전 하나 내밀고
돌아서는 나에게 향해
감사하다며 연달아 세번 허리를
깊이 굽혀 인사하는 부부...
오타루 운하보다
더 오랜 추억으로 남았다.
...
하쓰가쿠 위치
.
.
'일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타루와 게공선 (0) | 2011.12.28 |
---|---|
하코다테 야간여행 (0) | 2011.12.21 |
겨울보다 더 깊은 겨울 (0) | 2011.12.20 |
오타루 창고 앞에서... (0) | 2011.12.16 |
삿포로 4시 33분... (0) | 2011.1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