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길
포토마린Portomarin에 도착한 것은 그리 늦은 시간도 아니었다. 그러나 16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영 알베르게 앞에는 그보다 많은 수의 배낭들이 줄서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린다. 알베르게는 오후 1시에 정확히 문을 열고 순례자들을 받아들였다. 사설 알베르게의 찾아 문을 두드려 보았지만 이미 몇 일전부터 예약을 받아 빈 침대하나 없다. 잠자리를 못 구한 사람들은 체육관으로 간다. 체육관 마룻바닥에 매트와 침낭을 깔고 핸드볼 골대에 빨래를 넌다. 1유로를 주면 샤워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난민촌 같은 분위기다. 한 낮의 뜨거운 열기와 사람의 시큰한 땀 냄새와 빨래 썩는 냄새가 한데 뒤엉켜 숨 쉬는 것 자체가 괴롭다. 몸이 피곤하니 작은 자극에도 민감해진다. 해가 지면 사정이 좋아지겠지...낙관적 희망으로 스스로를 달래며 포토마린 시내를 어슬렁댄다.
포토마린 시내 성당 앞 광장
성당에서 온 단체 순례자들도 한 둘씩 짝을 지어 마트를 돈다. 함께 길을 걷는 친구와 따뜻한 잠자리가 있으며 누군가는 이들을 보호해준다. 이 시간만큼은 솔직히 이들이 부럽다. 좋은 시절보다 어려울 때 친구는 절실하다. 포도주 한 병과 바게트를 사들고 나처럼 비관적(?) 처지인 순례자 한 명과 포토마린 광장에서 점심을 먹는다. 우리보다 늦게 도착한 순례자들도 잠자리를 찾기 위해 시내를 이리저리 헤맨다. 그들 중 한 명이 오후 다섯 시에 문을 여는 알베르게를 알려준다. 1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알베르게에는 약 80여개의 배낭이 줄서있었다. 체육관에 돌아가 짐을 꾸려 줄의 맨 끝에 세운다. 3시간 이상을 뙤약볕 아래 기다려야 하지만 차고 딱딱한 체육관 바닥을 견딜 자신이 없다. 나는 매트 한 장 조차 없다. 성긴 누에고치 같은 여름용 침낭과 티셔츠 두벌 뿐. 새벽 냉기는 그것들로 막아지지 않는다. 나는 가난하지만 나의 몸은 아직도 가난에 길들여지지 못했다. 뜨겁고 외로운 기다림 끝에 지상에서 겨우 얻는 반 평짜리 내 잠자리는 감사하고 고맙고 눈물겹다. 반 평 보금자리에서 지친 몸을 누이고 순례의 밤을 맞이할 것이다.
포토마린의 새벽
사리아에서 부터 가족들과 함께 걷는 순례자의 수도 부쩍 늘었다. 부부와 아이들, 어떤 이들은 3대가 함께 길을 가기도 한다. 제 스스로 걸을 수 없는 아이들을 땀 냄새에 절고 코 고는 소리로 요란한 방에 재운다. 제 덩치만한 배낭을 힘겹게 지고 가는 아이도 있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안아주지도 대신 짐을 들어주지도 않는다. 이들은 무엇을 위해 이 힘겹고 고단한 길로 아이들을 이끌고 왔을까? 아이들 기억 속에 이 길을 어떻게 남을까?
가족... 막내는 입양한 여자 아이다. 국적은 차마 물어볼 수 없었다....
나는 지금껏 가족과 여행을 함께 해보지 못했고 그래서 가족과 하는 여행의 의미를 모른다. 여행의 신산스러움을 함께 하기엔 가족은 시리고 아릿하다. 밥벌이를 위한 모욕을 참아내는 가장家長의 시커먼 가슴 속 안쪽과 같다. 한국 사람의 자식에 대한 애정은 대개 한쪽으로 기운 모습이다. 어떤 이들은 찬 이슬과 바람으로부터 아이를 안으로만 품으려 든다. 나의 유년幼年도 그렇게 나약했다. 겁이 많고 불편에 민감하며 고통을 두려워한다.
자전거를 타고 힘겹게 고개를 넘은 독일인 부부
팔라스 델 레이 Palas del Rei는 거창한 이름-왕의 궁전-과는 달리 소박한 마을이다. 포토마린에서 우연히 만났던 독일인 부부를 이곳에서 또 만났다. 한 살 터울의 남매를 자전거에 싣고 까미노에 가는 중이다. 두 사람 모두 잘 발달된 근육과 균형 잡힌 체격을 가졌다. 그러나 이 부부의 아이들은 순례를 이해하기엔 너무 어려 보였다. 아이들이 아프거나 투정을 부려도 부부는 결코 길을 멈추지 않는다. 왜 이토록 힘든 길을 어린 자식들과 함께 가려는 것일까?
남편은 아이들을 아내는 짐을 싣고 달린다
까미노는 좀 특별한 여행이다. 처음부터 끝나는 그 순간까지 줄곧 고통의 그림자가 따라다니는 여정이다. 사람들은 이런 여행을 순례라 부른다. 고통 없는 순례는 순례라 말할 수 없다. 산티아고로 가는 길에서 ‘산불조심’이라는 표어 만큼이나 '고통 없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No Pain No Gain'는 말을 자주 만날 수 있다. 순례의 밑바닥에 이르렀을 때 순례자들은 무슨 마술 주문처럼 이 말을 되뇐다. 고통에 가치를 부여하고 순례의 당위를 내면화하는 주술이다. 이 말의 운율은 매우 아름답지만 그 뜻은 매우 교묘하다. 고통 없이 ‘무엇’도 얻을 수 없지만 과연 고통이 ‘무엇’을 주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인내, 자신감, 끈기, 도전, 승리...추상적인 것들에 기꺼이 현혹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고통의 전리물들이 아니다. 나에게 다시 묻는다. 그렇다면 고통이 무엇을 남기는가? 정답은 ‘없다’다. 고통은 고통 그 자체일 뿐 동기도, 과정도 궁극적 결과도 아니다. 좀 더 냉정하게 말하면 고통이란 심리적, 정신적인 상처나 손상에서 비롯된 감각이다. 여러 가지 원인에서 비롯된 일종의 상태이며 일시적 증상이다. 극심한 고통은 고작해야 트라우마Trauma-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낳을 뿐이다. 타인의 고통으로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자들만이 고통의 미래와 열매를 말한다.
순례는 고통과 홀로 마주하는 시간이다. 고통에 대한 굴복 혹은 극복이 문제가 아니라 정직하게 마주할 때 진정한 나를 볼 수 있다. 모든 잡스러운 것들을 태워버리고 투명한 영혼만 남는 순간, 나는 그 시간을 절정이라 말하고 희열이라 부른다. 그것을 어떤 이름으로 부르던 고통은 세상과 내가 부딪히고 깨어지는 경계이며 싸움의 한복판이다. 더는 피할 구석도 없고 숨지도 못한다. 고통은 완벽하게 내 육신과 내면의 것이다. 어느 누구와도 함께 나눌 수 없다. 고통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는 것과 같다. 고통은 무엇을 이루려는 욕망이 없기에 그 자체로 순수하다. 고통 앞에 스스로를 속일 수도 허세로 남을 기만할 수도 없다. 냉정하게 혼자 맞서는 것이다. 고통은 고통일 뿐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길에서 부모는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는다. 아이들은 세상과 맞서는 법을 길에서 스스로 배운다. 피하는 법보다 맞서는 법을 먼저 배운 삶은 언제나 당당하다. 그들은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팔라스 델 레이에서 리바디소 데 바이소Ribadiso de Baixo까지 약 26km. 하루 동안 걷기에 딱 알맞은 거리다. 그런데 여기서 난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것일까? 배낭을 놓고 기다리면 편안한 잠자리가 보장된 알베르게를 버리고 다음 도시인 아르주아Arzua까지 왜 또 3km를 더 걷기로 한 것일까? 산티아고까지 남은 거리가 좀 애매하긴 했지만 그래도 더 걸어가는 것은 미친 짓이었다.
제법 도시다운 구색을 갖춘 아르주아의 알베르게는 공영이고 사설이고 할 것 없이 모두 꼼플리또Complete!(방 없음)를 외쳐댔다. 때마침 청승의 극적 효과를 더하기 위함인지 비마저 추적추적 뿌려댄다. 30km에 달하는 거리를 거의 쉬지도 않고 걸었던 까닭에 물에 젖은 솜처럼 몸은 무겁고 발은 후끈 달아오른다. 알베르게 주인에게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가장 불쌍한 표정과 언어를 모두 동원했지만 결론은 ‘잘 곳 없음!’이다. 분노는 가끔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킨다. 비록 알량하지만 내가 가진 유일한 정보인 한 장짜리 알베르게 정보-프랑스 길 순례가 시작되는 생장 피에데 포르에서 무료로 나누어 준-에는 다음 알베르게는 분명 16km 떨어진 산타 이레네Santa Irene에 있다고 적혀있었다. 그러나 나의 어리석음과 무모함은 명백한 사실을 무시하고 ‘가다보면 마을도 있고 작은 알베르게도 있겠지...’ 라는 ‘낙관주의적 희망론’을 믿으라고 속삭인다. 물론 결과는 뻔뻔하고 대책없는 ‘낙관주의’의 몰락이다.
끝도 없는 너도밤나무 숲이 이어지고 간혹 집들이 몇 채 나타났지만 순례자가 머물 만한 곳은 어디에도 없다. 속으로 설마를 되풀이하며 스스로 놓은 덫에 빠진 꼴을 기어이 확인한다. 오후 두시를 넘기자 순례자들도 자취를 감추었다. 여름, 그것도 비오는 오후에는 아무도 걷지 않는다. 순례자들이 사라진 순례길은 무섭고 적막하다. 무서움 위로 비까지 뿌린다. 몸을 질질 끌고 가는 꼴이 영낙없는 좀비다. 그나마 지친 몸을 누일 한 뼘 자리조차 없다면...홀로 길 위에 남으니 바늘 위에 선 것처럼 쑤시고 아프다. 인생은 고해苦海라고 누가 말했던가?
난민 수용소 같은 산타 이레네 체육관
다섯 시를 넘겨서 산타 이레네에 도착한다. 12시간 동안 꼬박 50km를 걸었다. 그렇다고 알베르게에서 침대를 비워놓고 나를 기다리지는 않는다. 쓰러질 기운 밖에 남지 않았을 때 간신히 체육관을 찾아낸다. 이미 그 곳에는 백 명이 넘는 순례자들이 패잔병처럼 침낭 위에 널부러져 있다. 나는 그 날 그 곳에 마지막으로 도착한 순례자였다. 차가운 마룻바닥에 누워 좀처럼 오지 않는 잠을 청한다. 체육관의 높은 천정은 거대한 나팔과 같다. 작은 발소리조차 거인의 걸음처럼 쿵쿵 울린다. 나팔 안에서도 잠들 수 있는 억센 신경이 부러울 뿐이다. 밤이슬을 피할 수 있다는 것 만해도 행운이고 순례자들에게 아낌없이 체육관을 무상으로 내준 스페인 정부에 무한한 감사를 보낸다. 산티아고로 가는 길에서 가장 오래 그리고 멀리 걸었던 날... 밤은 길고 뒤숭숭했다.
하루 밤을 신세 진 체육관
(까미노에서 잘 곳을 못 구한다면 지역 체육관으로 가면 된다. 단 매트와 침구는 꼭 챙길 것!!! 구안와사가 찾아올지도 모른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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