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 산티아고

까미노, 그 후의 이야기

하피즈 2010. 5. 13. 09:02

 

세상의 끝. 피니스테라Finisterra를 향해...

 

 

 

산티아고 성당 저녁풍경

 

 

 

....너는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을 보낸 후 남은 잔해 같은 것....

 

 

산티아고에 도착한 첫 날, 입고 있는 옷만 빼고 모두 빨았다.
순례 사무실에 들러 산티아고 도보 인증서도 받고
“난 잘했어! 괜찮은 놈이야!” 스스로 다독이기도 하고
바르Bar에서 만만해 뵈는 미국 관광객 부부를 붙잡고
‘프랑스 생장부터 산티아고까지 걸었노라‘고 떠벌이기도 했다.
그리고 밤은 마른 여울처럼 소란했고 달은 눈썹처럼 여위었다.  

 

 

산티아고 성당 앞 광장

 

 

 

산티아고에 머문 이틀째.
거대한 풍뎅이 같은 향로가 붕붕 나르는 일요 미사도 참석하고
하릴없이 산티아고 시내도 배회했으며  
한국에서 온 순례자들은 없는지 광장을 기웃대기도 했다.
창 가에 널었던 옷들이 소금에 절인 시금치 마냥 시들었다

 

 


 

동네 시장

 

 

혼자라는 사실이 그 어느 때보다 정색을 하고 달려드는

하...루....!
작별인사를 준비해야 하는 시간... 하루 종일 빈둥대다
늦은 오후 동네 건달처럼 도시의 반대편에 붙은 터미널까지 슬슬 걸어간다.
하기 싫은 방학 숙제를 억지로 하듯 피니스테라 행 표를 예약하기 위하여... 

C. L. O. S. E. D
마감 시간이 지난 창구 앞에서 서성인다.
세상의 끝으로 가는 길은 잠시 유보....
행운과 불행으로 쉽게 판정되지 않는 
세상에서 길을 잃는다.

 

 

피니스테라 가는 도로...버스 안에서

 


산티아고에서 피니스테라까지는 약 100km.
버스로 두 시간이 넘게 걸린다.

비를 뚫고 버스는 피니스테라로 달린다. 
바다가 보이기 시작하고 동시에 후둑후둑 비도 떨어진다.
30일 내내 배낭의 구석을 차지하고 어깨를 짓누르던
비옷을 두고 오자 거짓말처럼 비가 내린다.

이런 제길....
반팔에 반바지...
추위를 뼈 속 깊이 맛보기에 더할 나위 없는 차림이다.  
쓸쓸한 풍경에 불운이라는 글루미Gloomy한 반주까지...
피니스테라는 우울이란 감성을 극대화하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었다.

 

 

어촌 전경...마을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찍었다

 

 

 

음...그래도 멋지군!!!
바로 여기가 스페인의 땅 끝, 피니스테라(피니스+테라)라는 말이지?
음...그런데 뭐지?
그냥 어촌이네...
식당도 있고 슈퍼마켓도 있고...
세상의 끝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니...
좀 슬프지 않아?

 

"세상이 끝이 여기 인가요?"
"아니 저쪽 ...바다 쪽  보이지 않는 등대..."
"무차스 그라시아스... 세뇰..."

 

 

등대로 가는 길

 


순례자의 최종 목적지는 마을에서 북쪽으로 3km 해안선을 따라 올라간 등대다.
슈퍼에서 빵 몇 개 사서 꾸역꾸역 먹은 후 해안선을 따라 걷기 시작한다.
비는 여전히 구질구질 내리고 바람도 제법 세차게 분다.
그래 어차피 산다는 것은 구질구질한거니까....

등대에 가면 거의 얼어 죽을 지도 몰라...
하지만 여기서 죽더라도
한 달 내내 들고 다니며
단 하루 밖에 써먹지 못했던 비옷의 배신은

추위보다 더 아프고 억울해...
아니야... 난 순례자니까....괜찮아...
마지막 순간까지 웃음을 잃지 않는 ‘쿨’함을 스스로에게 보여줘.

 

관광객을 가득 실은 차들이 빗물을 튕기며 등대로 질주한다.
그들과는 나는 다른 시간대에 거주하는 지구인이다.
꼬박 한 시간을 걸은 끝에 도달한 등대.
까미노 데 산티아고의 최종 목적지 피니스테라...

좀 춥다...

 

 

 

옷을 태우는 순례자

 

 


이제 더 이상 서쪽으로 걸어갈 곳이 없어...
비가 내려 쓸쓸해 좋긴 한데 좀 추워...
순례자 몇이 땀과 비에 젖은 옷을 태운다.
그들 곁에 슬쩍 다가가 쪼그려 앉아 곁불을 쬔다.
낡아 빠진 티셔츠라도 가져올 걸...
세상의 끝에 비가 내리고
나는 이제 무엇 하나 태울 것 하나 없는 순례자다.  
세상으로 돌아가면 태울만한 무엇을 찾아낼 수 있을까?
대지의 끝에서
나의 순례는...
그리고 바다는 그렇게 멀어져간다.

 

 

 

  


{{{ 까미노에서 얻은 몇 가지...}}}

 

매니가 준 산티아고 기념 목걸이
산티아고 인증서 및 순례자 여권
짧은 스페인어 몇 마디
바스크, 까탈루냐, 갈리시아 지방에 대한 지리 정보
길에서 만난 친구와 소수의 아리따운 미녀들의 이메일 주소 ^^
능숙해진 파스타 요리 솜씨
제법 먹음직한 스페인 요리의 종류와 향기로운 와인에 대한 얄팍한 상식
발가락에 잡힌 몇 군데 군살
시큰대는 무릎 통증
약간 단단해진 종아리와 허벅지 근육
저질 체력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 -_-;;;
그리고
사랑하고 싶다는 의욕
....


{{{ 까미노에서 잃은 몇 가지 }}}

 

에리카에게 준 야구 모자
제법 넉넉했던 뱃살
다 떨어져 버려야 했던 샌들
만성적 두통과 불면증, 뒷덜미 결림...
약간의 돈과 시간???
떠남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사랑했던 이에 대한 기억...

 

 

 

 

 


{{{ 산티아고에서 해야 할 몇 가지 일들 }}}

 

1. 인증서 받기
거의 모든 순례자들이 받아간다. 산티아고 성당에서 주는 것은 아니고 산티아고 성당 옆 순례자 사무실에서 받아야한다. 여름철에는 아침부터 줄이 길게 늘어서니 일찍 찾아가거나 아예 오후 늦게 가는 것도 좋다. 끝도 없이 늘어선 줄을 보면 얼마나 많은 순례자들이 이 길을 찾는지 실감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줄을 쭉 훑다보면 길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었던 순례자들과 만날 수 있다. 먼저 아는 인사하고 안아주자. 여자들에게는 뺨 키스!!!~~ 스페인은 왼쪽 뺨부터 시작하니 입술끼리 부딪히는 접촉사고(?) 주의!!!

 

 

까미노 인증서

 

 

 

2. 빨래 또는 목욕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산티아고에 찜질방은 없다. 산티아고 도심에서 북서쪽으로 10분 정도 벗어나면 공영 알베르게가 있다. 겉모습은 호텔이나 관공서처럼 생겼지만 내부는 아주 단순하다. 샤워와 빨래를 할 수 있는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일반 알베르게와는 달리 날짜에 구애받지 않고 묵을 수 있으니 빨래가 마르지 않는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부엌은 없지만 차와 간단한 음식 또는 와인을 마실만한 휴식공간이 지하와 3층에 있다. 인근 가계에서 술과 음식 등 준비해 조촐한 자축 파티를 하는 이들도 있다.

 

3. 기념사진 찍기
산티아고 성당 앞 광장에서 많이 찍는다. 그러나 뒤로 돌아가면 멋진 계단과 조각상, 멋진 건물들도 많다. 물론 성당을 빼놓을 수는 없겠지만... 무엇보다 친구들을 다정하게 안아주는 장면이 있다면 최고!

 

 

뺨 키스는 왼쪽부터 ^^;;;

 

 

4. 일요 미사 참석
순례자를 위한 미사는 매일 열리지만 특히 일요일 미사를 빼놓을 수 없다. 일요일 미사를 위해 산티아고에서 사흘을 기다린다. 일요일 정오미사에는 그 유명한 향로가 등장한다. 거대한 향로가 성당 천정에 매달며 쉭쉭 소리를 내며 좌우로 흔들리는 모습이란...미사가 뒤에도 산티아고 성당은 볼 것들로 가득하다.

  

 

일요 미사, 거대한 향로가 붕붕 ~~

 

 

5. 피니스테라 Finisterre/Fisterra 가보기
이 지명은 ‘땅의 끝, 피니스Finis+테라Terra’라는 뜻을 가진다. 한국에도 땅 끝이 있듯 포르투갈에도 ‘까보 데 호까Cabo de Roca’있고 스페인에는 피니스테라가 있다. 성 야고보(산티아고)의 유골을 피니스테라에서 지금의 현재 산티아고 성당으로 운구했다는 말이 전해져 내려온다. 대서양과 만나는 이곳은 산티아고에서 서쪽으로 100km 떨어져 있다. 순례자들은 산티아고 사흘 동안 걷거나 버스를 타고 피니스테라로 간다.

 

 

 

 

길에서는 누구나 내 인생의 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