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타클라마칸 일기4

하피즈 2010. 9. 4. 14:35

    

 

  호텔에 들이닥친 의문의 남자들은 모두 7명 아니 8명쯤으로 보였다. 평상복 차림의 사내가 넷, 나머지는 군복 차림의 군인들. 호텔 복도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통역과 안내를 맡은 S씨를 손가락으로 불러내 그의 방으로 끌고 갔다. 중국말이라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분명 정부기관 따위의 조직을 배경에 깔고 있는 자들이 쓰는 고압적인 말투였다. S씨는 웃으며 방에서 기다리라고 했지만 얼굴에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S씨는 방에서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매우 거만한 얼굴을 한 기관원들과 함께 그의 방으로 들어갔다. 우리 나머지 일행은 각자 방으로 돌아와 혹시 고문이나 폭행을 당하는 소리가 들리지는 않는지 숨을 죽이고 기다려야 했다. 


      2009년 여름, 외국인이 여행하기에 신장웨이우얼 지구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아니 아주 나쁜 편이었다. 바로 일 년 전 라싸를 중심으로 서장 자치지구에서 벌어진 티베트 저항운동의 여파가 채 가라앉기도 전 이번에는 위구르인이 주동이 된 위구르 독립운동이 신장지역 주요도시에서 불붙었다. 2008년 라싸의 봄에서 그랬던 것처럼 수백 명이 죽고 실종되었지만 중국정부는 역시 사회에 불만을 품은 일부 무직자와 불량배들의 폭동 행위로 낙인찍고 무력을 사용해 진압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수백 명의 인명이 희생되었지만 아무도 그 숫자에 대해 정확히 모른다.

 

 

 

 

 

티베트 임시정부가 소재한 인도 맥그로드 간즈 거리풍경 /달라이 라마가 이 곳에 산다.


 

      신장 위구르 지역은 티베트와 타이완과 함께 중국 정부가 가장 예민하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지역이다. 티베트와 마찬가지로 근대 이전에는 청의 지배권 밖에 있는 독립된 민족이었으나 자주적인 근대국가의 건설에 실패하며 결국 구 소비에트 연방과 중국 공산당의 지배를 받게 된다. 구한말 일본에 조선을 팔아먹은 반역자들이 있었던 것처럼 위구르인들도 당시에는 여러 분파로 분열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민족을 팔아먹은 파렴치한 정치가들도 있었다.


      80년대 말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되며 문화적으로 동질적인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등 5개 이슬람 국가가 독립하며 신장 위구르에는 또 다시 다시 분리 독립의 열기가 타오른다. 그러나 중국정부로서는 절대 좌시할 수 없는 일이었다. 티베트와 타이완 문제도 골치가 아팠던 차에 어느 한곳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으리란 것이 중국 정부의 판단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지역에서 그야말로 펑펑 석유가 쏟아졌던 것이다. 쓸모없는 황무지였던 사막 타클라마칸 지역은 엄청난 천연 지하자원의 보고였다. 이때부터 철도를 놓고 도로를 건설하고 한족들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이른바 중국 정부의 서부지역 개발 프로젝트다. 사실 1978~9년 일본 NHK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실크로드>는 신장과 서장 등 서부지역에 대한 중국의 지배권을 정당화하려는 교활한 술책 중 하나였다. 일본과 중국 정부가 은밀한 뒷거래를 했고 무력했던 티베트와 위구르 인등은 한족의 지배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감사해하는 이른바 소수민족*으로 정의되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전야제 당일 티베트 승려의 촛불시위/맥그로드 간즈

 

 

 

 

 

 

촛불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

 

 


       이 시기에 서안에서 쿠얼러까지 연결되는 난장열차와 타클라마칸 사막을 남북으로 연결하는 사막공로가 연달아 완공 또는 건설된다. 겉으로는 지역발전을 명분으로 하지만 속내는 석유와 지하자원을 중국내륙으로 효과적으로 운송하고 또 내륙에서 만든 물건을 팔아먹기 위한 철도와 도로였다. 


        30분 쯤 지난 뒤 얼굴이 파랗게 질린 S씨가 방으로 들어왔다. 그는 별 것 아니라고 말했지만 표정은 별 것 아닌 수준을 한참 넘어선 이후였다. S씨가 밝힌 그들의 정체는 역시 특별한 신분의 공무원들이었다. 사복들은 허텐 지방정부 사회 안전국 소속, 군복은 인근 군부대의 방첩담당 요원들...영화에서 이들은 제법 멋지게 표현되지만 실제 보면 매우 거만하고 위압적인 공무원들이란 인상을 느낌을 준다.


         그 거만한 사내들의 전달 사항을 요약하면 첫째 허락 없이 호텔 밖으로 나가지 말 것, 둘째 한 사람씩 조사할 동안 방에서 대기할 것, 셋째 카메라와 노트북, GPS 등 일체의 전자장비 등의 압수조사 등 크게 세 가지다. 왜 조사를 하는지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 일체 알려주지 않는다. 그나마 군부대나 공안국으로 끌려가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우리는 그들이 따로 잡은 호텔방으로 한 명씩 들어가 2~3시간이 넘는 지루하고 고단한 심문을 받기 시작했다.


       허톈에 도착한 직후부터 우리는 보이지 않는 감시를 당했다. 민감한 시기라 외국 여행자는 거의 없었고 방송용 ENG카메라는 아니지만 서브 카메라로 쓰이는 소니 HDV 캠과 고성능 망원 렌즈가 달린 풀 바디 DSLR을 각각 두 대나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일반 여행자로 보기는 어려웠다. 허텐에 도착한 다음 날 어디서 알았는지 바로 공안-경찰-에서 연락이 왔다. 호텔을 통해 S씨에게 전달한 메시지는 가이드인 S씨와 일행 모두 공안부에 출두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외국인이 투숙하면 호텔에서 공안으로 신고를 하고 필요한 경우 직접 출석을 요구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공안에서 조사는 별것 아니지만 방송 프로그램 제작을 사실대로 말하기는 어려웠다. 허가를 받는 절차와 시간 그리고 비용 문제 모두 만만치 않기 때문에 정부당국의 특별한 협조가 필요치 않다면 해외 취재는 임의로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다. 상식적인 국가에서 보편적 취재 및 언론의 자유는 보장된 것이므로 허가 또는 신고라는 절차 따위는 통제된 사회에서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결국 중국 내에서의 취재를 일일이 정부가 간섭한다는 것은 그 사회가 자유가 억압된 비민주적 사회라는 사실을 거꾸로 인정하는 것과 같다.


        어쨌거나 공안 당국에 우리는 굳이 방송취재에 대해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굳이 말할 의무가 없었고 나쁘게 말한다면 숨긴 것이다. 공안에서는 어디로 여행하는지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 물음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타클라마칸 사막을 남에서 북으로 걸어서 종단한다고 대답했다. 담당한 공안은 처음에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고 통역을 맡은 S씨와 한참 이야기를 나눈 끝에 진심으로 사막을 걸어서 가겠다는 뜻을 알아챘다. 당연한 반응이지만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무엇 때문에 왜 사서 그런 짓을 하는지...어쨌거나 겉으로는 여행자의 안전을 이유로 사막 종단을 허락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고 또 상부에도 보고해야 한다며 골치 아프다는 투로 말했다. 가이드를 맡은 S씨가 여러 가지 말로 담당자를 설득하고 안전에 대해서는 자신이 전적으로 책임을 진다는 약속-사실은 현지 위구르인 접촉을 가능한 피하고 정해진 루트 외 지역에 가지 않는다는 조건으로-을 한 끝에 어렵게 허락을 받아냈다. 공안에서 나올 때는 담당자와 서로 악수를 하고 기념사진 까지 찍으며 화기애애한 표정으로 서로에게 짜이지엔~~을 외쳤다.        

 

        첫 번째로 방에 끌려간 이는 이번 타클라마칸 도보를 계획한 후배였다. 무려 3시간이 넘는 동안 조사를 받고 나온 후배의 말은 촬영도 문제가 될 수도 있지만 직접적인 원인은 바로 GPS였다. GPS사용법을 알기 위해 단 10분간 테스트 한 지역이 하필이면 군부대 근처였던 것이다. 수상한 외국인을 목격한 군은 즉각 사회 안전국에 연락을 취했고 GPS를 사용한지 한 시간도 안돼 군부대와 사회 안전국 소속직원이 호텔로 급습한 것이다. 권총까지 휴대한 군인이 찾아온 이유를 그제 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조사는 한 명씩 밤새 이어졌고 다음 날 오전이 돼서야 겨우 마무리되었다. 어이없지만 한국 내의 주소와 부모의 이름과 직업까지 이야기하고 이를 일일이 통역한 후 손으로 받아 적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이들 기관 사람들은 상대가 외국인임을 의식했던 탓인지 매우 조심스럽고 정중한 태도를 보였으며 심지어 조사하는 과정을 모두 비디오카메라로 녹화했다. 처음에 긴장했던 것만큼 큰 껀수(?) 아님을 알았는지 조사가 길어지면서 조금씩 웃기도 하고 건국 50주년 기념행사를 TV로 함께 시청하는 등  우호적(?) 분위기 아래 조사는 진행된다.        


* 중국의 소수민족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중국은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수많은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다. 중국에 소수민족-한족 중심적 표현방식이지만-에 대해 조금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 소수민족의 수를 55개로 알고 그렇게 답한다. 공식적으로 맞고 중국정부가 인정한 숫자다. 여기에 조선족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 숫자는 진실과 거리가 멀다. 마오쩌뚱이 대륙을 통합한 후 효율적인 지배를 위해 소수민족의 수를 조사했다. 처음에 등록을 받은 소수민족의 수는 200이 넘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이 숫자를 철저히 무시하고 관리와 지배에 편하게 나누고 합쳐 55개로 만들었다. 실재 중국 내에 살고 있는 이른바 소수민족 중에는 자신이 어떤 부류의 소수민족에 속하는지도 모르고 사는 이들도 많다.

 

 

 

 자전거 여행자들(호텔 앞)

 

 

  사회안전국의 조사는 이틀간 계속 되었다. 그리고 또 하루가 흘렀다. 압수해간 GPS와 촬영장비 그리고 노

트북 등에 불법적으로 취득한 정보가 들어있는지 조사해야 한다는 구실로 이틀을 호텔에 더 잡아 둔 것이다.

처음보다 분위기는 많이 부드러워졌고 오해도 풀렸지만 억류상태는 여전했다. 일정이 빠듯한 EBS 방송 취

재팀의 고민이 깊어졌다. 불과 20여일의 취재 기간 동안 400Km가 넘는 사막 종단이 가능할 것인가? 만약 타

클라마칸의 사막 종단이 실패한다면 프로그램의 기획은 물론 방송 자체가 불가능해질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허텐시 사회안전국에서도 조사에 협조해준 대가로 최대한 빨리 조사를 진행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또 어떤 돌

발 변수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이다.

 

 

 

허텐강과  양떼

 

 

   결국 처음 계획했던 허텐강을 따라 사막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처음의 계획은 포기할 수 밖에 없다. 20일 남

짓한 시간 안에 종단을 할수도 없었지만 무엇보다 문제가 된 GPS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방법은 단 하

나. 사막의 남북을 연결한 제2 사막공로를 따라 걷는 방법 외 다른 길이 없다. GPS도 없이 무작정 한복판으

로 걸어 들어간다는 것은 말 그대로 자살 행위와 같다. 아니 지난 후의 이야기지만 GPS만 믿고 사막으로 들

어간다는 것 또한 별다를 바 없는 미친 짓이다. 

   

   길이 바뀌고 일정이 축소되자 나 또한 후배를 따라 가능한 사막을 걷기로 했다. 처음 타클라마칸을 찾아올

때는 단순하게 생각했던 여행이 목적과 결과가 필요한 일종의 의무와 비슷해진다. 나름대로 긴장도 되고

욕심이 생겼다. 얼마만큼 의미있는 기록인지는 모르겠지만 '세계 최초 타클라마칸 도보 종단'이라는 타이틀이

이같은 결정에 조금은 영향을 준 것도 사실이다.

 

   조사 4일째 되던 날, 공안당국자와 한국으로 따지면 국토지리 정보원 쯤 되는 기관의 공무원이 호텔로 찾아

왔다. 외국인의 허가받지 않은 GPS 사용으로 GPS는 압류당한 당하고 나머지 장비는 되돌려 받았다.  원칙적

으로 약식 기소되어 벌금형을 받아야했지만 고의가 없었고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주었으며 한중간의 우호

관계를 위해 장비의 압류로 마무리한다는 법적 통지문을 호텔방에서 통고받았다. 최악의 경우 강제 출국조치

까지 각오했던 우리 일행으로서는 비교적 다행스런 결과였다. 그러나  까먹은 4일 간의 시간을 사막에서 벌충

해야 한다는 새로운 짐을 져야했다.                        

 

 

 

일행과 장비를 실은 승합차

 


허세

 

   촬영장비와 텐트 4동, 식량, 자동차 기름과 조리용 연료, 그 밖에 잡동사니와 성인 6명을 태운 나머지 공간

에 물을 싣는다. 9인승 승합차에 실을 수 있는 물은 기껏해야 일주일 분이다. 운이 좋으면 도로 휴게소에서

물을 살 수 있겠지만 아니면 출발 지점인 허톈으로 돌아가야 한다. 

 

 

 

촬영팀

 

 

   아무도 없는 사막에서 익명의 시선이 줄곧 따라다닌다. 보는 것에 익숙할지는 몰라도 보여 진다는 것은

아무래도 불편하다. 사막에서 공적생활이란 더군다나...


  호탄에서 차를 타고 10분 쯤 외곽을 나와 북쪽으로 걷기 시작한다. 사막의 북쪽 아랄시가 최종목표지다.

후배는 사막 종단이 목적이니 걸어야 하겠지만 나는 그런 짐을 스스로 부여할 이유가 없어 걷거나 혹은 차를

탈 것이다. 내 스스로 결정해야 할 문제에 타인의 시선이 개입한다. 정직할 수 있다을까 자주 나에게 질문하

게 만든다. 꾸미고 싶거나 어떻게 보여 지는가 마음이 쓰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타인에게 ‘이렇게 보이고 싶

다’는 욕망이 생기기도 한다. 타자의 시선이 존재하는한 사람은 자신이 어떻게 이해되는가에 자유로울 수 없

다. 거기에 거짓이 개입되면 허세가 된다.

 

 

 

 


모래언덕

 

    허텐을 벗어난 후에도 한동안 자갈과 잡풀이 무성한 황야가 반나절 계속된다. 반나절을 걸은 후 첫 모래 사

막으로 들어선다. 평지에서 하루 30km정도는 쉽게 걷는 사람도 사막에서는 그 절반을 걷기도 힘들다. 9시부

터 6시까지 점심 먹는 시간과 쉬는 시간을 빼도 예닐곱 시간은 걷는데 저녁 때 텐트에 돌아와 거리를 따져보

면 기껏해야 20km. 따져보면 이유야 많겠지만 한 마디로 잘라 말한다면 사막에는 따로 길이 없어서다. 곧게

걷는다지만 돌아보면 걸어온 자취는 늘 구붓하다.

 

  
   평지에서 약 30m 이상 솟은 제법 큰 모래언덕들이 줄지어 다가온다. 모래언덕을 만나면 얕은 골 사이를 지

나 이리저리 돌아가야 한다. 억지로 언덕을 넘어보면 금방 이유를 알 수 있다. 무턱대고 모래언덕을 가로질

러 올랐다가는 반나절도 못되어 탈진해버린다. 그렇다고 시간이 단축되는 것도 아니다.  모래 언덕 오르기도

생각보다 쉽지 않다. 발을 딛을 때마다 발목까지 빠지는 것은 그렇다 쳐도 한걸음을 오르면 반걸음은 도로

밑으로 내려간다. 아주 작은 힘에도 모래는 금방 허물어진다. 모래 알갱이가 밀가루처럼 곱고 가볍기 때문이

다.

 

 

 

 

 
                사구를 오르려면 먼저 언덕의 생김을 잘 살펴야한다. 하늘에서 보면 초승달처럼 생긴 사구,바르한Barchan

은 바람의 힘이 만든 언덕이다. 바람을 맞는 쪽은 배처럼 불룩하고 반대쪽은 경사가 안장처럼 오목하며 경사

도 가파르다. 초승달의 양 끝은 바람이 불어가는 쪽으로 누워있다. 이런 사구를 오를 때는 초승달의 양 끝에

서부터 언덕의 능선을 타고 오르던지 아니면 바람이 불어오는 불룩한 사면으로 올라야 한다. 반대쪽은 경사

가 빠르기도 하지만 무르게 모래가 쌓여 쉽게 흘러내리고 발이 깊게 묻힌다. 바람의 방향이 비교적 일정한

타클라마칸의 사구들은 거의 초승달처럼 생긴 바르한이다.

 

 

 

 

 


   언덕 정상에서 까만 점으로 보였던 물체는 양떼에 풀을 먹이던 소년들이었다.   사막의 아이들은 모래의 성

질과 바람의 흐름을 느낄 줄 안다. 아이들은 마치 평지처럼 사구를 오르내리지만  숨은 평지와 같이 평온하

다. 아이들의 알몸 위로 햇살이 쏟아진다. 10월이라고 하지만 한낮의 태양은 아직 사납다. 아이들은 아무렇

지도 않는 얼굴로 사막을 뛰어다니며 논다. 낯선 이의 출현에도 그저 흰 이를 드러내고 웃음 짓는다.      

 

 

 

 

   소년들이 서있는 사구에 올라서면 사막의 아주 먼 곳까지 보인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막의 경계는 지

평선이다. 양들이 풀을 뜯는 초지와 서쪽 습지, 강 건너 마을들이 어느새 다가와 있었다. 소년들은 아주 멀리

볼 수 있다. 그렇기에 강 건너 저편 마을에서 양을 몰고 이곳까지 올 수 있었던 게다. 인간이 사막을 더 황폐

하게 만들지도 모르는 조금은 먼 훗날 소년들은 한 때 자신이 사막에 살았음을 추억할 것이다. 그들이 기억

하는 사막은 어떤 곳인지 궁금하다. 그 때쯤이면 소년들은 모래언덕을 재빠르게 오르는 법도 멀리 볼 수 있

는 눈도 잊을지 모른다. 우리는 모래언덕에서 내려와 소년들이 사는 마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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