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타클라마칸 일기 8

하피즈 2010. 12. 6. 16:32

 

 

해질 무렵의 사막

 

길도 없는 사막에 어떻게 마을이 있을까?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허텐 강을 따라가다 보면 삶이 얼마나 질기고 모진 것인지 알 수 있다. 보통 강들처럼 허텐강도 겨울에 물이 줄고 여름에 물이 불어난다. 비가 와서 강물이 부는 것은 아니다. 지평선 저 너머 보이지도 않는 텐샨天山과 쿤륜崑崙 산맥 정수리의 만년설이 녹아 타림분지의 중심을 질러 타클라마칸으로 흘러드는 것이다.
 

 

양 목장

 


강이 낮은 곳으로 흐르듯 사람들도 그 강을 따라 모질고 거친 사막으로 모여들어 그 곳에서 양을 기르고 목화를 심었다. 나무가 자라고 길이 닦였으며 집이 서고 과일 나무들은 그늘을 드리웠다.

 

 

목화 따는 소녀

 

가을이 오면 메마른 강 주변의 너른 들에는 함박눈 같은 목화가 피어난다. 꽃들이 무성한 밭 사이로 위구르 처녀들의 모습이 보인다. 밭에 가득 피어난 그 목화 솜뭉치를 손으로 하나하나 따서 부지런히 부대에 담고 있었다.

 

“약시무시스 ...”     

 

 

 

 

위구르어로 먼저 아는 척을 한다. 처녀들은 낯선 이방인의 출현에 손으로 입을 가리고 까르르 웃어대며 저희들끼리 속삭인다. 80년대 초반 로만 폴란스키의 영화 <테스>의 나타샤 킨스키와 같은 붉은 뺨을 가진 처녀들이다. 차고 맵짠 바람에 얼고 녹기를 반복해 붉은 실핏줄을 드러난 투명하고 보드라운 뺨과 도톰한 입술 안에 옥처럼 빛나던 가지런한 이. 비록 머리에 스카프를 두르긴 했지만 처녀들은 호기심까지 숨기지 못했다. 테스의 붉은 입술을 본 알렉처럼 목화밭 안으로 들어갔다.      

 

 

목화

 

목화를 따는 처녀들의 나이는 기껏해야 10대 초반에서 후반 남짓. 강의 물빛처럼 맑은 눈빛을 가졌지만 추위에 언 손등은 거칠고 투박해보였다.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한 태양과 태양이 사라진 밤에 찾아오는 잔혹한 추위를 견디며 목화와 처녀들은 그렇게 성장했다. 아무것도 살 수 없을 것 같았던 사막의 한복판에서...

 

손 끝에 봉숭아 물을 들인 위구르 소녀

        
어떻게 알았는지 동네의 아이들이 다 모여들었다. 처음에는 중국인(한족)인 줄 알고 경계의 눈빛을 보내던 위구르 인들도 의혹에 찬 시선을 거두고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목이 탔고 배가 고팠다.

 

 

묵에 무채를 썰어넣고 간장에 버무린 음식

 

 

 

 

마을 중심으로 보이는 광장에 장이 섰다. 주전부리를 할 만한 음식과 공장에서 만든 옷과 신발을 팔고 있었다. 사막에 사는 위구르인들은 양털가죽으로 만든 외투나 목화솜으로 짠 이불보다 촌스러운 원색으로 물들인 하늘하늘한 나일론 옷들을 더 갖고 싶어 한다. 그것들은 아무리 싸구려처럼 보여도 이 곳 사람들이 일 년 내내 키우고 가꾼 양털과 목화솜, 그리고 과일들을 시장에 내다 팔아 번 돈으로 사야한다.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낸 물건들은 도시의 삶 뿐 아니라 깊은 사막 속의 삶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간장에 만 묵으로 만든 국수 가닥에 희미한 화학조미료의 맛이 배어났다.

 

 

옥수수 말리는 일을 거드는 아이들

 

흙으로 엉성하게 지은 집들이 길을 따라 죽 늘어서 있다. 제법 규모가 있어 보이는 집 마당에는 어김없이 포도넝쿨이 뱀과 같이 기둥을 타고 있었고 가지아래는 터질 듯한 포도송이들이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단 냄새를 풍겼다. 입 안은 바짝 타고 바람을 따라 부유하는 가는 모래들이 끝없이 입안에 쌓였다.

  입 안이 바짝 말라 모래처럼 거칠해진 오후. 미지근한 물 따위로는 도무지 갈증이 가시지 않는다. 포도송이가 늘어진 집 안 마당을 앞에서 절로 푸념이 나온다. 포도 한 알을 삼키는 대신 사흘을 굶는다 해도 좋을 만큼 혀를 적셔줄 젖은 것이 절실했다.

 

「수박 한 덩이 아니 포도 한 알이라도 먹었으면...」
  
  그 순간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진다. 일행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위구르 청년이 대문을 열고 나온다. 수줍은 표정이지만 분명 집 안으로 들어오라는 손짓 한다. 군침을 흘리던 표정을 들켰지만 부끄러움 보다는 어쩌면 포도를 맛볼 수 있다는 욕심이 앞선다. 어느 누구도 사양치 않고 집으로 불쑥 들어선다.

목마른 이방인을 집 안으로 불러들인 청년은 마마디민. 가족들은 잠시 집을 비운 사이 홀로 손님을 맞이한다. 손님을 극진히 맞는 것은 무슬림의 의무. 19세의 청년 마마디민에게 손님맞이는 몸에 밴 것처럼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목마른 여행자의 처지를 너무나 노골적으로 드러냈을까? 차 대신 큼직한 수박을 내온다. 수박이 탐스런 붉은 속살을 드러내며 갈라지자 체면이나 사양 따위는 내버리고 수박에 달려든다. 사막을 걷다 먹는 수박 맛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씨를 골라낼 틈도 없이 수박은 입에서 녹는다. 내가 살아오면 느꼈던 가장 강렬하고 게걸스러웠던 식탐에서 다소 이성적인 정신으로 돌아온 후 그제서 한국에서 왔으며 사막을 걷고 있다고 우리의 정체를 밝힌다.
   
마마디민은 사막의 북쪽까지 걸어간다는 말을 정확히 이해 못한 표정이다. 버스를 타면 넉넉잡아 10시간이면 갈 수 있는 사막을 왜 가로질러 걸어간다는 말인가? 그것도 비싼 카메라를 주렁주렁 메고 있는 부자(?)같은 이들이... 마마디민의 의문을 풀어주기에 나의 중국어-위구르 어는 말할 필요도 없고- 수준은 너무나 한심했다.

 

게걸스런 이방인들은 불과 10분 만에 수박 한통을 해치우자 마마디민은 이번에 포도를 내온다. 수박 덕분에 거의 제 정신을 차린 우리는 형식적으로 아주 그것도 짧게 사양을 한 후 덥석 포도송이를 집었다. 한 알씩 떼어 먹는 것도 번거로워 포도송이를 몇 개로 나누어 한 줌에 쥐고 한 번에 서너 알씩 삼킨다. 마마디민은 아마 감사해 했을 것이다. 목마른 자에게 베풀 수 있는 기회를 준 신에 대해...

 

타클라마칸의 포도는 한 알만 입에 넣어도 과육에 담긴 달콤함과 향기가 입 안에 가득 찬다. 또한 어른 엄지만한 알갱이는 크고 단단해 포도 특유의 물컹한 느낌조차 없다. 신장에서는 그냥 먹어도 좋고 말려서 먹으면 더욱 단맛이 강해지는 청포도를 주로 심는다. 시장에서도 사철 말린 포도를 볼 수 있는데 크기와 맛에 따라 보통 종류가 10가지도 넘는다. 잘 말린 포도에는 그저 단맛이 아닌 계피와 박하, 후추와 감초, 탄닌에 이르기까지 오묘한 향과 맛의 조화를 이룬다.
          
여기서 하나 더. 포도와 살구, 수박은 무엇보다 뜨거운 사막의 축복을 한 몸에 받는 생명체임에 분명하다. 위구르 사람들이 무슬림이 아니었다면 얼마나 좋은 술을 빚었을까 안타까운 마음이 들 정도로 포도는 훌륭하다. 뜨겁고 건조한 햇살이 일 년 내내 내리쬐니 땅만 잘 고르면 포도가 나빠질 이유를 도무지 찾을 수 없다. 유럽과 남미의 포도주 업자들은 타클라마칸 사람들의 믿음을 신의 축복으로 여겨야한다. 이곳 신장이나 중동지역에서 술을 담그기 위해 포도를 재배했다면 와인의 역사는 다시 써야했을 것이다.    

 

포도 넝쿨이 그늘을 드리운 안마당에 목화들이 가득 담긴 자루가 보인다. 마마디민의 가족들  도 목화를 심는 농부인 게다. 오토바이 소리가 들린 후 아버지와 두 여동생이 집으로 돌아온다. 마마디민은 굳이 여러 말로 설명하지 않는다. 아버지 역시 기다렸던 손님이 왔다는 듯 태연하게 맞이한다. 사막을 걷는다는 말에 굳이 자신의 집에서 좀 더 쉬었다 가라며 손을 잡는다. 위구르 사람들의 집은 들어오기보다 나가기가 더 어렵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된다. 짧은 만남에도 이별을 아쉬워하는 마마디민의 눈빛이 사막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남았다.

 
(어지간히 게을렀습니다. 사진을 일 년 넘게 묵혀두다니...게으름에 대한 벌이라도 내리듯 사진을 저장해놓은 외장하드디스크가 바닥에 떨어 졌습니다. 겉은 비교적 멀쩡했는데 속이 골병들었더군요. 데이터 복원 프로그램을 돌렸음에도 파일의 반이 깨졌습니다. 겨우 살아남은 파일을 중심으로 사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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