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타클라마칸 일기9

하피즈 2011. 3. 8. 15:09

 

 

사막공로에서 너무 떨어졌다...

 

 

다운 받은 구글 어스 지도를 확인하며 마을에서 북쪽으로 난 길을 두 시간 쯤 걸었다. 이 때쯤 사막공로로 통하는 길이 나와야 하는데... 도무지 공로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알 길이 없다. 그저 막연하게 더럭 불길한 생각이 든다. 텐트는 커녕 물도 없고 식량도 없다. 이대로 해가 떨어지면 길 한복판에서 오들오들 떨며 밤을 지새야할 판이다. 마음이 다급해졌다. 길을 물러볼 사람도 인가도 없다. 그나마 휴대전화가 유일하게 외부 세계와 연결된 끈이다. 어설픈 지도 한 장과 나침반을 들고 길을 나서다니... 길을 잃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선택 방법이 없다.

 

 

 

 

 

멀리서 1톤 트럭 한대가 먼지를 뿌연 먼지를 날리며 다가왔다. 황무지에서 부처님을 만났다. 트럭을 다짜고짜 세우고 물었다. 말이 통할 리 없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운전사가 한漢족이라는 사실이다. 사막공로에서 기다리고 있을 가이드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이야기한 후 한족 사내에게 휴대전화를 건넸다. 뭔가 한참을 떠든다. 단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지만 분위기는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한 10분을 가이드와 한참 이야기를 주고 받던  한족 사내가 휴대폰을 돌려주었다. 무슨 이야기를 그토록 오래 주고 받았는지 몰라 멀뚱멀뚱 사내를 쳐다 보았다.

 

 

텐트앞에 자리를 펴고 밥 해먹는 장면

 

 

“...트럭운전사가 사막공로까지 태워 줄테니 거기서 꼼짝 말고 기다리세요.”

 

 

조선족 가이드인 송 선생은 퉁명스럽게 이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이 얘기 하려고 무려 10분이나 통화를 했다는 말인가? 휴대폰 배터리마저 떨어지려면 어쩌려고...한족 사내는 이곳에서 기다리라는 듯 한 말을 남기고 또 먼지만 남긴 채 차를 반대편 방향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지도에도 없는 길에는 사막의 더위와 우리의 한숨만 남았다.

 

 

 

일정을 함께한 동료 N군...동결건조 비빔밥에 물을 넣고 기다리고 있다.

 

 

더 이상 걸어갈 힘도 없고 그림자도 동쪽으로 길게 누웠다. 30분 쯤 지나자 제대로 의사소통이 된 건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우리 쪽 사정이 제대로 설명은 된 걸까? 탈수증에 빠져 뼈만 남았을 때 돌아오는 건 아닐까? 그 한족 사내를 믿을 수 있는 걸까? 온갖 불길한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그려졌다가 사라진다.

 

30분쯤 지난 후 트럭이 사라졌던 길 저편에서 다시 뿌연 먼지가 치솟으며 트럭이 등장했다. 우리는 그동안 가졌던 불길한 의심은 모두 털어버리고 소풍 온 아이들처럼 신나게 트럭 짐칸에 탔다. 트럭이 출발하며 시원한 바람이 불안과 걱정들을 모두 날려버렸다.

 

 

해질 무렵 호양목

 

 

 

그런데 이상하다. 트럭이 계속 엉뚱한 방향으로 간다. 동쪽으로 가야하는데...계속 북쪽으로 간다. 다시 방정맞은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혹시 새우젓 배나 유전광부로 우리를 팔아먹는 건 아니겠지...아니면 돈이 되는 카메라와 장비만 뺏고...

 

비포장도로를 우당탕탕 20분 쯤 달려 도착한 곳은 이상한 벽돌공장. 공장에서 일하던 인부들이 트럭에 탄 이상한 여행자들을 보고 트럭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하나같이 남루한 옷차림의 위구르인 사내들과 젖먹이 애를 안은 여자도 보였다.

 

 

‘아...이 사람들과 벽돌을 찍어야 한다는 말인가?’

 

 

트럭에서 내린 한족 사내는 한참 중국말로 설명한다. 대충 눈치껏 들어보니 일을 마친 후에 공로로 데려다 주겠다는 말로 들린다. 한족 사내의 환심을 사기 위해 우리가 줄만한 것을 모두 주머니에서 털어보았다. 다행히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이 나왔다. 한족 사내의 입이 귀에 걸린다. 또 다른 사내가 그것을 탐내며 빼앗으려 하자 배낭에 꽂았던 태극기를 다른 사내에게 주었다. 그 역시 기분이 좋아졌는지 태극기를 바로 트럭 앞에 꽂는다. 그리고 벽돌공장이 일을 마칠 때까지 한 시간을 더 초조하게 기다렸다. 더 이상 줄 것도 없는데...

 

 

 

 

 

 

사막분변沙漠糞便

한참 밤이 깊어진 후에야 텐트를 치고 부랴부랴 늦은 저녁밥을 지어먹는다. 끼니는 거의 비슷하다. 아침은 가루 분유 한 잔에 난 한 조각, 점심은 끓는 물을 넣어 먹는 동경 건조밥, 저녁은 ‘햇반’이라 불리는 ‘즉석밥’과 라면, 통조림과 짠지 류...(6장 참조)

 

 

 

 

 

고생을 했던 탓일까? 밥이 꿀 같다. 에너지로 소비되고 남은 찌꺼기는 비워야한다. 해가 떨어진 후 별반 할 짓이 없는 저녁 시간 때 마음과 속(?)을 비우는 활동을 주로 한다. 사막에서 보내는 하루 중 가장 평안한 시간이다. 저녁을 먹은 후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진다. 당연하겠지만 사막 한 가운데 비데가 설치된 좌변기 따위는 없다. 비록 하룻밤의 용무지만 나름대로 불문율이 있다.

 

 

사막에 쏟아지는 별빛 아래서...

 

 

 

1. 텐트에서 최소 반경 10m 이상 떨어질 것...우리 중 누군가 밟을 수도 있다.

2. 움푹 진 경사면 또는 타마리스크 등 식물 주변 은폐 또는 엄폐가 가능한 장소를 고를 것

3. 타인의 배설지를 탐내지 않는다.

4. 용무를 마친 후에는 모래로 위장한다...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지만 누군가 발견하고 불쾌한 기분이 들 수도 있으므로...

 

 

이상 4가지 조건에 합당한 지형을 골라 사막에 쏟아지는 별빛을 흠뻑 받으며 평안한 시간을 맞이한다. 사막이라는 불모지에 서식하는 여러 가지 생명체에 도움을 주었다는 뿌듯함도 동시에 맛볼 수 있다. 뒤처리로 처음 며칠은 물티슈 여러 장을 낭비한다. 그러나 일주일 쯤 지나면 가로 세로 15cm 정방형 티슈 한 장으로 처리할 수 있는 지혜를 터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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