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헤밍웨이와 쿠바

하피즈 2012. 6. 9. 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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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과 고통에 의해서만 인간은 구원받고 위로받는다.

- 후지와라 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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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나는 결핍으로 가득하다.

시장 좌판이 비어서, 시민들의 호주머니가 가벼워서가 아니다.

60년간 어제와 같은 오늘이, 낡은 구호가, 빛바랜 깃발이 나부낀 때문이다.

혁명은 길고 오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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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는 균열을 넘어 소멸의 단계에 이르렀다.

한 때 푸르던 것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헐벗음을 드러낸다.

건물들은 껍질을 벗는 뱀의 몰골이다.

그 야윈 어깨위로 대서양에서 불어 온 짜고 습기 찬 바람이 핥고 지나면 가난한 빨래들이 파들댔다.

바람은 몰락해가는 도시, 아니 부활 중인지도 모를 도시의 빈틈에 잠시 머물렀다 야자 숲 너머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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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람의 흔적을 따라 바다를 향해 걸었다.

아바나에서 해안을 따라 북동쪽으로 10km쯤 떨어진 작은 어촌 꼬히말Cojimar.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의 배경이라고 스스로 밝힌 한적한 어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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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처럼 오목한 항의 깊숙한 안쪽에는 헤밍웨이라는 이름을 단 어선들이 몇 척 보인다.

작기는 해도 엔진이 탑재한 어엿한 발동선들이다.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 노인이 노를 저었을만한 작은 배들도 간혹 바다를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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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산티아노 노인의 모델이 되었던 인물(호텔 암보스 문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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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광장에는 어떤 어부가 자신의 배의 스크류를 녹여 만들었다는 헤밍웨이의 흉상이 바라를 바라보고 있다.

헤밍웨이가 즐겨 찾았다고 주장하는 터무니없이 비싼 식당만 빼면

이곳이 과연 <노인과 바다>의 배경이 된 마을일까 의심을 들 만큼 따분하고 적막한 동네다.

거기서 이레네 루이스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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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레네 루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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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이 낚시질을 하는 선착장 근처에서 루이스는 헤엄을 쳤다.

딱히 고기를 잡거나 해산물 따위를 건지기 위한 자맥질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는 그저 물과 놀았다.

한참을 그렇게 바다에서 놀던 루이스가 낯선 이방인을 보곤 뭍으로 다가왔다.

 

 

억센 톱날 같은 개의 이빨-diente de perro이 둘러싼 갯바위를 힘겹게 타고 돌아온 루이스의 몸에는 성한 곳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게다가 온갖 흉터와 헤아릴 수도 없는 사마귀와 같은 군살들 그리고 피어싱을 위한 수 백 개의 구멍들로 가득한 그의 얼굴과 민머리는 거의 끔직한 공포영화에 나오는 주인공, 아니 그 이상이다. 그러나 내 시선이 머문 곳은 차마 마주 보기조차 힘든 얼굴이 아니라 허벅지부터 잘려나간 루이스의 오른쪽 다리였다.

(개의 이빨 : 끝이 뾰족하고 날카롭고 거친 해안가 석회암 바위층. 쿠바 해변을 둘러싼 지형을 일컫는 별칭. 파도의 침식작용으로 크고 작은 구멍들이 수없이 많은 구멍들이 뚫려있다. 제주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검은 현무암과 색깔만 다를 뿐 생김은 거의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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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팔과 성한 한쪽 다리로 날카로운 갯바위를 타고 올라오는 바람에 잘린 다리의 끝은 여기저기가 찢겨 피가 흘렀다.

루이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술을 마시고 오토바이를 타다가 다리가 잘렸다고 말하며 작은 팩에 든 싸구려 럼을 홀짝 마셨다.

그리곤 자신의 몸에는 360개의 구멍이 있다고 너스레를 떤다.

동네 꼬마들이 뭍에 올라온 루이스 곁으로 몰려 들었다.

루이스는 무슨 이유에선지 나에게 펜을 달라고 부탁했다.

한국에서 가져온 싸구려 볼펜 한 자루를 건네주자

루이스는 어림잡아 300m는 족히 떨어진 반대편 해안까지 한 다리로 헤엄치는 묘기를 보여주었다.

마치 볼펜에 대한 답례처럼 보였다. 

지상에서 한 다리로 위태롭게 서있기 보다는 바다에서 머물기 원하는 루이스는 내가 처음 만난 쿠바노였다.

70년 전 헤밍웨이가 산티아고 노인을 만난 꼬히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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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나에서 머물며 헤밍웨이가 살던 집, 호텔 암보스 문도스,

평소 모히또와 다이끼리를 즐겨 마셨던 카페와 바를 천천히 둘러본다.

그의 흔적이 남은 곳에는 어디에나 카스트로와 함께 찍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사진이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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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대전에는 직접 참전해 부상을 당하고 스페인 내전에는 종군 기자로 참여했고 쿠바 혁명의 와중에는 낚시 또는 술을 마시고 있었을 게다. 쿠바혁명은 그에게는 세 번째 전쟁인 셈이다. 전쟁 운이 있는 작가다. 첫 번째 전쟁에서는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스페인 내전에서는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그리고 쿠바 혁명 후에는 스스로를 버렸다. 마초 자유주의자에게 도덕적으로 엄격한 사회주의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가 사랑한 쿠바는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헤밍웨이는 쿠바를 그리워한 것이 아니다. 쿠바에서 누린 방종放縱을 사랑했다. 쿠바는 헤밍웨이의 작가적 낭만을 받아줄 만큼 너그러운 나라가 더 이상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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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가 쿠바에 남긴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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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를 닮은 관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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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즐겨마신 다이끼리(카페 플로리디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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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플로리디타의 헤밍웨이 흉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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